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부터는, 성탄일까지 매일 글을 올려 보자던 약속을 지켰다! 나에게 보내는 박수. 짝짝짝!
블로그는 내 사이버 작업실이 된 거 같다. 아직까지 카페가 되지는 못한다. 나를 토로하는 게 주이기 때문이다. 어느 글에서 잠깐, '여러분'이란 단어를 쓰면서 놀랬다. 읽어 주는 분들을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이라 그랬겠지. 그러면 카페가 될 수도 있겠다. 내 어떤 글이 님께 대접하는 아메리카노 혹은 라떼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의 성향 상, 사람들이 오가며 두런거리는 그런 카페 주인장은 좀 안 어울린다. ;;
안도현의 '바닷가 우쳬국'이란 시가 있다. 한적하다 못해 심심으로 일관된 그곳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 안도현. 바닷가 우체국 중에서
다정한 이에게 부치는 편지에 소인을 찍다가, 한 번씩 바다의 수평선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창밖을 보다가... . 하기야 현실 우체국은 소인찍을 일보다 택배 짐으로 더 바쁘겠지. 저 시가 나올 때만 해도 편지를 쓰던 세상이었는데... .
손님 없는 시골 다방 레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파리채로 파리를 잡다가 가끔 들어오는 손님에게 달고나 커피를 쟁반에 받쳐 내곤 무심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애교는 1도 없는. 그러면 다방 사모가
" 야! 좀 웃어라이. "
하는. 잘릴까 봐 걱정 마시라. 서서히 사람들은 이 뻣뻣한 레지에게 정이 들 것이다. 그녀가 없으면
"어데 갔노?"
묻기도 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나름 있는, 매력 꽝은 그래도 아닌 레이디, 레지.
이젠 시골 다방도 찾기 어렵고 그 일본식 말 레지도 없다마는.
출처 핀터레스트
어쨌든 홀로 또는 뻣뻣이 있는 풍경이 더 어울리는 내가 블로그 카페 주인장이 된다는 것은 좀 후달리는 일이다. 글쓰기가 창이 열리고, 공기가 들어오고, 햇빛을 받으니 또 다른 지경으로 가는 것인가.
정든 이웃님들이 생기고 그분들의 아름다운 삶의 글을 보며 숙연한 순간들이 많았다. 한편으론 우린 왜 이렇게 다들 아픈지도 싶었다. 서로 공감하고 격려를 나누던 님들은 듣기만 해도 멋지던 그 말, '새 희망의 정수박이'였다고나 할까. 반면, 어느 날 훌쩍 사라질 수도 있는 신기루일진데 하는 '망설임'도 생겼다. 나 역시도 상대에게 그러할 것이고. 그건 우리가 그저 외로워선지도 모르겠다.
'길은 뒤에 난다.'는 말을 믿는다. 침묵이라는 고집을 부려야 그 길은 홀로 나는 것을. 부디 내 길을 유유히.
내 글을 읽으며 내가 위안을 받았다.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이 시키던 대로 소리 내어 읽어 보면서 키득거린다. 어떤 대목에선 눈물도 '찔끔'이다. 진정한 글쓰기 놀이의 진수인가. ;; 특히 소녀 시절의 반짝이던 내 영혼을 다시 만났던 글은 참 소중하다. 퇴색한 지금의 나를, 그 소녀가 나팔꽃의 눈을 하고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고 감사 감사했다. 쓰지 않았다면 없었을 이 모든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