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으는 원더우먼 아니고 호빵맨
그 옛날 디지털 시대를 상상도 못 할 오래전 유년 시절, 양쪽 여닫이 문이 달려서 장롱처럼 열고 닫을 수 있는 사각 다리의 텔레비전.
나는 그 텔레비전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푸른 눈 금발머리의 배우들이 나오는 주말의 명화와 토요명화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는 보기 드문 아이였다. 그 시절 새나라의 어린이는 9시에 자야 된다고 방송까지 나오던 시절이니,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그 프로를 보고 싶어, 유일하게 떼를 쓰며, 9시 뉴스를 보시려던 아빠와 기싸움을 벌이고, 엄마의 편파적 결론으로 토요일은 뉴스대신 토요명화를 즐기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그 시절 작고 조용하며, 극 내성적이어서 남의 집에 놀러 가는 일이 생기면, 배가 꼬르륵 들러붙어도,
' 배 안고파요.' 하고 모기만 한 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 그런 아이였다. 아마도 그런 아이의 유일한 자기주장이라 엄마도 내 편을 들어주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토요일이면 새나라의 착한 어린이가 아니고, 미국 영화에 너무나 몰입하여 집중하는 다소 조숙한 착하지 않은 어린이가 되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것을 딱히 나무라지 않으시고 신기하게 여기셨던 듯하다. 나는 그렇게 아주 어릴 때부터 외화를 보며 자랐고, 그 당시는 성우가 우리말 더빙을 하는 영화였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때 영화에 대한 관심과 재미가 결국 영어에 대한 흥미로까지 이어진 듯하다. 학창 시절 그리 공부를 잘하진 못했는데, 국어와 특히 영어 성적이 잘 나왔던 것에 대한 나름의 추론을 해본다.
토요명화 외에 내가 가장 애정하는 미드들이 있었다. 우리 세대들은 아마도 모두 한 번쯤은 보고 들은 바 있을 터이다. ' 6백만 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특히 이 세 프로는 나의 애청 리스트로 본방 사수는 물론이고 혹여라도 놓치면 눈물이 나올 만큼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장 애정하는 프로는 바로 '원더우먼'이었다.
나에게 그녀는 아프로디테 보다 아름답고, 아테나 보다 지혜로우며, 헤라클레스 못지않은 파워의 전무후무 유일 무이한 나만의 히어로였다. 나는 그녀의 탐스런 머리와 눈부신 얼굴, 완벽한 몸매와 특히 악당을 한 손으로 때려잡아 던져버리는 그 모습에 항상 매혹되었다.
초등 시절 내내 원더우먼은 나의 우상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처럼 아름답고 강인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 잡혔으나, 현실은.... 날으는 원더우먼이 아니라... 날으는 ‘호빵맨’이 나의 캐릭터로 불리게 되는 참으로 서글픈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다. 나는 원더우먼처럼 매끈하고 세련된 얼굴형과는 전혀 상이하게 동그랗고 특히 광대 부분에 얼굴 살이 많아서 친구들이 부르는 ‘호빵맨’을 양심상 차마 안 닮았다고 주장하지 못했기에 한동안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그 별명을 얻게 되었다.
설상가상 얼굴 살이 많은 이들은 붓기도 잘하였다. 밤에 뭔가를 먹고 자는 날은 다음날 얼굴이 보름달이 되어, 거울에 비친 퉁퉁 부은 얼굴을 보며 짜증 섞인 불평으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어쩌다 미팅이 잡히는 날엔, 전날 저녁은 금물이며, 배고픔을 참으며 다음 날 아침 붓지 않으려 쌩으로 굶는 것은 필살기 전략이었다.
새벽까지 함께 먹고 놀고 잤는데, 다음 날 아침에 멀쩡한 절친의 얼굴과 불어 터진 만두가 되어버린 내 얼굴을 보면서, 참으로 가혹한 나의 운명을 탓하고, 나의 체질을 저주하며 슬퍼하곤 했다.
대학 시절에도 남사친들은 나의 통통한 얼굴을 보고 나의 몸무게를 항상 앞자리가 다르게 지레 짐작하며 나를 더욱 분노케 했다. 사실 나는 얼굴만 통통하고 동글하지 몸집이 작고 가늘어서 생각보다 몸무게는 적게 나가는데 말이다. 단지 나의 얼굴만 보고 실제 몸무게보다 항상 더 큰 수를 매기는 것은 여자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휴, 한참 외모와 젊음이 무기인 그 시절, 나는 얼굴로 인해 벌써 마이너스 오십 점을 먹은 것이다.
그렇게 학창 시절부터 젊은 시절까지 사랑하지 못했던 나의 얼굴이..
어른이 되면 젖살이 빠진다고 으레 들어왔고, 나의 주변인들을 보면서 그 말을 실감하게 되었는데, 나의 경우는 살짝 비껴가는 느낌이었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얼굴은 동그랗고 살이 많아서, 나는 그냥 그렇게 태어났나 보다하고 체념하고 살다가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또래 친구들은 물론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 조차 쏙 빠진 볼살 때문에 걱정과 한숨을 쉬며 시술얘기가 한창인 가운데, 가끔 나를 힐끗 보며 하는 말이,
"언니, 고마운 줄 알아. 그 볼살이 있어서, 그거 백만 원짜리야. 알아? 나 팔자주름 맞고 왔잖아."
살짝 나의 핸디캡 같았던 얼굴이 요즘은 어딜 가도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칭찬으로 바뀐 현실에 가끔 웃음이 나온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하하하하. 한참 어린 절친 한 명이 맨날 나에게 칭찬인지 구박인지 알 수 없는 말로
헷갈리는 멘트를 날린다.
" 언니, 그렇게 드레시한 옷 입지 마. 언니는 캐주얼한 게 훨씬 예뻐."
" 야, 나도 가끔 드레시하고 예쁜 옷 입고 싶다고. 맨날 운동복에 캐주얼만 입냐! "
" 언니, 나이 들면 어려 보이는 게 짱이야! 예쁜 거보다 동안이 진정한 승자라고! 언니에게 어울리고 그게 젤 어려 보이고 예뻐! 그런 드레시한 옷은 음.. 좀 안 어울리고 나이 들어 보여."
어찌 됐든 운동하며 어린 친구들과 몇 해를 함께 어울리다 보니 그 말이 진실인지 주문인지 어느새 나의 스타일은 쏘우 영 해졌다. 가끔 차려입고 나갈 일이 생길 때는 이제 어색하기까지 하다.
나이에 맞게 옷을 입는다는 개념은 이제 나에게 사라졌다. 그냥 나에게 어울리게 입는 걸로!
어찌 됐든 조금 철학적으로 풀어보자면, 나의 약점이 언젠가 나의 강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인생 얘기이다. 키가 작아 평생을 슬퍼했지만, 지금은 그 덕에 딸아이의 힙한 외투를 훔쳐 입을 수도 있고, 사춘기 아들 눔의 작아진 비싼 아웃도어도 내가 물려 입으니 경제적으로도 아주 흡족하다.
태어난 대로 살다 보면 그것이 저주인지 축복인지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결론이다.
수많은 나의 내면 아이 속 외침덕에 나는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게 되었으니. 인간이 고난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는 진리는 꼭 이름난 철학자들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어느 정도 살다 보면 자연스레 얻게 되는 세월의 진리인 듯하다. 어쨌든, 요즘은 이렇게 낳아주신 부모님을 많이도 원망했던 시절이 무색할 만큼 감사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