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승진 누락 3회지만, 육아휴직을 2년 다 쓰기로 결심했다.
입사 8년, 대리 진급은 무난하게 했지만 과장 승진이 문제였다. 고질적인 문제로 과장 승진이 어려운 우리 회사에서, 어린 나이에 입사해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내게 과장 승진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승진 연차가 된 첫 해에는, 승진 누락된 선배들이 너무 많아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조차 없었다. 2년 차에는 눈에 띄는 성과를 냈지만 조직의 문제로 누락. 3년 차에는 연초에 임신을 하고 코로나19가 터져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나름 최선을 다 했다. 출산 직전에 열심히 해놓고 들어가면 혹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내 기대와는 다르게, 혹은 당연하게도 나는 승진 누락이 되었고 3번의 승진 실패를 겪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임신 타이밍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고, 최대한 빨리 복직해 과장 타이틀을 달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육아휴직 1년만 쓰고 복직해 빨리 승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통은 첫째 아이를 낳은 해 1년, 초등학교 입학할 때 1년 나눠 쓴다기에 당연히 나도 그래야겠다고 계획했다.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게 된 친한 선배와의 통화에서, 애를 키우는 와중에도 유튜브니 에세이니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재밌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니 내가 너였다면 휴직을 2년 다 썼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1년 동안 그렇게 다양한 일을 해왔는데 남은 1년 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 더 해보라고. 지금 복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였지만 가까운 사람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제안이라 순식간에 마음을 뺏겼다.
왜 육아휴직을 2년 쭉 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2년 동안 회사를 쉬면 감각도 떨어지고, 승진이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한 살이나 더 먹은 와중에, 동기들은 모두 승진하는데 나만 제자리에 멈춰있다는 조급함이 나를 회사로 밀어 넣고 있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육아휴직 기간을 행복하게 즐기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전 시간에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책 읽고 글 쓸 시간이 생겼고 하원 하면 곧바로 2시간 낮잠을 자는 효녀 덕에 체력적인 여유도 생겼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난 아이와 오후 내내 열심히 놀아주다, 전쟁 같은 식사를 한 뒤에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따뜻한 물에 목욕을 시켜주다 다시 아이를 재우면 다시 내 자유시간이다. 요즈음 아이가 많이 칭얼대고 엄마 껌딱지가 되어서 한 시간만 놀아도 지치곤 하지만 지난 1년의 육아를 돌이켜 보면 나름 평화 시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년의 육아휴직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다. 가장 머리가 잘 돌아가는 나이에 해보고 싶었던 이것저것을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과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제약은 있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비대면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지난 1년에 시도해 본 것만 해도 독서, 인터넷 강의 듣기, 에세이 쓰기, 책 만들기, 영상 만들기, 블로그, 이모티콘 출품해보기, 공모전 참가 정도이고 이 외에 할 수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실패하면 '첫 도전이니 당연한 거지, 사람은 평균 8번 시도하고 성공한다니까 7번만 더 해보자'며 자기 위로를 할 수 있고, '난 육아하면서 한 거니까 부족할 수 있다'라고 행복 회로를 돌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최고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적어도 생후 2년 간 주양육자와 깊이 교감하고 애착을 형성하는 것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여러 이유로 직장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엄마들이 존재한다. 나 역시 직장으로 돌아가면 누구에게 아이를 맡겨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일단 그 고민을 미루기로 했다.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나는, 외부인에게 아이의 하원과 나의 퇴근 시간까지의 돌봄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크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지만 그 문제는 내년의 내가 해결해 줄 것이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아이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남은 휴직 기간 동안 아이와 더 많은 놀이를 하고 더 많은 눈 맞춤을 하면서 아이의 첫 시도들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2년 육아휴직의 문제 중 하나는, '나중에 초등학교 입학할 땐 어떻게 할것인가'이다. 오히려 어린이집을 다닐 땐 오후 4시까지 정규 보육 시간이라 퇴근 전까지의 3시간 정도만 어떻게든 버티면 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오전 수업만 하기 때문에 더 긴 시간의 보육 공백이 생긴다. 방과 후 활동이나 학원 등의 옵션들이 더 다양해지지만 부모의 빈자리는 아이가 성장한 만큼 더 크게 느껴질 터다. 아직 아이는 2살이지만, 몇 년 뒤의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휴직을 아껴두고 있었다.
선배와 통화하다 보니 '그때는 또 다른 방법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들었다. 육아휴직 외에 가족돌봄 휴직도 짧게나마 존재하고, 그때가 되면 육아휴직 기간이 늘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아빠들은 아무도 휴직을 내지 않는 남편 회사 분위기도 풀어져서, 남편의 휴직이 가능할 수도 있다. 우리 엄마가 퇴직한 뒤일 테니 엄마가 와서 도와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막연히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무가내 기대심리가 떠올랐다.
나의 승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세상 불안하지만 그때 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동기들이 하나둘 승진을 하는 틈에서 나는 '혼자만 못 하고 남겨지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이 컸다. 내 연차에 아직도 대리인 것을 보며 나를 어딘가 문제 있는 직원, 일 못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쩌지. 선배는 내게 "과장 그런 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해주었다. 회사 안에서나 복작복작 줄 세우기 하는 것이지 밖에 나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연봉이 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도 않는다고. 칼승진한 선배이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승진을 몇 번이고 놓친 최대리에게는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정말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뭐 어때? 난 실제로 그런 사람이 아닌 걸. 난 출산 전까지 눈에 띄는 실적을 내는 직원이었고, 육아하면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도 멋지게 해냈고, 복직해서도 내 할 도리를 충분히 할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없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현실적인 돈 문제 때문에 서둘러 복직을 한다. 우리 집 역시 빚이 적지 않기에 돈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당장 1년은 남편 월급으로 허리를 졸라매면 어찌어찌 살아는 갈 수 있다. 대신 남편의 야근과 주말 근무가 조금 늘었지만 남편과 한 달 가계비를 정리하면서 수입과 소비를 어떻게 조정하는 것이 좋을지 충분히 상의했다. 더불어 내가 하는 몇 가지 활동들이 작게라도 부수입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당연히 기존 월급만큼은 벌 수 없고, 투잡을 해서도 안 되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적은 수입이라도 생긴다면 가계에도 나 자신에게도 힘이 되어줄 것이다.
내게 매달리는 아이를 뒤로 하고 복직하는 마음도,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밀려날까 두려워하면서도 휴직을 계속 내는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와 내 커리어, 현실을 사이에 두고 저울질하는 죄책감이란. 거기에 따라붙는 편견까지.
애를 가지고 낳고 길렀던 나를 그저 '놀다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들에게 나를 증명하고 해명하려 애쓸 것 없이,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면 된다. 어차피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시선은 길지 않다. '애 낳고 2년 쉬고 온 사람' 타이틀에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으레 짐작하는 같잖은 평가에 내가 일희일비하며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필요 없다. 괜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물론 없다.
육아휴직 1년을 하며 든 생각은 '나'와 '아이'만 생각하면 된다는 점이다. 누가 나와 아이에 대해 무어라 떠들든 잠시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일 뿐이더라.
휴직 전 아등바등 열심히 일 했던 것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내가 후회 없이 열심히 했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았고, 누군가는 기억할 것이며, 무엇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내가 이토록 '나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염불을 외는 이유는, 내가 나를 평가하고 생각하는 대로 우리 아이도 나를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복직을 두려워하고 걱정한다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불안한 마음이 전이될 것이고, 내가 항상 나를 부족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면 아이 역시 나를 못 미더운 엄마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 스스로를 믿는 것은, 아이에게 흔들림 없는 엄마가 되기 위함이며, 아이에게 훌륭한 엄마가 되고 싶은 이유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승진은 못했지만 나는 멋진 엄마고, 휴직을 2년 내더라도 내 인생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