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터마이징 쉽지않징, 그래도 적응하겠징
"캐나다는 도대체 어떤 나라야?" 처음 캐나다로 오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이 느끼는 캐나다는 어떠한지 물어봤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있어서 '한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캐나다에도 그런 대표적인 특성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뜻뜨미지근했다.
"음.. 저도 아직도 몰라요. 대표할만한 특성이 없는 게 특성이라고 볼 수 도있겠네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나라라는 게 특별한 점이죠."
이민자들끼리 만나면 나의 고향의 요리, 전통 의상, 전통 악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캐나다에 대해서는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부분이 없다. 여전히 '캐나다스러움'은 나에게 정의되지 않는 물음표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도 이제 캐나다는 다양함 그 자체가 특성이 될 것 같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캐나다에 오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우유를 사러 나간 적이 있다. 브랜드가 많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한 브랜드의 우유 종류가 너무 다양했다. 살면서 처음 고민해봤다. '나는 과연 어떤 우유를 먹어야 하는 것일까?'
3.25% milk (whole milk) : 일반 우유
2%, 1% partly skimmed milk : 저지방 우유
skim milk : 무지방 우유
lactose free milk : 우유 속 유당(lactose, 락토스)을 제거한 우유; 유당불내증을 겪는 사람을 위한 우유
장 보러 가다가 우유 때문에 당황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장 보러 갈 때뿐만이 아니다. 캐나다 식당을 가게 되는 순간 수많은 선택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우선, 메뉴판의 화려한 영어단어들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vg..? gf..? 알 수 없는 용어들은 뜻이 다 있기 마련이다.
(gf) Gluten-free; 밀, 보리, 호밀과 같은 곡류에 들어있는 단백질인 글루텐이 포함되지 않은 것
(vg) Vegan
(v) Vegetarian
(df) Dairy-free; 유제품이 포함되지 않은 것
가끔 메뉴판에 각 요리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메뉴판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아마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 같다. 예전에 메뉴판을 보고도 무슨 메뉴를 결정해야 하나 고민이 길어진 적이 있어서 웨이터에게 문의한 적이 있다.
"너희 대표 음식이 뭐야? What is your signature dish?
Could you please recommend?"
질문을 듣는 웨이터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봤다.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하지?' 하는 눈빛으로 웨이터는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이 음식을 좋아해.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해. 너의 취향은 모르지만 내 기준에서 이 정도를 추천해줄 수 있어." 대답은 굉장히 주관적이다. 사실 개인마다 취향이 다를 테니 대표음식이라는 것이 이곳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그리고 처음에 식당을 와서 계산을 할 때도 다소 당황스러웠다. 캐나다는 팁 문화가 있다. 팁을 줘야 하는데 팁도 옵션이 다양하다. 15%, 18%, 20%, 혹은 직접 지정할 수 도있다. 수많은 선택지에 혼란스러운 나는 속으로 외쳤다. '어쩌란 말입니까. 너희가 좀 정해줘라. :('
여전히 낯설지만 그들의 다양함이 너무 멋지고 부럽다. 이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타인의 존재를 존중하는 사회의 암묵적 합의가 느껴진다. 최대한 많은 옵션을 주면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게 하려는 사회의 노력이야말로 이 나라의 멋진 특성이라고 본다. 이곳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빛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 나도 나만의 빛을 찾기 위해 뚜벅뚜벅 내 길을 걸어야겠다. 한국인 직장 동료와 티타임 때 이민 이후 겪는 적응의 어려움에 대해 웃으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년에는 괜찮아지겠죠? 이 변화가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죠? 하하." 사실 아직도 식당 가면 주문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직 낯설지만 결국 이 생소함도 언젠가는 익숙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