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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나의 글은 나에게

by 하은수

글을 쓸 때 나는 기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내 맘과 똑 맞게 씌어질 때 참으로 시원하다. 세상 누구도 나의 글만큼 나를 알아줄 수가 없다.


부끄러운 말이긴한데 나는 써 놓은 내 글을 엄청 자주 읽는다. 최근에 쓴 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래되어도 그것의 내용과 유사한 어떤 상황이 됐을 때 당장 내 글이 생각나서 다시 읽는다. 책보다 더 자주 읽는 거 같다. 책을 많이 읽지도 않지만. ;;


'고래'에 대해 쓴 글은 아침 출근할 때 발걸음에 악센트를 준다. 고래를 찾아 떠나는 바비 킴의 노래는 여러 번 들어도 안 질린다. 긴 몸살로 오래 기운이 빠졌을 때, 그럼에도 '나의 지향'을 생각해 보던 글은 나를 좋아하게 만든다. 삶의 유동 같은 음악과 함께 읽는다. 한 번씩 내 커리어에 대해 생각하고 싶을 땐 영화 '타르' 리뷰와 그 교향곡을 만나지. 가끔은 여학생 시절, 버스 안에서 책을 보던 나를 읽기도 한다. 그러면 '완전'이라 할 어떠한 세계를 동경하던 아련한 마음이 꼭 그대로 살아오는 것이다.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 번씩 내가 맘에 안 들 때가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맘에 안 들다 못해 구제불능 같아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자신을 실제 이상으로 비하하게 되므로 급기야는 심장이 아프기 시작한다.


어제가 그러하였다.


'난 이렇게 생겨 먹었구나. 참으로 안 바뀌는구나, 징글징글이다. '


이런 생각을 하는 건 편하다. 자신을 비운의 파토스로 몰아넣고 거기서 웅크리고 있는 건 돈도 안들고 어떤 면에선 달콤하기까지 하다. 쉬운 일이니까. 내려가는 길은 쉽지 않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올라가는 것이 힘들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이 힘든 것이다.


심장의 말, 이를테면 나 그만 쑤셔대고 숨 쉬게 좀 해주지 하는 말이 날세워 나를 진군하는 것 아닐까 하는 동통이 인다.

'아. 이럴 때 먹는 약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금방 나아졌던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언뜻 피었다가 사라진다. 다른 일을 해 보려고 이것저것. 그래도 자꾸 심장이 말을 걸어오길래 그 약 생각을 또 하게 된다.

'뭐더라.. 침울의 체기가 '슉' 하고 내려갔었는데.'

뭐였더라...... .


미운 나는, 못난 나는 부풀어 올라 빵빵해진다. 가볍다는 기체가 터질 듯이던 풍선은 값이라도 나갔건만. 형편없는 갈피를 잡아 보려 뒤치락, 어슴푸레 알갱이 하나가 점점 빨갛게 달아오른다. 천천히 다가온다.



그것이었구나!


맥없게도 그건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흔히 만나는 어떤 '어구'이다. 그것 하나로 마음에 평안이 '슈욱'하고 찾아왔었다. 그 경험을 쓴 내 글이 있다.


이상하다. 그래도 마찬가지. 오만 가지 들뜬 생각은 그야말로 들떠서 어두운 공간을 배회한다. 향도 소용이 없다. 저 혼자 불씨만 하릴없이... .
그러다 어느 순간.
"그래, 그럴 수 있지.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내가 수도자이냐. 넘칠 수 있지. "
하는 생각이 올라오자 어둠이 훅하고 꺼진다. 그 순간 향을 보니 이만큼 사위어져 있다. 여명도 다 걷혀있다.

있는 나를 그냥 바라보았다. 허용해 주었다. 그러니 그만 우습게도
"그대, 잘 계신가? "
하고 너무나 쉽게 평화가 찾아와 버린다. 탐탁잖은 나를 밀쳐 내려니 그 '나'는 더 나에게 저를 들이 밀었던 것이다.

-나의 글, '새벽 요가 가기 싫은 날' 중에서.



내 글을 다시 읽는다.

"그래, 그럴 수 있지. "

그랬더니 그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대, 안녕하신가."

하고 평안이 몰려온다. 무릎에 파묻었던 못났고 구제불능이고 징한 내 얼굴이 일어나 앉는다.

'나의 아저씨'가 그녀에게 하던 말,

"편안함에 이르렀나."

그 말이 나에게도 찾아오는 것이다. 이러하니 뜬금없는 물구나무를 한 번 서 보게 된다, 그때처럼.






https://youtu.be/5a-tqIQc8RM

나의 아저씨 OST. 손디아, 어른


나도 누군가에게 저러한 아저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물론 드라마를 끝까지 잘 못 보는 나는 이 작품도 중간쯤 정도밖에 못 보고 말았다. 그녀의 이름자 그대로


"지안至安. 편안함에 이르렀나."


하던 대사가 너무 유명하니 그 장면을 꼭 보고 싶었건만.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마지막 회에 나오는구나.


나는 왜 누군가에게 '나의 아저씨'가 되어 주고 싶단 생각을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 만용이다마는 저런 착하고 가련한 인간 군상을 보면 마구 위해 주고 싶어지는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 형과 동생의 찌질한 한숨도 얼마나 '인간'인가. 그래서 그러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지.


그런데 오늘 나는 나에게 '나의 아저씨'가 되어 준다. 엄밀히 말하면 내 글이 '나의 아저씨'가 되어 준다. 가련하고 찌질한 나를 보고 '나의 아저씨'가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를 다시 읽어 보아, 네 맘을 보아.
나는 항상 너와 함께이란다.
하은수.
이제, 편안함에 이르렀나.


출근길, 집을 나서며. 나는 다시 나를 되찾는다. '내 글' 이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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