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살리려다 유투버 되다

by 카야

한참 유튜브 플랫폼이 거대해지며, 듣도 보도 못하던 새로운 직업 '유투버'.


요즘은 '크리에이터'로도 불리는 그 직업을 그저 재미있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본업을 콘텐츠 삼아 정보를 전달하거나, 자신의 일상을 찍어서 공유하는 '브이로그'를 보면서 참 세상 희한하다 여겼다.


예전엔 그저 확실한 현물이나 주고받는 정보가치로 돈을 버는 세상에서 살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그저 담담하게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병맛'이라는 이름으로 황당하고 어이없는 영상들로 큰 인기를 얻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정보성 영상을 찾아보며, 많은 도움을 받고 그 신속한 편의성에 감탄하며 유튜브 세상을 찬미하기도 하였다.


유쾌한 시트콤 라이프를 꿈꾸면서, 친구들이 종종 유튜브 하라고 부추길 때도 그냥 웃으며 흘려보낼 뿐, 내가 얼굴을 까고, 온 세상에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직장인들이 가슴에 항상 품고 다니는 사직서 이면에 ' 때려치우고 유튜브나 해야지'라는 말은 온 직장인의 입버릇처럼 맴돌아 내 귀에도 울려 퍼지니, 여하튼 유튜브는 모든 이에게 지금 당장 갑갑한 현실의 막다른 탈출구로 여겨진 듯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 치부해 왔던 일인으로 그 '개나 소나 다 유튜브 한다'라는 세인들의 말처럼 내가 바로 그 개나 소가 되었다. ㅎㅎㅎㅎㅎ 인생은 어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한치 물러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인생이다.








늦둥이로 낳은 아들눔은 백일 때부터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겨왔다. 그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내던 차에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조금씩 문제가 발생했다. 유치원에서 하는 방과 후 수업을 너무 싫어해서 기어 다니거나 문을 열고 나가기도 하는 등 상담을 가면 꼭 선생님의 눈치 어린 말씀을 들었다. 그때마다 그저 아이를 타이르고 넘어가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7세가 되자, 조금씩 아이의 사회성 발달 상황이 심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에 목말라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놀이터에서든 축구교실에서든 쉽게 융화되지 못하고 열외 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고집도 강하고, 감정도 예민하여 상처를 잘 받았고 그에 대한 분노 표현도 속으로 삭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바로바로 표현하기에 친구들은 더욱 멀어져 갔다.


아이를 들여다보면서 '엄마'라는 역할의 자신을 재조명해 보며, 한동안 꺼지지 않는 한숨과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들 눔이라 그냥 둥글둥글 잘 클 줄 알았다. 그냥 무심히 나둬도 내가 욕심부리지 않으면 무난히 클 거라는 옛날 어르신들 말씀이 진리인양 방목하다 못해 방임하여 키웠다.


늦게 낳아 체력적인 부담이 너무 크고, 다시 빨리 일을 시작해야 하는 조급함이 맞물려 근거 없는 믿음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나는 몸과 마음이 지쳐서 거실 소파에서 밤새 미드를 보다가 잠들기 일쑤였는데, 종종 아이는 그때에 내 옆에 있었고, 너무 이른 나이에 미디어에 노출이 되었다. 그것도 아름답고 서정적인 프로가 아니고, 그 당시 유행했던 좀비 시리즈며, 악마와 싸우는 퇴마사들의 이야기 등등..


큰 아이는 육아서를 씹어먹을 만큼 충실하게 노력하며, 사랑과 정성을 다했던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육아 현실...

큰 아이는 여자아이며, 어릴 적 모두의 부러움을 살만큼 순한 아이여서 나를 한 번도 힘들게 한 적이 없었다. 나오지 않는 모유대신 분유를 너무나 잘 먹어주었고, 한번 먹으면 쭉 내리 잠들어 새벽에 나를 깨우며 힘들게 한 적도 없는 순하디 순한 아이였다. 신기하게도 육아서에 나온 연령별 발달상황에 꼭 맞게 움직이는 아이처럼 목 가누기, 배밀이, 기어가기, 걷기 등 빠르지도 않았지만, 육아서에 나온 그대로 모든 발달 과정을 신기하게 보여주는 기쁨을 선사하였다.


나 역시 딸 하나 최고로 최선을 다해 키우리란 다짐으로 주먹 불끈 쥐었던 시절이었다.

엄마 공부를 하며, '엄마'라는 내 역할에 올인하던 시기였다. 몸에 나쁘다는 인스턴트 음식이나 탄산수도 초등 고학년이 될 때까지 먹이지 않았고, tv 프로그램도 노출시키지 않도록 애썼으며, 내가 가진 유일한 재주인 '영어'능력을 발판 삼아 아이를 '이중언어자'로 키우는 프로젝트를 실시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주변인들이 재수 없었을 듯 ㅋㅋㅋ 유난히도 유별을 떨며 키웠다. 매일 영어와 우리말로 번갈아 가며 말을 걸고, 서정적인 영어 동화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읽어주고, 영어 동요를 한 시간씩 불러주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영어로 말을 주고받고 남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고 아이만 바라보았던 시절이었다.


아이는 나름 어렸을 적엔 이중언어 아이로 모두의 주목을 받을 만큼 잘 자라주었다. 무엇보다 영어를 '언어'로 인식하여 자라면서도 영어 책을 즐겨 읽고, 영화와 팝송을 즐기는 아이로 자라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 고학년에 접어들면서 내가 놓친 많은 것의 빈자리를 느끼게 되었다.


어울리는 아이들과 공통분모가 별로 없고 취향도 너무 다르기에 아이는 여자아이들 틈에서 항상 치이는 현실이었다. 어른들과 선생님께는 칭찬과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또래 여자아이들의 눈치게임에서는 백전백패이었기에 항상 질시와 시기심 속에서 무시를 받곤 하였다.


초등 중등 내내 한 두해 빼고는 임원을 맡고 상장을 휩쓸었으나, 여자아이들 틈에서는 항상 은근한 무시와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아이는 자존감이 높고 눈치는 없었기에 잘 견뎌주었지만, 지켜보는 엄마의 가슴은 철렁하기 일쑤였고, 분에 못 이겨 남몰래 화를 삭이는 날이 많았다. 그러면서, 나는 초보엄마의 편향적 육아관이 사로 잡힌 듯하다.

아이는 그냥 평범하게 둥글게 둥글게 키워야 한다는, 욕심내지 말고 보통 아이들 하는 것처럼 인스턴트도 먹고, tv도 보고 편하게 키워야 한다는.. 유난 떨지 말고 ㅠㅠ


둘째눔 제왕절개 수술 날짜와 이름을 짓기 위해 동네 이름난 철학관에 갔었더랬다. 그분 왈,


" 함 키워봐. 끝내주는 놈이야. 머리가 기가 막히게 좋아. 아주 키우면서 재밌을 거야."


사실 고백하자면, 그분의 말씀이 뇌리에 박혀 공부라는 것도 전혀 시키지 않았다. 공부는커녕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어주지 못했다. 정말로 아이는 누나와 비교해 보면 하늘과 땅 차이. 천재와 바보 같이 키웠다.

큰 아이는 6살에 영어 챕터북을 읽고 영어 일기를 썼던 반면, 작은 눔은 유치원에서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 '영어' 시간이었으며,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하는 여러 가지 책이나 수업들은 전무하게 키웠다. 그래서 나는 학교 입학 준비과정차 나름 공부를 빡세게 시킨다는 유치원에 아이를 입학시켰다. 신의 한 수가 아니라 최고로 멍청한 선택이었다.


또래보다 소근육, 대근육 발달도 늦고 활자나 공부 개념을 전혀 갖지 못했던 아이는 공부콘셉의 명성을 날리는 유치원 입장에서는 완전히 미운털이자 골칫덩이였던 것이다.

뒤늦게 아이의 상황을 직시하고 바로 유치원을 그만두었다. 또래 엄마친구들이 없는 나이 든 엄마는 유치원에 대한 정보망에 어두웠기에 참으로 막막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여기저기 솔직한 상황을 오픈하며 도움을 구하여 한 유치원을 소개받았다.

기독교적인 운영으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와 사랑으로 가르치는 유치원이란다.


" 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양쪽 부모님은 불교이시지만, 사실 나는 무교주의라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가릴 것이 없었다. 그런데 거기가 공부를 강조하는 곳은 아니지만, '영어'를 특화해서 가르치는 곳이라 5세 입학한 아이들은 잘 다니지만, 중간에 다른 유치원에서 옮겨온 아이는 영어 때문에 조금 힘들 수 있다는 부연 설명을 들었다.

영어?

'오케이! 무엇이 문제냐! 내가 누구야? 바로 영어 선생이잖아!'


사실 나는 동네에서 유아부터 중등까지 가르쳐온 자칭 타칭 잘 나가던 영어 과외선생이었다.


앞으로 입학까지 세 달이 남았다. 초특급 과외로 아이를 삼 년 차 아이들과 잘 어울리게 만들어야 한다. 많은 아이를 가르쳐온 경험상 어릴 때 자신감이 최고다. 본인이 잘하면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자신감과 동기부여가 지속된다. 나는 세 달을 3년같이 초특급 밀착 영어프로젝트에 돌입하였다. 누나와 나는 아이의 영어귀가 트이는데 도움이 되고자 아이 앞에서 영어로 대화를 약속하고, 매일 동화와 함께 알파벳 따라 쓰기를 시키며 소근육 훈련을 시작하였다.

그럼, 혹자들은 왜 큰아이처럼 둘째에게는 아기 때부터 영어를 쓰지 않았냐 물었는데, 잘못된 편향 교육관으로 방임이 최선인 듯 여겼으며, 서너 살 즈음 한번 영어를 시도했는데, 내가 영어로 말을 하니, 갑자기 아이가 손바닥으로 내 입을 찰싹 때렸다.


"영어 하지 마!! "


못 알아듣는 말을 하니 답답하고 싫었나 보다.

집에 있는 서너 줄짜리 영어 동화책을 한 달 넘게 읽어주니, 이제는 자기가 가서 영어책을 골라와서 읽어달라고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밤마다 아이가 골라오는 영어책을 지난 6년을 반성하는 만큼 아주 성심껏 열심히 읽어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이는 싸우는 이야기, 전쟁이야기, 귀신, 마법등을 좋아하는데, 큰아이 취향으로 사놨던 책들은 거의 공주와 소녀, 발레리나 이야기가 많았다. 그중 'Magic Tree House'라는 챕터북 시리즈가 있었는데, 이야기는 용, 공룡, 중세 기사등 아이의 관심을 끄는 삽화가 있는 6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들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그중 한 권을 들고 와 읽어달라는 것이다.


" 뭐? 이거? 00야, 이건 네가 읽는 게 아니야. 초등학생은 돼야 읽을 수 있어. 봐 글이 이렇게 많아. 엄마가 읽어줘도 너는 이해할 수 없어서 재미없어. 이건 네가 좀 더 크면 읽자."


아이는 싫다고. 괜찮다며 읽어달라고 계속 고집을 부렸다. 나는 올라오는 짜증을 누르고 한숨을 크게 내쉰 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치를 계속 살피면서, 언제쯤 그만 읽자고 하나 신호를 기다리며 읽어주는데, 아이는 딴청을 피우다가도 내가 멈출 기세를 보이면, 빨리 읽으라고 다그치면서 60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잠들지 않고 기다렸다.

나는 목이 잠기고 힘들어 죽겠으나, 도대체 이 아이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나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는 3월에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새로운 유치원에 7세 입학을 하였고, 듣던 대로 사랑과 이해심 많은 담임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덕에 무사히 졸업을 하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3학년까지 선생님들께 불려 나갔다. 특히 엄격하고 공부 욕심이 많은 여자 선생님을 만나면 혹독하게 꾸지람을 받았지만,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나는 공부에 전혀 욕심 없는 쿨한 엄마처럼 굴었고, 단지 아이가 집단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랬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아이는 또래들에게 집착하며 어떻게든 무리에 끼기 위해 눈물겹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5학년때부터 아이들끼리 축구피구가 유행하였는데, 모두들 맡기 싫어하는 골키퍼를 일 년 내내 자처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름 그 희생과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보다는 측은함이ㅠㅠ 아이는 그중에서 가장 키와 몸집이 유난히도 작은 아이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많은 일들을 나는 담담히 바라보려 노력하였다. 한차례 육아를 경험한 나이 든 늦둥이 엄마였기에 아이에게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들과 억울하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한 발짝 물러나서 지켜보려 애를 썼다. 무조건 아이의 편을 들기보다는 어르고 달래고 상황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며 혼내고 마음을 쓸어내리곤 했다.


하지만, 6학년이 되자 아이들의 양상은 매우 급변하게 돌아가고, 안 그래도 적은 학급 인원 속에 몇 명의 눈에 벗어나자, 몇 달 후 모든 아이들의 눈총과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이는 순종적이고 모범적이지 않았기에 담임 선생님의 비호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선생님의 짜증과 질책 어린 눈총을 받는 아이의 모습은 다른 아이들의 만만한 골칫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부모는 당황한다. 내가 알던 상식과 큰애 때의 경험적 기준으로 접근하는 것이 처절하게 실패하면서 패닉에 빠지게 된다. 아이는 외로움과 슬픈 상처로 점철되어 점차 크게 분노하기 시작하고 학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일단 공부라도 해야 덜 무시받고 중학교에 진학할 듯하여, 나는 마지막 수단으로 아이를 붙잡고 설득과 이해를 시키려 온갖 논리를 설파하며 영어라도 하자고 종용했다. 울부짖는 아이에게 같이 유튜브를 하자고 꼬시며, 어떻게든 아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함께 영어 콘텐츠를 찍으며, 우리가 유명해졌을 때, 네가 지금 당한 울분과 억울함을 폭로하고 너에게 못되게 굴었던 그 아이들에게 복수하자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감언이설을 하였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 함께 영어 문법 수업을 찍으며,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둘이서만 하면 서로 막말과 고성이 오갈 것을 대비하여 절친의 중학생 딸을 섭외하여 함께 진행하였다. 처음에는 서로가 흥미와 기대를 가지고 재미있게 찍었기에 나는 소기의 목적( 중등 문법 훑기)을 달성할 듯한 쾌감도 느끼었다. 하지만, 아이의 학교생활이 악화되면서, 나의 헛된 꿈은 망상으로 치닫고 우리의 유튜브 수업도 파국을 맞았다.


그렇게 중단된 유튜브는 딸아이의 격려와 부추김으로 그냥 나만의 채널로 다시 해보기로 작정하였다.

영어콘텐츠도 올려보고 숏츠도 찍어보고,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 성지도 찍어보고 ㅎㅎㅎㅎ

얼굴이 달아오르고, 입안이 바짝 말라 들어가는 것을 꾹 참고 그렇게 일 년을 시도해 보았다. 물론 아무도 모르는 채널이지만, 용기를 내어 시도해 보는 나 자신을 칭찬한다.


아들, 네 덕에 유투버 됐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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