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열망을 품게 된다. 그것이 누군가에는 ‘돈’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외모’, ‘명성’ , ‘학벌’, 또 누군가에게는 ‘영어’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본인 스스로만 아는 것이다. 그것을 내보일 수도 꼭꼭 숨기고 마음 깊은 곳에 품으며 남몰래 칼을 갈 수도 있으니, 동경이란 이름은 질투와 시기심으로 내몰릴 수도 있고, 열망은 집착과 강박으로 내달을 수도 있으니, 그것의 강도와 마음 깊이는 본인 스스로 잘 이해하고 달랠 일이다.
나는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는 ‘운동’에 대한 동경심이 되살아 났다. 좋은 엄마도 되고 싶고, 자기 계발도 하고 싶고, 커리어도 쌓고 싶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은 먹고 싶은 것만큼이나 많은데, 몸이 따라 주지 않으니 번번이 몸살을 앓고 날 때면, 결국 ‘운동’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커져갔다.
걷기나 계단 오르기.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하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윗집 아줌마로 인해 나는 ‘배드민턴’에 대한 호기심이 급 상승하였다.
" 안녕하세요? 운동하시나 봐요." "응, 나 배드민턴 치잖아. 애기 엄마도 해. 진짜 좋아. 재밌고."
" 아, 그래서 날씬하시구나." " 아니, 내가 좀 호리호리하긴 해도 나이가 있어서 뱃살이 있었는데, 배드민턴 하고 싹 없어졌어. 난, 요 중학교 강당에서 저녁에 쳐. 시간 되면 놀러 와."
잠시 인사 나누다 알게 된 윗집 분의 그 날씬한 자태가 배드민턴덕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특히나 절대 빠지지 않는 뱃살을 없애주다니.. 배드민턴에 대한 호감도가 백배 증대.
나는 배드민턴에 대한 호감도를 넘어 이제 도전의식 단추가 눌러져 주위 친구들에게 배드민턴을 배우자고 제의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목 디스크가 있어서 못하고, 팔이 아파서 못하고, 레슨비가 비싸서 못하고....
에잇, 까짓 거 혼자 해보지 뭐. 문화센터 전단지를 꼼꼼히 뒤져보다, 등록을 감행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거기서 가르쳐 주는 대로 해보고, 수강생들과 치면 되지 뭐' 하는 순진한 생각을 품고서....
큰 실내 체육관에 들어서자 그 규모에 한번 놀라고, 안쪽에 코트가 네 개 정도 있고. 바깥으로는 트랙선이 그려져 있어서, 체육센터 유치부 아이들이 체육 하는 모습도 보이고, 나는 난생처음 서울 구경온 시골 촌놈처럼 두리번거리며, 어색한 발걸음으로 코치님이 계시는 가운데로 걸어갔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왕초짜 신입 수강생이 한 명 더 있어서, 우리는 같이 라켓 쥐는 법과 발 자세등을 배웠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수업은 거의 십여분 될까? 짧은 가르침이 끝나고 나머지 시간은 우리끼리 연습하며 게임하라 하신다.
우리 두 신입생은 어색하게 배운 스텝은 당연히 무용지물, 되는 대로 막 치기 시작한다. 공을 놓치고, 헛질하고...
다른 코트에는 선배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끼리 깔깔대며 대화도 나누고, 둘씩 짝지어 복식으로 혹은 단식으로 재미나게 치는 모습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엉거주춤 어색 무안한 릴레이는 너무나 큰 대조를 이루며, 우리를 더욱 주눅 들게 했지만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견딜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이라 한 달이라도 겨우 네 번 수업을 들었기에 뭐 하나 나아지는 느낌은 없었는데,
'그래도 시작이 반이다'라는 희망을 품으며 나가는데...
이런.. 날벼락이... 같이 하던 신입회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다. 뭐.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해도 가지만, 그래도 함께 하다 보면 될 것을... 아... 이제 나는 정말 원주민들이 사는 외딴섬에 유일한 친구는 탈출하고 혼자 남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큰 체육관에 나 혼자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모든 선배수강생들은 예쁜 스포츠 스커트에 머리 밴드를 차고, 누가 봐도 다들 운동하는 모양새이고, 나는 집에서 입을 법한 추리닝 바지에 편한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있기에, 옷차림 때문에라도 나의 모습은 더욱 눈에 띄었다.
코치님은 역시나 한 십여분 설명을 해주시고, 나머지 선배들을 향해 "함께 치세요." 하며 소리치고 사라지셨다.
나는 혹여나 그들이 내 곁으로 와서 친절하게 매치를 해줄까 부푼 기대를 품었으나, 코치님이 사라지자마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짝을 지어 경기를 하기 시작했고,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 이런 무안함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입술이 바짝 말라 들어가고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지금 바로 박차고 집으로 나가야 하는 건지.. 차마 그들의 눈도 못 보겠고. 대환장 직전이었다.
휴, 큰 숨을 내쉬고, 셔틀버스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어쩌지.. 에잇 가만히 서있는 가마니도 아니고.. 뭔가 해야 했다. 너무나 쪽팔려서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일단 이 창피함을 덜어내기 위해 라켓을 쥐고 코치님이 가르쳐준 스윙 연습을 하는 척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날 만큼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에 몰입하였다.
그렇게 십여분이 흐르자 어디선가 코치님이 내 곁으로 걸어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 아, 다행이다. 나를 구원하러 오시나 보다!'
네? 벽에다 치라고요?
스쿼시도 아니고 셔틀콕을 벽에다 치고받으라 신다. 황당무계..... 정말 이렇게 수업하는 게 맞나??
그냥 다른 회원들이 나랑 안쳐줄게 뻔하고, 나 혼자 덩그러니 서있게 하기는 그러니, 대충 짜낸 묘안 아닌가?.. 너무나 의심스러웠으나, 나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시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5분쯤 흘렀을까...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현타가 밀려오는 것을 꾹꾹 누르며 셔틀콕을 줍고 벽을 향해 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또 다른 대 쪽팔림 시추에이션이 벌어졌다. 바깥 트랙을 도는 유치부 아이들이 내가 벽을 향해 치는 그 사이로 러닝을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은 뛰면서 모두 나를 힐끗 쳐다보고,
" 뭐 하는 거예요?"
아... 이젠 안 되겠다. 한계에 다다랐다. 라켓을 쥐고 터벅터벅 백기를 투항한 패잔병처럼 체육관을 걸어 나왔다.
' 내가 다시는 배드민턴을 하나 봐라. 내가 미쳤지. 이런 수모를 겪으려고, 돈을 내고 왔다니...'
그렇게 나는 삼십 대 중반에 배드민턴에 대한 쓰디쓴 기억을 온몸에 새기고 포기하였다.
오십이 넘어 줌바를 하면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운동이 끝나고 새로운 신입에게 환영인사차 인사말을 건네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해 주는데, 한 친구가 배드민턴을 오래 했다 하는 소리에 십몇 년 전 나의 배드민턴 실패기가 떠오르면서 그때의 수모를 늘어놓으니 모두가 빵 터지며 깔깔대고 웃는다.
배드민턴은 절대 혼자 배우러 가는 게 아니란다. 그래서 나 같은 수모를 겪지 않으려면 친구와 함께 등록해야 하는 법칙은 나만 몰랐던 것인가 ㅠㅠ 충분히 이해되는 순간이다.
새로운 친구는 조금 가르쳐 줄 수 있냐는 나의 기대 없는 물음에 진심으로 답하여 어리둥절 황송하게도
나와 친구들은 그렇게 배드민턴을 배우게 되었다.
기본 라켓을 잡는 법부터 스윙, 스텝까지 꼼꼼히 가르치는 그 친구는 타고난 코치처럼 우리에게 성심껏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주 1번씩 배우고 함께 치면서 새로운 운동크루까지 결성하였다. 이른바 '배사모'
배드민턴을 사랑하는 모임.
하하하하 돌이켜보면 아직 많이 젊었던 시절 서러움에 목매어 포기했던 배드민턴이었는데, 이제 이렇게 중년이 되어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즐기게 되다니.... 진짜 오래 살고 볼일이다ㅋㅋㅋ
이제 우리는 시에서 운영하는 실내코트장으로 가서 친다. 벌써 2년째이다. 물론 나의 실력은 뭐. 아직 보잘것없지만, '배사모'와 함께 하는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흐뭇할 뿐이다. 특히나 날씨가 안 좋고 추운 겨울에 실내코트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땀 흘리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잘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배드민턴을 하면서 사람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