워킹맘 한 달 후기
아이를 낳은 후 항상 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신생아를 키우던 시절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워킹맘의 시간이다. 복직 전 내가 상상한 워킹맘은 내 시간도, 여유도, 무언가를 살뜰히 챙길 틈도 없는 모습이었다. 항상 넋이 나가있고,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워킹맘을 한 달간 해보니 그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나는 워킹맘 중에서도 아주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편이다. 남편이 등원을 전담하고, 일주일에 3일은 하원을 돕는 이모도 있다. 복직 전 준비한 우리의 사이클을 아직까지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워킹맘 한 달 차인 나의 하루는 이러하다. 나는 7시에 기상해 10분 만에 출근 준비를 마치고, 회사에서 간단히 먹을 간식거리를 챙긴 뒤 아이의 기저귀와 옷을 갈아입힌다. 눈도 뜨지 못한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나면, 감은 눈 위로 "엄마 다녀올게, 이따 만나자" 인사를 건넨다. 엘베를 타며 몇 번 버스가 가장 먼저 올지 예측하고, 깜빡거리는 신호등을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다행히 복직 전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와서 30분이면 회사에 도착한다. 버스를 타고 세상사 돌아가는 뉴스를 훑어보다가, 찬바람 가득한 빌딩숲을 지나 회사 건물에 들어선다.
아직 업무에 적응하는 중이고,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은지라 출근 직후에는 업무 관련 책을 조금 읽는다. 그러다 팀장님이 오시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업무와 관련된 뉴스기사를 검색한다. 팀원들에게 공유할 기사가 있으면 요점만 정리해서 어떤 부분을 참고하면 좋을지 코멘트를 남긴다. 이제 인수인계가 서서히 끝나고 나만의 업무가 서서히 생기고 있어서, 쌓여있는 메일에도 답신을 보낸다. 전날 메모해 둔, 오늘 해야 할 일을 챙기고 미팅을 하고 갑자기 날아온 업무들을 해결한다.
복직 후 한 달간 점심은 분주했다. 2년 만에 만난 옛 동료들을 만나고, 그 사이 승진한 선배, 동기, 후배들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3년 후배는 나보다 먼저 과장이 되었다. 뭐 먹고 싶으냐, 가고 싶었던 곳 있었냐는 질문을 받으면 내가 좋아하던 식당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답한다. 그럼 새로 생긴 식당을 추천받아 가거나,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나의 단골집에 간다. 새로운 팀은 어떠냐는 질문을 받으면, 이제 서서히 현실 감각이 돌아와서 어려운 부분들이 많긴 하지만 그럼에도 휴직 전에 하던 업무보다는 즐겁다고 답한다.
오후에 정신없이 회의를 하다 보면 카톡이 온다. 하원을 돕는 친구가 아이와 집에 가고 있다는 메시지다. 오늘도 고맙다고 이모티콘을 보내고 늦지 않게 가겠노라 약속한다. 5시가 되면 칼같이 일어선다. 아직 '뉴비'이기 때문에 눈치 덜 보고 일어서는 것도 있고, 복직 후에는 대단히 급한 일 아닌 이상 칼퇴근 하리라 마음먹은 것도 있기 때문에 절대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다.
5시 퇴근 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5시 반에 집에 도착한다. 친구가 오지 못하는 요일에는 내가 직접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온다. 집에 와서 밀린 빨래와 집안일, 저녁 준비를 정신없이 하다 보면 어느덧 밖은 어둑해진다. 아이가 열이 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도 꽤 있었지만, 항상 아이의 기분은 좋았다. 아침에 눈 떴을 때 엄마가 없었고, 엄마가 하원길에 직접 가지 못했음에도 아이는 내게 이전과 다름없는 웃음을 보여주었다. 밥을 먹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태도도 여전하다. 드디어 아이와 오롯이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 그럼에도 나는 한껏 지쳐있어서 조금 놀아주다가 드러눕거나, TV를 틀어버린다. 그렇게 몇 시간 버티면 남편이 퇴근한다. 남편이 오면 따뜻한 물을 받아 아이와 목욕을 하고, 한두 시간 더 놀다 잠이 든다.
나의 복직 계획은 화려했다. 복직 후에도 내가 하던 모든 취미생활을 그대로 이어가리라 다짐했다. 유튜브, 블로그, 브런치, 독서모임 등등. 휴직 중에도 다 이뤄내기 어려웠던 것들을 복직 후에도 꿋꿋이 이어갈 것이라 결심했지만 역시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나는 10시쯤 아이를 재우고 자유시간을 가지며 취미생활을 하려 했으나,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와 함께 10시 무렵 잠들었다. 나의 자유시간은, 취미생활은, 오로지 주말에만 가능했는데 주말에는 오히려 아이와 더 열심히 놀아야 하기 때문에 여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에게 진짜 자유시간이란, 이른 밤에 잠들어 새벽에 눈 뜨는 시간뿐이었다.
올해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나의 에세이로 단독 종이책 내기'였다. 얼마 전 내 목표에 딱 맞는 출간제의를 받았다. 전자책 출간, 합동 종이책 출간제의는 받았지만 단독 종이책, 그것도 에세이 출간제의는 처음이었다. 내가 목표했던 바를 새해가 되자마자 이루게 되어 기뻤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내 목표는 제안을 받는 게 아니라 책을 내는 것이다. 즉, 책을 내기 위한 원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써야 하는 원고 분량은 200자 원고지 500매 분량, 즉 10만 자. 내가 2년 동안 쓴 모든 에세이의 글자수를 합치면 대략 20만 자 정도 될 것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5달 정도. 5달 만에 10만 자를 쓸 수 있을까. 여럿의 도움을 받아 해내고 있는 육아, 떠뜸떠뜸 살 길 찾고 있는 직장인의 삶, 조금은 버거워도 새벽에 짬을 내서 이어가는 취미생활 외에 내가 해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그것도 계약에 묶여있는 중대사 한 일.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축하의 말과 함께 "그런데 할 수 있겠어?"라는 질문이 붙었다.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묻고 있는 질문이다. 그럼 나는 애써 웃으며 "해내야지,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라고 답한다. 직장생활과 육아를 하면서 또 다른 세 번째 직업인 작가까지 병행해야 하는 것은 분명 내게 버거운 일이다. 이 외에도 내가 해내야 하는 것들이 많고, 나의 본업(직장인 & 엄마)마저도 쉽지 않은 난관들이 버티고 있어서 이러다 올해 건강에 탈이라도 나는 것 아닌가 걱정될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모든 것을 해내고 싶다.
직장생활도, 육아도, 취미생활도, 작가도 전부 내가 하고 싶다고 선택한 일이다. 대단히 멋지게 승승장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해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하고 싶다. 육아휴직의 시간을 거치며, 지금껏 스스로를 과도하게 채찍질하며 달려오기만 했던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잘하지 못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얼렁뚱땅 대충대충 얼레벌레하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가짐. 누군가는 형편없는 결과물이라 비웃을지라도 내게는 '하는 것' 자체가 위대한 도전이었고 용기였다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 내년 이맘때쯤, 나 작년에 진짜 열심히 살았지,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어,라고 말하고 싶다는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