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돌을 지나면서 유아식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밥을 지을 때 잘게 썬 채소들을 넣어 먹이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밥과 국, 반찬의 일반식 형태로 식사를 제공해야 한다. 평소 나는 내 식사도 주 요리 하나로 해결해왔기 때문에 반찬을 만드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날 기분에 따라 먹고 싶은 음식을 골랐던 혼자만의 식사에서, 이제는 영양 균형과 조합까지 고려해야 하는 아이와의 식사가 시작된 것이다.
반찬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처음 제공한 반찬은 채소 볶음이었다. 당근, 애호박, 두부 같은 것들을 삶거나 볶은 뒤 먹기 좋게 잘라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가 기존에 먹던 것처럼 밥만 먹으려 했다. 새로운 반찬에는 관심도 없고 밥도 떠먹여 주는 것을 입만 벌려 받아먹었다.
어린이집에서 숟가락질을 연습시키라는 이야기를 듣고 숟가락을 쥐어주기 시작했고, 내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숟가락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하는 것처럼 아이도 숟가락질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밥을 한가득 떠주면 아이는 입을 한껏 벌려 밥을 야무지게 넣었다. 그 와중에 반찬을 밥 속에 숨겨두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무사히 먹일 수 있었다.
나는 편식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항상 먹던 채소만 먹는다. 아이가 먹는 양이 워낙 작아, 마트에서 사 온 채소를 다 먹으려면 매 끼니 줘야 겨우 해치운다는 핑계로 비슷한 채소를 반복해서 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채소에 대한 낯가림(?)이 없어지면서 스스로 반찬을 먹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잘 안 먹는 재료들은 으깨어 전 형태로 주니 허겁지겁 2~3개씩 입에 넣기도 했다. 그렇게 한 채소를 마스터하면, 다른 채소를 사서 한동안 먹였다. 나의 편식이 의외로 아이의 반찬 적응에 도움이 되는 걸까? 하며 으스댔다.
문제는 다양성이다. 유아식을 시작하면 식판에 밥을 주는데 보통 반찬 칸이 2~4개 정도 된다. 왠지 빈칸이 있으면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닌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채소 반찬 한 두 가지만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다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서서히 들었다. 그래서 간편하게 바로 뜯어서 줄 수 있는 게맛살 같은 반찬을 준비하고, 채소 반찬들도 데워서 바로 먹일 수 있도록 소분했다. 그렇게 점차 '반찬 상비군'들이 생겨나고 아이의 식판이 든든하게 채워져 갔다. 초보 엄마에게도 적응 시간이 필요했고, 아이의 협조 하에 우리 둘은 함께 성장하고 있다.
또 하나 문제는 국이다. 나는 평소 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식사의 기본이 밥, 국, 반찬이라고 하는데 나는 전혀 기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돌아기 식단을 보니 매 끼니 다양한 종류의 국이 제공되었다. 아기가 먹는 국의 양은 말 그대로 한 입 거리인데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고 조리 시간도 제법 걸리는 국을 매번 줘야 한다니. 쉽게 만들 수 있는 미역국과, 1회 분의 패키지로 소분되어 나온 미소된장국을 먼저 시도해 봤다. 역시 아이는 낯설어하며 건더기만 조금 먹더니, 그 이후에는 국에 시선도 주지 않았다. 재료에서 우러나온 짭짤한 간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니 유아식에 국은 필수가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간이 되어있어야 잘 먹으니, 돌 이후부터 간을 하기 시작하고 간장이나 된장으로 간을 낸 국을 줘야 한다고들 하지만 아이에게 좋을 것 하나 없다고. 간이 된 음식에 맛을 들여 잘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더 짭짤한 맛을 원하면서 먹는 양이 줄게 된다고. 두 돌 이후부터 줘도 충분하다는 설명이었다. 내심 국을 만들기 귀찮았던 애미에게 아주 좋은 답변이었다.
내가 특히 안 좋아하는 것이 과일이다. 껍질을 깐다든지, 한 조각씩 썰거나 씨를 골라내야 하는 과일은 질색이다. 먹을 때마다 과즙이 줄줄 흐르는 것도 번거롭다. 내가 먹는 과일은 바나나 정도이고, 임신했을 때 잠시 잠깐 딸기와 방울토마토를 먹은 정도다. 과일 역시 아이들에게 필수적이기 때문에, 아이를 위한 과일을 사야 하는데 내가 먹질 않으니 금방 상해버리곤 했다. 과일을 잘 먹는 남편에게 모든 잔여 과일 처리를 맡기고, 수박, 사과, 복숭아 등의 과일을 몇 번 주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어린이집에서 오전 간식과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과일 간식이 한 번씩 꼭 제공되었다. 나는 그 핑계로 집에서 과일 주는 것에 압박을 받지 않게 되었고, 대신 과일 퓌레를 하루에 한 번 간식으로 주었다. 가끔은 내가 아침 대용으로 먹는 바나나를 함께 나눠 먹기도 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스스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결혼부터 임신, 출산, 육아 내 생활 전반에 있어서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무엇이 되었든 결국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건데 모든 과정에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도 남들이 보기에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내가 힘들지 않은 선에서 소박하게 준비했고, 육아에 있어서도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와도 아기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좋을 대로 했다.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영양을 제공하는 '밥 차리기'야 말로 엄마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죄책감이 드는 부분이다. 나 역시 아이에게 다양한 맛을 경험시켜 주기 위해 여러 시도를 끊임없이 하겠지만, 결국 엄마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먹어도 맛있는 반찬을 줘야 아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내가 준비하는 게 버겁다면 주문해서 먹으면 되고, 내가 조금 부족하게 주는 것 같아도 어린이집에서 충분히 영양가 있는 점심을 제공하고 있으며, 여러 간식으로도 채워줄 수 있는 부분들도 있다. 결국은 장황한 자기 합리화지만, 편식 하나 하지 않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세상의 모든 맛을 아이에게 줄 수 없으므로 나는 나만의 편식 식단으로 아이를 키우려 한다.아이에게 줄 밥을 차리는 게 아니라, 같이 먹을 밥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노동이 아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 시간이라고 느껴지도록. 죄책감과 부담감으로 근심 어린 얼굴의 엄마보다, 행복하게 식사를 준비하고 잘 먹는 아이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엄마가 아이에게도 안정감을 주리라.
육아는 가끔씩은 게으르고, 이따금씩 자기 합리화를 하며, 스스로 만족하는 우물 안 개구리 마인드가 필요할 때가 있다. 편식쟁이 엄마의 육아는 내 행복을 근간으로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