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대로 살자!
마흔 후반 부터 조금씩 보내는 생체 경고음은 50이 되면서 마음까지 탈이 나기 시작했다. 20년 가까이 살던 동네를 떠나고 신도시로 이사를 오면서 50이 되었고, 그동안 갖고 있던 과외선생이라는 명함도 없어졌다. 이제는 나를 명명할 것이 그냥 동네 아줌마, 그것도 나이 든 늦둥이 아줌마 였다. 예전에 50이 되면 삶의 여유도 있고 현자같은 미소와 큰 어른 같은 언니의 모습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어찌하다 보니, 50이 되었고 현실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나오며, 아끼던 이들과의 이별도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처럼 아름답진 않았다. 한때는 그 드라마에 빙의하여 다정하고 좋은 이웃 친구로 평생가리란 욕심을 부렸으나, 어느 한 순간 금이 가니, 겨우 붙여놓은 테이프가 무색하게 결국 사방 팔방 균열을 일으키며 사랑했던 마음과 행복했던 시간만큼 아픔과 상처들로 얼룩졌다. 멀어진 물리적 거리만큼 그렇게 서서히 서로를 놓아버리며 깊은 상채기를 남기고, 새로운 동네에 정을 붙이지 못한채 자발적 순리적인 방콕녀의 삶을 살게 됬다.
사람이 싫고 혼자가 주는 편안함에 빠져 들었다. 사람 없이 못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몸과 마음이 탈이 난건지 아님 나이가 주는 성향의 변화인지, 인간 관계에 대한 회의감인지 어찌됐든 나는 종일 집에 처박혀서 지내고 있었고, 한동안 그 평화로움이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 50엔 어떻게 살아야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많은 책들이 관계에 대한 피로와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강조하며, 혼자하는 삶, 혼자만의 시간, 소소한 행복거리등 사람들과 멀어질 것을 조언하고 있었다. 내 몸과 맘 하나 다스리기 힘겨운 가운데, 연로해지는 부모님이 던져주는 불행 주머니도 점점 더 버겁고 무거워지니, 어찌해야 할지 갈수록 태산이었다. 유투브를 켜봐도 50이 되면 해야할 일 과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나.. 한결같이 삶을 축소하고 말을 아끼고 사람을 믿지말란등 무정한 경고들 뿐이었다. 조금씩 자의반 타의 반 이웃들을 만나게 되면서도, 조심하고 경계하느라 마음이 편하지 못하였다. '말수를 줄여야 해. 난 말이 너무 많아. 주저리주저리 신상얘기 하지마. 필요한 것만 해. 잘난척 하지마. 아는 척 하지마.' 아.. 되뇌이고 다짐하고 사람들을 만날때면, 아 차 싶다가 집에 돌아와 후회하기를 반복하며 우아하고 성숙한 어른 흉내를 내느라고 관계는 더욱 더 버겁고 귀찮아 질 뿐이었다.
아, 힘들다.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고. 기냥 외롭지만 혼자 속편히 지내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법륜 스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다가, 정신과 닥터들의 속을 보이지 말라는 충고에 다시 정신을 가다듬기를 반복하며 그들의 말씀에 동조하여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점점 외로운 내 마음의 무게가 불행의 크기만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의 광고 문구가 때 마침 내 마음에 꽂히게 되었다. 정문정의 '사람에게 돌아가라' 크나큰 감동보다는 아무래도 내 마음속 도리질에 맞장구를 쳐주는 책이기에 크게 힘을 얻었다. 책을 읽고 난 후 용기를 내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동안 선택적 내향인으로 살다 보니, 이제는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래,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회복되고, 인간은 진화 심리학적으로도 사회적 동물임이 분명하거늘, 왜 자연을 거스르고 홀로 고독히 지내야 하나!
다시 사람을 만나보자. 관계를 무서워 피하지 말고 성숙하게 이어갈 노력을 해보자. 그러려면, 나는 다시 예전의 나 로 돌아가야만 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우아한 어른은 집어치워. 그냥 나 답게 살자. 말도 많고 목소리도 크고 잘난척도 가끔 하지만 의리와 신의를 중시하고 열정도 있는 나로. 내 나머지 인생은 우아하고 성숙하여 존경받는 어른은 포기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재미있고 유쾌하며 대화가 통하는 그런 어른으로 살아가 보리라. 나머지 내 인생은 웅장한 대하 드라마도 아니고, 어둡고 시린 가슴의 자전적 소설도 싫다. 달콤 상큼한 로맨틱 코메디는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을 유쾌하게 그려내는 시트콤이 내게 딱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