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기 전까지 모유수유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고 젖몸살이니 뭐니 하는 것도 막연히 남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내 주변에 모유수유를 한 사람도 별로 없었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제왕절개 수술 3일 차 무렵, 모유수유 전문가라는 분이 오셔서 곧 젖몸살이 올 것이니 마사지를 틈틈이 해두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허겁지겁 찾아본 게 나의 모유 지식 전부다. 그 분은 내 가슴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모유수유하기에 좋은 가슴이라고 하셨다. 30년 간 하등 쓸모없었던 신체부위가 이제야 제 몫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젖이 돌지 않아도 일단 아기에게 젖을 물리라는 말에, 땀을 뻘뻘 흘리며 처음 안아본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제 몫을 할 거라는 생각은 금방 끝났다. 아기가 얼굴이 벌게지도록 젖을 빨아도 모유는 나오지 않았다. 옆에 자리 잡은 엄마는 아기가 꿀떡꿀떡 젖 먹는 소리가 들리고, 저 쪽에 앉은 엄마는 능숙한 자세로 유축을 하고 있었다. 역시, 제 몫을 못 하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맛나게 드신 직후의 모습
조리원은 자타공인 수유 천국이다. 입소하자마자 모유수유 여부를 묻고 어떻게든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엄마 본인보다 더 불태우는 원장님. 수유실에 빼곡히 자리 잡은 엄마들. 젖병소독기 위에 가득 놓여있는 젖병들. 하루 세끼, 두 번의 간식 역시 오로지 건강한 모유를 만들어 내기 위한 음식들로 이뤄져 있다.
누군가는 젖소가 된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다는데,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기분이 상했다. 내 젖양이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초면의 엄마들과 모유 수업을 듣고, 기저부 마사지를 하고, 유축을 하며 젖양을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젖이 도는 타이밍도 조금 늦었는데, 가슴 마사지를 받으니 바로 유선이 뚫렸다. 유선이 뚫리는 것은 내 생에 가장 이상한 기분이었다. 마사지 선생님이 가슴을 찢어질 듯 마사지하면 잠시 후에 퓩! 하고 젖이 튀어 오른다. 내 얼굴에 튀든, 본인 얼굴에 튀든 개의치 않고 열정적으로 마사지를 해주시고 나면, 가슴이 물렁물렁 해진다. 그다음 타임에 젖을 물려보면 아이가 열심히 진짜 젖을 빨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마사지를 꾸준히 해주지 않으면 금방 딱딱해져서 유선이 막혀버리기도 하고, 끊임없이 먹고 싶어 하는 신생아의 니즈를 젖양이 따라가 주지 못하면 오열하는 아이 앞에서 진땀을 빼야 한다. 젖양이 부족하면 아기가 조금 빨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리기도 한다. 고통 없는 모유수유는 장담컨대, 불가능이다.
그나마 조리원에서는 꾸준히 가슴 마사지를 받을 수 있어서 고통이 길지 않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끝나지 않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 3시간만 지나면 딱딱해지며 젖이 줄줄 나오는 탓에 외출도 하지 못했다. 나는 마치 목줄이 달린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웬일로 아기가 통잠을 자도 절대 기뻐할 수 없었다. 아기가 통잠 자는 만큼 내 젖은 가슴 안에서 딱딱하게 불어 올랐기 때문이다. 항상 내 이불과 옷은 축축했고 몸에서는 24시간 젖 냄새가 났다.
가장 아픈 건 아기가 젖을 빠는 순간이다. 심하면 유두 출혈이 생기기도 한다는데, 나는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기가 젖을 빨기 시작하면 찌르르하면서 고통이 밀려왔다. 젖을 먹을 땐 찌르르하고, 먹지 않을 땐 딱딱히 불어 오르는 가슴은, 독소가 가득 들어있는 물풍선과도 같았다.
이런 신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내 모유가 문제 있다고 느껴질 때'다. 젖양이 적으면 아기에게 응당 줘야 할 것을 주지 못 한다는 생각, 아기 얼굴에 열꽃이 피거나 성장이 더뎌지면 내 젖이 건강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백일을 넘겼을 무렵,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갔고 가족들은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두고 분유 수유로 갈아타라'라고 말해주었다. 모유수유모에게 모유를 그만 주라는 이야기는 한 끗 차이로 뉘앙스가 달라진다. 너를 위해서, 너의 안녕을 위해 그만 하라는 의미로 느껴지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엄마 자격을 박탈당한, 무능한 엄마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모유수유모는 늘 불안감, 죄책감, 자신에 대한 불신을 안아야 한다.
그럼에도 1년 넘게 모유수유를 지속하고, 둘째를 낳게 되더라도 모유수유를 또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아기와 연결되는 기분 때문이다. (돈이 들지 않고, 외출 혹은 급한 상황에서 별도의 준비물 없이 바로 수유를 할 수 있다는 간편함도 한 몫했다) 이유 모를 울음이 계속되더라도 젖을 물리면 '일단' 그치는데, 눈물 콧물 훌쩍이며 눈도 못 뜨고 젖 빠는 아기를 보면 '역시 이 아이에겐 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는 기분을 수유하는 순간에 느낀다니, 기쁘면서도 슬픈 일이다.
모유수유를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나는 오히려 '모유수유를 그만하라'는 이야기를 더 들은 듯하다. 대부분은 내 건강을 우려하며 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건넨 말이었지만, 나는 모유수유가 내 건강에도, 아이 건강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수유를 위해 자연스레 술을 끊게 되었고 몸무게도 금방 돌아왔다. (물론 모유수유 핑계로 음식을 양껏 먹어 지금은 다시 임산부 무게로 돌아왔다) 우리 아기 역시 13개월이 되도록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건강 체질이다. 물론 아빠의 체질을 물려받은 것도 있을 터라 모유수유 효과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나는 스스로 그렇게 믿으련다.
모유수유를 강요당하는 사람들도, 그 반대의 경우에도 모든 결정의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 아빠 역시 공동으로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함께 논의가 필요하지만, 내 가슴으로 젖을 줄지 말지는 오롯이 나의 결정에 달려있다. 유선이 막히는 고통,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 밤새 불은 젖을 마사지하며 아파해야 하는 것, 외출도 마음대로 못 하는 것 모두 '나의 일'이며,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슬픈 일이고 그렇기에 숭고한 일로 칭송받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 몸이다. 결정의 기저에는 '아기가 모유를 필요로 하는가', '아기에게 내 모유가 도움이 되는가' 여부가 깔려있지만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 '내가 내 몸을 해쳐가며 무리를 하고 있는가'이다.
엄마가 되면 나 자신보다 아기가 우선이 되도록 신체의 시스템이 맞춰진다고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도 결국 '내 몸'이 우선이다. 아프고 스트레스받은 엄마의 모유가 아기에게 좋을 리 없다. 엄마의 고통과 우울감이 아이에게 전달이 되지 않을 리 없다.
수유쿠션 들고 오는 우리 아기
나는 어느 순간 모유수유가 당연하고 편해져서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아이도 완전히 적응되어서 눈 감고도 젖을 찾을 수 있고, 배가 고플 때면 수유쿠션을 들고 내게 다가온다. 나에게 수유쿠션을 건네고 스스로 내 품 안으로 기어와 자리를 잡는 아기를 보면, 1년 간 우리 참 고생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파하고 견뎌낸 만큼, 아이도 배고픔, 불편함, 때로는 엄마의 우울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이 모든 건 내가 모유를 주겠다 결심한 결과다. 몇 번의 고비와 여러 번의 고통을 결국 우리는 견뎌냈지만, 누군가는 견디지 못하고 단유를 했을 수 있고, 누군가는 상황이 되지 않아 모유수유를 시작도 못했을 수 있다. 그것 또한 실패한 것이 아니고 잘못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기로 엄마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면 그것이 정답이다.
내가 1년 간 모유수유를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결국 '나'를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제 몫을 못 하는 녀석이라고 무시했던 내 가슴은 훌륭한 모유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고통을 잘 견디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의외로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게 모유수유는 그런 의미다. 그뿐이다. 세상 무결한,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저 선택 가능한 옵션 중 하나이고, 다른 옵션을 선택하면 나는 또 다른 것들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말고, 강요받아 마지못해 시작하지도, 애써 견디지도 말자. 아기가 사랑하는 건 엄마지, 젖이 아니며 내가 믿는 건 내 결정이지, 내 가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