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한국은 3월부터 시작입니다.
어느덧 26년의 3월 중순이다.
26년에 접어들면서 적어도 일주일에 하나씩은 글을 쓰자던 자신과의 약속은 단한번도 지켜지지 못한 채 어느덧 여기에 와있다.
감히 단언컨데 25년 연말과 26년의 연초는 그 어떤 시기보다 격동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아내의 독립선언" 이였다.
나의 아내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였다.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신생아 같은 사람이다.
언제나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즉흥적으로 판단해서 크게 성공하기도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을 10년 가까이 가장 가까운데서 지켜보며 다치지 않을까? 넘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살아온 나는 어느 순간 그게 너무 지겹고 화가 났다.
거의 10년만에 솔직하게 나의 화를 쏟아 냈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문자 한통을 남기고 가출 했다.
신생아 같은 선택이였다.
나를 가장 사랑하고 나를 가장 동경하며 나를 가장 재밌어 하는 동시에
나를 가장 미워하고 나를 가장 닮고 싶지 않아하며 나를 가장 지루해 하던 나의 아내
호와 불호의 모든 감정을 나를 통해 발산하던 그녀가 나 없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정했다.
나 자신에게는 큰 충격이였지만 사실 오래 가지 않을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독립한지 2주후부터 우리는 매주 금요일에 만나 연애 때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더 많은 술을 마시고 더 많은 사랑을 나눴다.
짧지 않은 결혼 생활 동안 그녀는 점차적으로 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었고 진솔한 대화가 오히려 해가 되어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리곤 두어달이 지나 어느날 갑자기 독립선언을 중단하고 싱글 침대를 하나 사는 조건으로 다시 집에 돌아왔다. 강아지가 침대에서 함께 자는데 너무 큰 강아지 인 탓에 함께 자기가 힘드니까..라는 이유였다.
신생아 같은 선택이였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가출도, 귀가도 아무말 없이 가만히 지켜보고 받아들였다.
마음은 다쳤으나 신생아에게 상대의 다친 마음이 어떠한 의미로 다가갈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그러렴" 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
연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삶의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서로 잘 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 될지 무언가의 도화선이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이 사건이 무엇이였는지 밝혀지겠지만 서둘러 의미를 찾아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은 잘 됐다.
원래 함께 하던 클라이언트와의 재계약도 잘됐고 나쁘지 않은 신규 클라이언트도 유치해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서 가장 좋은 점은 일희일비를 솜씨 좋게 감출수 있다는 점이다.
나이가 든다고 나 자체가 변해가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감정에 휘둘려 선택하지 않을수 있게 된다는 장점은 분명히 생겨 가는 것 같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렸을때부터 음악이 꿈이던 나는..어렸을 때는 부모의 견제에 막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자립해서 살아가야 하는 생활에 막혀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던 나는 드디어 마흔이 넘어서야 한발 딛게 되었다.
단지 악기를 하나 배운다는 것보다 큰 의미가 있는 시작이였던 탓에 이제 겨우 한 달 정도 되었지만 지금까지는 매우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연습하고 있다.
기타와 음악에 대해서는 한번 더 깊게 이야기 하고 싶다.
간단한 리뷰 정도로 소비하고 싶지는 않아서 막 적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정리하겠다.
그렇게 26년의 1분기가 마무리 되고 있는 지금까지는 놀랍게도 나쁘지 않다.
한번의 감정을 서로 크게 쏟아내었던 탓에 아내와의 관계도 좋아졌고
일도 괜찮고
음악도 시작했다.
그리고 글도 겨우 하나 쓰기 시작했고..
이런 저런 일이 있었고 글을 매주 하나 정도는 써보겠다던 약속은 못지켜 왔지만
26년은 이제부터다...원래 한국은 3월이 시작이다.
나와 이 글을 읽은 모두에게 좋은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원래 한국은 3월부터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