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감상의 완성으로써의 쓰기
정민영의 『미술 글쓰기 레시피(아트북스)』 는 표지부터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경쾌한 하늘빛 바탕 한가운데 있는 달걀프라이, 미술 관련서인 만큼 혹시 다른 것으로 봐야하나(예를 들어 구름위에 달이 있네요 등) 하는 정답강박증에 따른 불안과 ‘맛있게 쓸 수 있는 미술 글쓰기 노하우’라는 소제목에서 왜 ‘멋있게’나 ‘제대로’가 아닌 ‘맛있게’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미술도 글쓰기도 결코 쉽지 않은데 ‘레시피’가 있다면야 감사할 따름이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책을 편다.
“미술 글쓰기 레시피”는 이미 네 권의 미술 관련서를 출간한 작가가 또 한 번 대중에게 눈맞춤하며 미술 글쓰기 노하우를 최적의 세팅으로 전해준다. 저자는 전작 “원 포인트 그림감상”을 인용해 “보기만 하는 감상은 반쪽짜리 감상이다. 감상의 완성은 글쓰기다. 글쓰기까지가 진정한 그림감상이다.(8p)”라고 강조한다. “독서의 완성은 서평”이라고 생각하는 서평러로써 ‘아, 그림감상(너까지)도! 역시 적자생존이 맞네‘ 혼잣말을 해본다.
총 다섯 파트 구성으로 1장은 쓰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을 챙긴다. 읽기 시작하면서 고매한 경지가 어쭙잖은 접근을 불허하는 듯 느껴지던 미술에 대한 편견은 블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일반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술계 내부가 아닌 자기 삶에서 미술을 봅니다. (중략) 미술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삶을 위한 재료로 미술을 향유합니다.(중략)중요한 것은 느낌입니다. (중략)세상의 모든 자료는 내 감상에 필요한 각주입니다.(20p)” 이쯤 되면 읽어갈 모든 페이지 앞에서 급격히 당당해진다. 자신감을 장착하니 ‘미술 글쓰기? 할 수 있어!’싶은 맘이 솟는다.
작품의 ‘숨은’ 의미 찾기(34p)에서 ‘관점’설명이나, 공간예술과 시간예술에서 “미술 글쓰기는 시간이 응축된 공간적인 세계를 시간적으로 번역해서 서술합니다.(52p)”등 어려운 말이지만 전략 또는 설계의 필요성과 작동케 하는 법에 천천히 익숙해진다. 1장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무제’에 대한 설명(28p)이다. ‘무제’라는 제목 앞에서, 알 수 없는 기호 제목들 앞에서, 전시실 8할의 작품이 무제인 ‘무제’의 기차열 앞에서 얼마나 무제의 이유와 근거를 찾아내고 합리화 해보려 애썼던가. 그 날들이 스쳐간다. 이제 조금 편해진다.
2장은 ‘구성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은 알고 가자 다시금 맘 먹는다. 이 파트는 조금 친숙하다. 이권우 교수님의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복습하듯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안다, 문제는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 최북의 “공산무인도”감상문은 동양화의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늦게나마 신세계를 엿본다. 글의 마무리도 어렵지만 제목 짓기는 더하다. 제목의 기능 세 가지도 기억해야겠지만 “제목은 유혹이자 감동의 압축파일입니다.(중략) 제목을 잘 지어야 글이 춤을 춥니다. (127p)”등 ‘외우자’ 싶은 문장들이 많다.
'쓰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3장에서 보여준다. 내적 정보에 해당하는 소재, 매체,기법과 외적 정보에 해당하는 에피소드, 시대적 배경 등을 언급하는데 작품을 대상으로 쓴 글을 실례로 제시하므로 설명에서 끝나지 않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4장은 글감이다. 글의 재료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인데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방법론을 익힐 수 있다. 에피소드 글쓰기, 키워드 또는 비교 글쓰기 등을 다룬다. 특히 비교하는 글쓰기의 예로 들었던 ‘머리로 그린 산, 가슴으로 그린 산’(223p)은 여운을 남긴다. 페터 한트케의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아트북스)』 속에서 한트케가 따라가던 세잔의 산 이미지가 겹쳐지며, 동시에 친숙한 「인왕제색도」의 알지 못했던 사연에 한번 더 그림을 주목하게 된다.
마지막 장은 '쓰면서 알아야 할 것들'이다. 제목의 중요성을 다시 언급하며 미술 용어 풀어쓰는 법, 독자에 따라 달라져야 할 글, 퇴고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각 장 말미에 흥미로운 주제의 팁과 저자 후기 이후 한 편의 보론까지 꽉 채운 점에서 저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던 나의 미술관 여정, 간혹 사진으로 기록했으나 저장주소를 잃고 어렴풋할 뿐인 작품의 인상이 안개처럼 흐리다. 스톡홀름 증후군까지는 아니더라도 놀라움으로 소름돋고 눈물이 차오르게 하던 어둡고 캄캄한 바탕 속 벼락같이 내뿜던 빛들, 화가가 금가루를 넣었나 왜 그림에서 광채가 터질까 숨막히던 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미술 글쓰기 레시피”는 양질의 정보와 방법론으로 무장한 동시에 그림을 감상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움을 누리라고 따뜻하게 격려하고 또 지지한다.
20210621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