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싸구려 종이에 빛나는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년이 있었다.
15살 소년은 빠른 생일인 탓에 제 나이 보다 한 학년이 더 높아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소년의 나날은 즐거웠다.
적당히 공부를 잘했고 친구들도 적당히 많았고 적당히 운동도 잘하는 편이었으며
그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을 좋아했다.
한낮에는 여름처럼 더웠다가 해질 즈음부터 선선한 바람이 돌기 시작하는 늦여름과 초가을의 사이 어디 즈음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6교시는 체육시간.. 친구들과 축구하기를 좋아하는 소년은 아직 가시지 않은 더위는 잊어버린 듯이 열심히 달리고 공을 차고 아무것도 아닌 아닌 농담에도 자지러듯 웃어젖히며 즐거운 시간을 지나왔다.
마지막 7교시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교내 백일장 시간이었다. 7교시만 마치면 집에 간다. 집에 가면 어제 늦게까지 하다만 컴퓨터 게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신나는 6교시 체육시간이었다.
짧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담임 선생님이 한 손에 종이더미를 들고 들어와 교탁에 내려놓았다.
주번을 불러 종이더미를 한 사람씩 나눠주도록 지시했고 교내 백일장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나눠주는 종이에 자유롭게 글을 쓰고 제출하면 그중에 좋은 글을 골라 수상도 하고 어쩌고 한다는 설명이었는데 그것보다는 장난으로 쓰거나 안 쓴 사람은 혼난다는 말이 주요 내용이었다.
담임 선생님의 그 어떤 말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했던 것은 글을 다 쓰면 교탁 위에 올려놓고 하교해도 된다는 말이었다. 몇몇 친구들은 환호성을 쳤고 선생님은 째려봤다.
주제는 "가을"...
소년은 자신의 책상에 놓인 종이를 바라보았다.
회색으로 된 값싼 인쇄용지.. 그 앞면 삼분의 일 즈음엔 "교내 백일장 대회"라는 타이틀과 함께 주의 사항들이 빼곡히 적혀 박스 처리 되어 있었고 그 아래는 밑줄.. 뒤집어 보면 뒷 면에는 줄만 가득했다.
이제부터 그 줄 안에 "가을"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소년은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망설였다. 가을에 대해 글을 쓸 만큼 깊은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무엇보다 아직 세상을 향해 눈이 틔이지 않았던 소년에게 "가을"이란 주제는 넓고도 험난했다.
소년의 글은 중학 소년치곤 다소 성숙한 면이 있었고 써 내려간 소년의 마음에도 무언가 빚이 있었다.
세상 모두가 살아내는 하루들로 결실을 얻어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소년은 몰랐다. 소년이기 때문에 몰랐다.
그저 소년은 지금 주어진 과제를 얼른 마치고 집에 가서 게임을 하기 위해 글을 써내려 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던 소년은 이내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고
싸구려 종이에 빛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을은 무엇인가?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다. 수확이란 지난해 겨울부터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물을 주고 해를 만나 겨우 삶을 맞이한 어쩌고 저쩌고의 결실을 거두어 결과를 맺어낸 사람들의 행복이자 노력의 결실을 축하하고 서로의 한 해를 보듬어 축하와 위로를.. 그리고 경제적 결실을 얻어내어 신나는 사람들의 행복함을 나누는 축제이자 위로다.
감히 함부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들의 축제이고 기쁨 이어서는 안 된다.
대충 이런 내용의 글이였다.
정신없이 눈을 빛내던 소년의 시간엔 소년과 가을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고 어느덧 소년을 제외하곤 한두 명의 친구들만 남아 무엇인가 끄적이고 있었을 뿐이다.
재미있었다. 못생긴 필체로 손가락의 통증을 견디며 가득가득 떠오르는 생각을 형태 지어 만들어 가는 그 시간을 즐거워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 재미를 마치고 나니 교실엔 소년 혼자 남았다.
서둘러 교탁 위에 종이를 제출하고 나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소년이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하다.
며칠이 지났을까? 담임 선생님이 상담실로 호출했다. 청소년기의 한가운데를 달리는 소년은 제법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이런저런 시간을 보냈지만 선생님한테 불러갈 만한 정도의 비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채로 상담실에 불러갔으나 다행히 크게 별일은 아니었다.
백일장 대회에 제출한 글을 직접 쓴건지 다른 글을 보고 썼던건 아니였는지 물었다.
별일도 아니었다. 남자 어른과 대화하기가 껄끄러웠던 소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일상을 지냈고 다시 즐거웠다.
얼마 후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소년은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꽤 두각을 드러내던 소년은 종종 교내에서 예상치 못한 수상을 했던 탓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고 교내 백일장 정도의 수상은 공부를 잘했던 누이의 수상경력에 비하면 별 일도 아니었기에 소년도 소년의 부모도 그저 그런 이벤트의 하나로 생각하고 10대에 벌어지는 사건이 대부분 그렇듯이 적당히 자랑스러운 사건으로 흘러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년이 다니는 학교의 국어 선생님의 글이 신문에 실렸다는 소문이 교내에 나돌기 시작했다. 지역 신문의 투고글 정도로 시작했던 국어 선생님의 글은 전국 주간지에 까지 옮겨지면서 다소 유명세를 탔고, 종소도시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소년의 학교에 국어선생님의 글이 전국의 주간지에 실리는 정도의 사건은 소년과 친구들 사이에선 화제가 될 만한 일이었다.
소년도 그 글을 읽게 되었다.
이상했다. 국어 선생님의 투고글은 소년이 우수상을 받았던 그 글이었다.
좀 더 정제된 어른의 문장과 세련된 문법으로 각색되어 있었지만 글이 제시하는 문제의식과 그것을 지적하는 방식.. 그리고 소년이 가진 표현법.. 그 모든 것은 소년의 글이었다.
그야말로 소년의 땀냄새 가득한 빛나는 글은 소년의 것임이 분명했다.
소년은 왠지.. 기뻤다. 국어 선생님이라는 소년에게 위대한 존재가 자신의 별 다른 노력 없이 그저 재기 발랄하기만 한 글을 표절했다는 사실에 소년은 왠지 모르게 재능을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전국 주간지에 까지 실린 자신의 글을 혼자서 자랑스러워했다. 엄마와 친했던 소년은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문제제기도 자각도 모두에게 없었던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소년은 계속해서 자랐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그때의 소년보다는 훨씬 자랐다.
자라는 와중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자랄수록 국어 선생님이 가져간 소년의 글이 소년은 억울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교내 백일장의 중요한 심사위원이었던 선생님은 자기가 표절해서 지역신문에 투고할 정도의 글을 왜 겨우 "우수상" 정도로만 평가했을까?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나선 지역신문에 투고한다는 것은 그 선생에게 어떤 의미였고 어떤 목적이었을까?
담임선생은 왜 소년을 상담실에 불러 겨우 "어디서 보고 쓴 글 아니지"라는 질문만 하고 말았을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소년에게 제법 글을 쓸 줄 안다고 왜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까?
무엇이든 되고 싶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소년에게 왜 아무도 잘한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시간은 계속계속 흘렀다. 소년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소년의 글을 표절했던 국어선생만큼의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소년은 이제 국어선생의 의중도 담임선생의 짧은 문답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세상을 경험했고 여전히 그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어른이 된 소년은 선생들의 의중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국어 선생은 작은 정도의 악의와 무능, 게으름, 이 모든 것을 가진 그저 비열한 사회인의 한 사람에 불과했고 그 모든 것을 갖춘 사회인에게 자신이 제자로 두고 있는 중학생의 글을 각색해 의무적으로 투고하는 지역신문의 사설란에 제출하는 정도의 비행으로 좁쌀만 한 자신의 명예를 이어나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터이다.
이 사회에 그런 정도의 인간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 선생에게 그런 일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작은 비행에 불과한 일일 뿐이다.
무능하고 게으르고 부도덕한 인간은 소년의 빛나는 시간을 훔쳐 매우 작은 명예를 얻었다. 지금쯤 와서 제자의 글을 표절한 선생의 글 따위..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글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 그 글 따위를 훔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찰나의 명예를 가졌다.
하지만 소년은 아직 그 선생을 기억한다. 소년의 빛나는 시간을 훔쳐 간 선생님으로 똑똑히 기억한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소년이 어릴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바뀌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증명하고 처벌해 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고도 한다. 인식은 바뀌었으나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해 [저작권]이라는 권위 있어 보이는 타이틀과는 달리 여전히 무능, 게으름, 부도덕과 같은 작은 정도의 악의에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유명무실한 권리가 되어버리곤 하는가 보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처벌만이 아니다. 소년은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중학교 때의 작은 해프닝으로 인해 국어선생을 무능, 게으름, 부도덕으로 기억한다. 이 작은 해프닝을 빚어낸 그 선생도 그때의 일을 문득문득 기억해 내고 졸렬한 자신에게 이불킥이라도 한 번씩 해주길 어른이 된 소년은 진심으로 바란다.
소년의 경우라면 얼마 이하의 벌금, 몇 시간 동안의 사회봉사보다 진정 무서운 것은 자신이 누군가에 무능, 게으름, 부도덕으로 기억되는 것이 더 큰 수모이자 형벌이라고 생각한다.
모르는데서 들리는 나에 대한 비난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무형의 것이라도 훔치는 건 도둑질이다.
이 경우에는 소년의 빛나는 눈과 글을 쓰며 즐거워했던 시간, 무엇이던 될 수 있었던 소년의 미래를 훔친 것과 같다. 무능, 게으름, 부도덕이라는 도구와 위장술을 가지고 말이다.
어떤 창작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도 마찬가지이다. 그 보이는 결과물에는 보이지 않는 생각과 그 결과물이 가져다줄 미래에 대한 기대, 다듬고 또 다듬었을 정성과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도둑질에 대한 형벌은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와 같은 변명을 아무리 해대며 피해 다닌다 할지라도
무능, 게으름, 부도덕으로 무장한 채 악의를 눈감고 저지르고야 말아버리는 뻔뻔하고 비열한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