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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먹는 꿈별 Jun 27. 2021

[서평]쿳시의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문학동네

매 순간 자기 자신이기를 선택했던 위대한 탈출 예술가를 만나다

J. M. 쿳시의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문학동네/왕은철 옮김)』는 1983년 작가에게 첫 번째 부커상을 안겨주었고 200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로는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한 쿳시 문학의 주요 지점을 차지한다. 쿳시는 종족적으로는 식민주의자이면서도 이념적으로는 식민주의자이기를 거부하는 작가로(250p), 아파르트헤이트, 반투 홈랜드 등 조금만 찾아보아도 인권상실의 비참함이 곧바로 작품과 오버랩되며, 원죄이자 숙명이며 자의식과 죄의식의 원천인 식민주의 역사를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역자는 “이 소설은 쿳시가 성취한 문학의 최고봉, 최고 중의 최고에 해당한다.(259p)”고 하는 만큼 “마이클 K의 삶과 시대”가 쿳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작품인 점은 감사한 일이다.


“그가 어머니에게서 세상으로 나오도록 도와주던 산파가 마이클 K에 대해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그가 구순열이라는 것이었다.(11p)” 헤이스 노리니어스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고 케이프타운 시청의 정원사가 된 마이클K는 가정부로 일했던 어머니 안나 K를 수종증으로 치료 받은 병원에서 퇴원시킨다. “그는 헤이스 노리니어스의 자전거 보관소 뒤에서 그를 괴롭히던 질문, ‘나는 왜 세상에 나왔을까?’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이었다.(16p)” 마이클은 어린시절을 보냈던 프린스 앨버트의 온기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소망을 이루어주고자 마음먹는다.


목적지는 정해졌지만 여정은 예상을 빗나간다. 예약 승차권에 더해 구역이탈을 허용하는 허가서를 막연하고 초조히 기다린다. A를 하면 B를 요구하고 B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질문도 거부당한 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불분명한 시간으로 틈을 메우라 지시받는 상황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손수레를 만들어 직접 움직이겠다는 계획은 어머니를 쓰러뜨리고 병원에서 다시 한 번 동일한 상황을 겪는다. “어머니는 복도에 없었다. 접수대로 가서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병원 끝에 있는 부속건물로 가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그가 말하는 건물을 알지 못했다. 다시 접수대로 돌아갔더니 아침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는 복도에 있는 벤치에서 자도 되는지 물었지만 거절당했다.(44p)” 불합리하고 부당하고 부조리한 상황의 연속. 교묘히 태연하게 함정을 권하는, 다리 거는, 또는 밀어넣는 듯한 기분이 성에 다가가지 못하는 토지측량사 K를 떠오르게 한다. 죽음 앞에서도 그들의 무심한 강압은 흔들리지 않는다.


마이클 K는 혼자 프린스 앨버트로 향하고 피사기씨의 농장에 이른다. 어머니의 소망을 늦게나마 이루어 드린 후 호박씨 봉지를 찾아내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행복을 느끼나 이도 곧 내어주고 비탈 위 동굴에 닿아 “그러니 나는 이제 잊힌 존재나 다름없다.(93P)”고 생각하지만 다시 이주민수용소로 보내진다. 그러나 다시 빠져나온 그. “그는 스스로에 대해, 뒤에 발자국을 남기는 무거운 존재가 아니라, 개미가 발을 구르고 나비가 이를 사각거리고 먼지가 굴러다녀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깊이 잠든 대지 위에 찍힌 점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134P)” 자의와 타의, 자유와 억류, 탈출과 체포, 마침내 탈출로의 연속된 경주가 이어지는 길에서 마이클 K는 '여분의 인간조건'을 하나씩 미련없이 떠나보낸다.


2부의 화자는 마이클 K가 입원하게 된 병원의 군의관이다. 자신의 특별한 환자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돕기 원하는 그는 '마이클 K가 아닌 마이클스'에 대해 생각한다. 집결지 운영은 고사하고 다트 놀이도 못할 사람(177p)이며, 백치이고(178p), 돌맹이 또는 조약돌 같이 주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과 자신의 내적 삶에 갇혀있다고(183p). 한 마리 쥐이며 땅에서 사는 법을 모르는 도시 쥐(185p)라고, 모호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모호한, 불가사의할 정도로 모호한 사람이라고(194p). 하지만 그 시도나 호의 또는 '달변(193p)'조차 서로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는데 애초에 그는 마이클스가 아니었기에 시도는 헛될 수 밖에 없다. 사라져버린 마이클 K를 놓아보내며 화자의 시선은 자신에게로 향하고 인류 행복의 총합을 올리는 예를 생각하다 인생, 시간에까지 도달한다.


“그 혼돈 속에서 형식이 태어나고 역사는 스스로에게 영광스러운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그녀를 오해하는 게 아니라면, 펠리시티는 자신을 기다림의 시간, 수용소의 시간, 전쟁의 시간 등과 같은 시간의 호주머니 안에 고립된 표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시간은 늘 그랬던 것처럼 충만한 것이다. 시트를 세탁하는 시간이나 바닥을 청소하는 시간조차도 말이다. 반면, 한쪽 귀로는 수용소 생활의 진부한 소리를 듣고, 다른 쪽 귀로는 ‘위대한 설계’의 회전의들이 초감각적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나에게 시간은 공허한 것이 되어버렸다. 완전히 내면으로만 향한 채, 서서히 진행중인 소멸의 과정에 싸여 있는 뇌진탕 환자조차, 죽음을 살면서도 나보다 더 강렬하게 살아간다.(216p)” 세 사람의 시간을 비교하며 서서히 자각하는 군의관. 자신을 성찰하다 결국 정원을 가꾸는 위대한 탈출 예술가(226p) 마이클 K(마이클스)를 부러워한다.


“시간이 흐른 게 분명했지만 기억이 없었다.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상태였다. 나는 부재중이었다. 그러나 어디에 가 있었을까?(240P)” 3부에서 마이클 K는 바다를 찾는다. 어머니의 거처가 있던 코트다쥐르 아파트에서 이제 돌아왔구나, 나는 동정의 대상이 되었구나, 나는 정원사였다 생각한다.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둬놓는, 위한다는 미명을 가진 수용소들의 열거는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진실은, 수용소 밖에 있는 것만으로도, 동시에 모든 수용소 밖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지 모른다. 어쩌면 당분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취인지 모른다. 하지만 감금당하지 않거나, 출입문에 보초가 서 있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수용소를 탈출했다. 납작 엎드려버리면, 어쩌면 동정심으로부터도 탈출할 것이다.(246p)”


마이클 K가 마르고 수척해가듯이 이야기의 결말은 단순하게 응축되어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그가 필요로 하고 원했던 것은 사소해 보이나 물처럼,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될뿐 아니라 타협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린스 앨버트를 향하던 여정은 반복해서 저지당하고 탈출 끝에 처음 자리로 돌아오지만 철사로 쇠막대를 고정시켜 손수레를 만들던 그는 아니다. 하지만 꿈꾼다. 또 하나의 손수레가 있고 동행할 노인이 있으리라고. 함께 그곳에 도착해 파괴된 펌프에서 물을 얻는 법을 알려줄 수 있다고. ‘어떠해야 한다’고 이미 재단된 가치와 판단은 열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자이며 약자, 그들과 ‘다른’ 경우에는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협은 산재해 있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으로 남으려 했던 마이클 K의 삶이 묵묵한 시지프스처럼, 불평없이 다시 처음부터 돌을 굴리던 시지프스처럼 웅장해 보인다. 그의 왜소함이 형태 이상으로 풍성하게 발아하는 씨앗처럼 확산된다. 작가의 의도대로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담론(251p)으로는 물론, 현재를 사는 개인에게 비춰보게끔 하는 역동적 작품으로 또다른 마이클 K에게 당신은 왜 이렇지 못하고 저러하냐 하지 않도록 민감해야 할 것이다. 그는 살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한 모두가 간직한 자기만의 프린스 앨버트는 어디인지, 그 여정은 충분히 아름다운지, 아니 견딜만 한지 안부를 묻게 된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핵심만 담아 낸듯한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는 한 호흡으로 몰입하게 만들고 메아리처럼 여운을 남긴다.


나는 여기에서 살고 싶다. 그는 생각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았던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아주 간단한 일인데. 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려고 짐승처럼 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애석하구나.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창문에 불을 밝힌 집에 살 수 없다. 굴 속에서 살아야 하고 낮이 되면 숨어야 한다. 삶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136p)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 아이 뒤의 문간에 서 있는 또다른 여인, 즉 어머니를 세상에 나오게 한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려 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실 때, 그러니까 어머니가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어머니가 의지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 뒤에 서 있던 그녀의 어머니나 그 어머니의 영혼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나에게 어머니는 성인 여성이었지만, 그녀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손을 잡아달라고, 도와달라고 어머니를 찾는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그 삶이 어땠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어머니도 어린아아이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끝없는 아이들의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159p)
날마다 반복되는 완고한 아니요라는 말에 차츰 무게가 실리면서, 당신이 단순한 환자나 전쟁의 희생자 또는 희생의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벽돌 이상의 존재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결국에는 누군가 밟고 올라가 다리를 벌리고 서서, 고함을 치고 가슴팍을 두드리며 자신이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의 황제라고 선언하는 희생의 피라미드 말이에요. (224p)



20210627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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