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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Jul 08. 2023

01. 보자기 썰

우리 집도 빚을 내었다. 그럭저럭 지내온 삶이었는데 중년을 훌쩍 넘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금리가 이런 건 줄 몰랐다. 평생 열심히 일해 왔고 이제 좀 살 만한데 왜 이런 위기가 오나 싶고,  따박따박 근로소득으로 모은 자산이 어이없게 되었단 생각에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고통스러워한다고 사태가 바뀌지는 않았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대처를 고민해야 했다.


가지고 있는 것 중 현금화할 수 있는 것의 순서를 생각해 보았다. 결국' 아들 돌 반지와 팔찌, 남편 장기근속기념 메달, 몇 안 되는 나와 남편의 가락지 같은 금붙이를 이럴 때 처분하는 거구나. ' 하는 생각까지 오게 되었다.

 나는 장신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반지를 여기저기 뒹굴게 하다 잊어버리기도 하는데 그나마 위의 금붙이들은 지난날의 내가 보자기에 잘 싸두었다.

 '이거 싸 두면 뭐 하나. 언제 쓰나.'

하고 평생 살아왔는데 이런 위기에 그나마 이 보자기를 펼치게 되니 웃프다. 다 해보아야 얼마나 될지도  모르겠다만 이러고 나니 왠지 비장감이 들고 코끝도 찡해진다.




'보자기'라는 물건이 주는 묘한 아리함과 서글픔이라는 게 있다. 국민학교 때 엄마 대신 할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은 촌스런 보자기로 꽁꽁 묶여 있었다. 밥이 식을까 봐 털실로 짠 뜨게 손수건을 먼저 도시락에 촘촘히 감싼 후에 이 촌티 나는 보자기를 볼끈 볼끈 매었다. 그런다고 밥이 식지 않겠는가마는...... .  세련된 검정 아폴로 보온 도시락을 자랑스러이 책상 위에 꺼내 펼치던 주위 아이들 속에서도 어린 나는 이 도시락  보자기를 창피해하지 않았다.  그 부러움에 지고 싶지 않았고 할머니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더더욱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에 대한 관심이었던 것 같은데 어릴 적 그때는 알 리가 있나. 맨날 나를 괴롭히던 말썽쟁이 우리 반 남학생이 있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서는 쌩하고 내 도시락 가방을 낚아채 간다. 그러고는 도시락을 보자기 째 꺼내어  당시로선 학교 안에서 그나마 최고의 놀이터였던 시멘트 미끄럼틀 꼭대기 위에서 미끄러트리는 게 아닌가. 아이들의 발끝에서 이는 수없는 마찰로 억센 시멘트 바닥도 어지간히 반질반질해져 있었다만 당시의 기술 때문인지 평평하지 않게 미장된 부분은 여전히 울퉁불퉁 마찰이 심하였다.  


내 보자기 도시락도  이 남학생의 팔힘에서부터 출발하였으니 첨엔 잘 미끄러지다가 그것의 거친 부분에 이르러서는 속도를 줄였다. 그러다 그것도 무게라고 제 몸무게가 다 실릴 때쯤 또 아래로 미끄러졌다. 돌판에 쏴악 하고 미끌리니 헝겊 쪼가리가 남아 나겠는가. 구멍이라도 날 것 같다. 아니, 날 것 '같다'가 아니라 난 게 '틀림없다'. 게다가 거친 데에 이르러서는 갈피를 못 잡고 꺽꺽거리는 보자기를 보자니... .  내 할머니 마음을 상처내는 것 같아 쓰라렸다.


"하지 마라고오! 내 도시락 달라고오!"

학교에서 좀처럼 울지 않던 나는 그날 처음, 울먹였던 거 같다. 큰 소리로. 들을 사람이 있다면 다 들으라는 듯이.  참아왔던 부러움, 참아왔던 서러움이 터져 버린 걸까.

이 남자아이, 평소와 다른 날 보고 영문을 모른 채 특유의 얼레리꼴레리를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다.




오늘에 와서는 예쁜 함도 많고 고운 직물도 많고, 그래서 굳이 보자기를 쓰는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다. 곤란한 물건들을 쉽게 뭉치고 싶을 때 둥 섬둥 싸서 편히 보관할 때나 보자기를 쓰는 정도지 싶다. 그런데 내 할머니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뭔가 소중해서 오래오래 보관해야 하는 것은 보자기에 싸야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한 것 같다. 소중한 가족과 얽힌 금붙이는 그래서 보자기에 이리 꼬옥 싸 놓았나. 내 평생 모은 금의 양이랄 게 너무 가벼워서 보자기에 송구할 정도이지만, 마음만은 '토지'의 서희가 윤 씨에게서 몰래 받은 금다발 못지않다. 어린 서희의 훗날을 위해 할미가 남길 수 있었던 최대의 방비(防備), 롱 밑에 그득하던 금다발.


영끌이라는 시대 초상. 물론 그럴 정도의 무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살아오면서 제일 큰 빚을 낸 건 사실이니 그 초상의 막차를 타서 고심하는 어리석은 나라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는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앞으로 닥칠 몇 년간은 생각할수록 두렵기도 하다. 그런 내가 이 보자기로 하여 큰 위안을  얻었다.


그가 장롱 속에서 오랜 세월 참으며 도모하고 싶었던 훗날이 결국 오늘의 빚이라는 게 미안하긴 하다. 오종종 나름 노랗게 나를 바라보는 이 자잘한 금붙이들을ㅡ지난날 철없던 내가 그때그때 홀라당 쓰지 않게ㅡ 꼬옥 꼭 싸 챙겨주었던 보자기씨. 그에게 무한 감사하고 있으니 이해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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