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도 과외를?!
평생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지냈다. 먼 옛날 어린 시절 운동회에서 손목에 3등 이상 도장을 받아본 적도 없다.
성인이 되고 나서, 스포츠 잘하는 사람에 대한 열망으로 여러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테니스, 검도, 볼링 등 시도는 거창했다. 장비 부심이 있어 비싼 테니스 라켓을 구입했으나, 게임 한번 해보지 못하고 자세만 잡다가 그만뒀다. 팡팡 경쾌한 테니스 공이 서로 오고 가고 예쁜 스커트를 입고 코트를 누비는 내 모습은 머릿속 상상으로만 남았고, 현실은 어정쩡한 포즈만 한 달 내내 취한 채로 번번이 내 라켓을 피해서 날아가는 공들을 무수히 줍다가 끝이 났다.
다음 도전은 검도로 이어졌다. 검도장에 멋진 남자들이 많다는 꼬드김에 직장 내 같은 부서 언니와 설렘반 호기심반으로 등록했다. 퇴근 후 저녁반에는 소문대로 젊은 사범을 비롯하여 청년들이 바글바글 했지만, 나의 기대를 충족하는 이들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가 않았다. 아휴. 설레는 청춘 드라마는 포기하고, 비싼 호구 세트에 카드값을 바치고, 멋지게 죽도를 내리치는 내 모습에 투자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쩌다 대련할 때면 나보다 야리야리한 여 사범에게 머리 한 대 맞고 나가떨어지는 창피는 나만의 몫으로 어찌어찌하여 급수장만 손에 쥐고 제대로 시합도 한번 못해본 채 끝내게 되었다.
한 참 후 직장에서 만난 친구의 부추김에 나는 다시 볼링을 등록했다. 역시나 비싼 마이볼과 장갑등 카드값이 휘청이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꼭 제대로 배우고 마스터해서 볼링 동호회에 나가보겠단 빅 픽쳐를 그리며 레인에 섰다. 아, 도대체 왜 내 공은 쪼르르 도랑으로만 빠지는지... 제대로 자세를 배운다고 하는데도 나의 공은 10번 중 7번은 도랑으로 빠졌다. 난 정말 운동에는 젬병이었다.
세월이 흘러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을 즈음 유일하게 만나던 동네 친구들이 두 명 있었다. 코로나 기간이었고, 큰 아이가 입시생이라 더욱더 사람을 조심하고 칩거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격리 기간이 길어지고 우리는 마스크 생활에 답답을 넘어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중 한 명이 실내운동도 힘드니 함께 자전거를 타자고 제의했다. ' 좋은 생각인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자전거를 못타. 난 운동에 젬병이야.' '언니, 나도 못 타요. 우리 자전거 배울래요?' 나는 체격 좋고 골프 좋아하는 그 친구가 나처럼 자전거를 못 타는 것에도 놀랐지만, 배우자는 제의는 더욱이 황당하게만 들렸다. 이 나이에 무슨 자전거야. 넘어지면 어쩌려고. 관절 다치면 끝장이야. 운동 꽝인 사람이 무슨 자전거. 걷기나 해. 그냥. ㅋㅋㅋ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이 쉽다고 배울 수 있다며 적극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지만, 난 도리질 치며 완곡히 거절하고 돌아왔다. 며칠 후 단톡방이 울렸다. '언니, 자전거 가르쳐 주는 과외선생님이 있대요. 후기도 좋아요.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대요. 탈 때까지 책임진대요.'
'뭐? 자전거도 과외선생님이 있다고?'
사교육 시장이 방대한 건 알았지만, 자전거 과외도 있다니 솔직히 충격이었다. 내가 살짝 흥미 있어하는 체 하니, 그 친구가 사고를 쳤다. 바로 예약을 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친구와 나 그리고 그 친구의 대학생 딸 이렇게 셋이 자전거 과외를 받게 되었다.
나는 실언한 것을 연거푸 후회하며, 식구들에게 볼멘소리를 했고, 남편은 기대감 전혀 없는 표정으로 그냥 예약했으니 다녀오라, '다치지만 말아라. 혹시 알아? 타게 될 수도 있지.' 라며, 위로인지 응원인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내가 집순이로만 있고, 입을 닫자 걱정을 하던 참이라 계속 망설이며 포기하려는 나에게 덜컥 자전거를 사주었다.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끌고 집 앞에 세워 두었으니, 이제는 뭐 어찌 됐든 레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설렘보다는 백 프로 걱정뿐이었다. 나만 못 타면 어쩌지? 넘어지면 어쩌지? 크게 다치면 어쩌지? 두렵고 무섭기만 했다. 우리 셋은 각자 자전거를 끌고 공원 광장으로 향하였다. 나머지 친구도 응원차 본인의 자전거를 타고 들른다고 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다른 운동들이야 뭐 내가 넘어지거나 다칠 일은 없었는데, 이건 너무 위험스럽고 무섭기만 했다. 세상에.. 내가 미쳤지, 나이 오십 다돼서 무슨 자전거야. 속으론 아우성인데 겉은 의연한 척 친구의 대학생 딸 보기도 민망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여자선생님을 바로 알아채고 인사를 나눴다. 선생님은 나보다도 훨씬 나이가 있으시고 아주 왜소한 체격이셨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스포츠 체격의 젊은 선생님을 예상했던 나는 내심 놀랐지만, 일단 선생님의 말에 초 집중했다. 네? 자전거 페달을 떼고 탄다고요? 신박하다. 과외니 역시 다르군. 우리 아이를 비롯하여 모든 자전거 배우는 수순은 뒤에서 잡아주다 슬며시 손을 놓고 혼자 타게 되는 모양만 봐왔는데... 페달 없이 내 두 발로 땅을 차며 두 발을 페달 삼아 한 발 한 발 타는 연습을 시키신다. 넘어지는 두려움을 없애주고 균형감각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와, 신기하다. 그렇게 계속 다리 밑 광장에서 내 두발을 페달 삼아 타는 건지 걷는 건지 ㅋㅋㅋ 하여튼 두려움 일도 없이 재미있게 돌고 있었다. 그렇게 자전거 균형 감각을 일깨운 후 다시 페달을 달고 한 발은 지면에 한 발은 페달에 올리고 타보기를 반복하다 마지막에 두발 다 페달에 올리고 타는 순으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아니 근데 이게 웬일인가! 기적이 벌어졌다! 강습받은 지 삼십 분만에 내가 두 발 자전거를 혼자 타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 셋 중 가장 먼저! 뒤늦게 응원을 온 친구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겉으로는 응원과 격려를 했지만, 내심 이 중에서 나는 못 타기 십상일 거라 예상을 했다 한다. 그런데, 광장을 신나게 함박웃음 지으며 열 바퀴채 뱅뱅 돌고 있는 내 모습을 본 것이다. 그 후 한 십 여 분 후 나머지 친구가 두 발로 타기 시작했고, 가장 젊은 우리의 대학생 딸내미는 아직도 낑낑대며 한 발을 땅에서 못 떼고 있었다. 이 무슨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평생 운동 젬병으로 무엇하나 큰 성취감을 맛본 적 없이 그냥 나는 이렇게 태어났나 보다 하고 포기하고 살 던 중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와, 정말 어린아이 마냥 나는 너무 들뜨고 감격스러워 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며 히죽히죽 배어 나오는 미소를 가득 품은 채 나머지 두 시간을 지치지 않고 탔다. 구름다리 밑 광장에서 같은 자리 원을 그리며 뺑뺑 돌고 있어도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자전거 타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직 앞에 사람들이 나타나면 부딪힐 까 무섭고 두려워서 브레이크를 손에 땀이 나도록 움켜 잡았지만, 두려움이 재미를 이길순 없었다. 매일 타고 싶었다. 두려움 없이 빨리 쌩쌩 타고 싶은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그렇게 꼬드기던 두 친구들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시큰둥하며, 자전거 타러 가자는 나의 제의를 번번이 피하며 봄 되면 타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우울해질 뻔했으나, 마음을 달리 먹었다. 혼자 타면 되지 뭐. 까짓 거 이제 공원까지 가는 길도 알고 두려울게 무어냐.
나는 이 나이에 자전거도 배웠는데, 집에 처박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릴 순 없었다. 유튜브를 켜고 자전거 채널을 구독한다. 밤늦도록 시청하는데 그 무엇보다 재미있고 설레고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역시나 장비 부심을 발휘하여 채널 속에 나오는 멋진 여성 라이더들을 보면서 침을 질질 흘렸다. 그들이 입는 옷과 장비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다소 고가인지라 남편에게 생일 선물로 요구하며, 하나씩 장비를 갖춰갔다. 자전거 바지, 바람막이, 헬멧, 고글, 장갑, 신발까지 풀 장착하고 나서는 내 모습은 실로 프로 라이더 같았다. 그렇게 입고 나선 내 모습을 보고 두 친구는 놀라 자빠질 뻔 ㅋㅋㅋ
근데 참 코미디가 따로 없는 것이, 복장은 전문 라이더인데... 자전거는 초등학생이 탈 법한 MTB였다. 사실 유튜브 속 멋진 라이더들은 모두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장거리를 달리는 로드 자전거인데, 푸하하하하. 친구들이 놀려댔지만 하나도 부끄럼이 들지 않는다. 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고!
겨울이 와도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가벼운 바람막이를 4겹 겹쳐 입고 고글과 마스크를 쓰고 혼자 달리니, 그 무섭던 내리막도 이제는 짜릿한 롤러코스터에 비할쏘냐! 두어 번 넘어져도 아픈지도 몰랐다. 헬맷이 있으니 죽지 않아. 머리만 안다치면 되지. 밤에는 열심히 유튜브를 켜고 열독을 했다. 오르막을 오를 때 한 번에 오를 수는 없나, 커브를 돌 때 내리지 않고 한 번에 돌 수는 없는지, 브레이크를 덜 잡아야 되는 건지, 손가락이 왜 아픈지. 궁금증은 넘쳐났고, 그 모든 궁금증들은 유튜브쌤들이 해결해 주셨다. 한때는 인공지능과 현대 미디어 발달 속도에 현기증을 느끼며, 아날로그 세상의 향수에 빠져 신 문물에 거부감이 강했는데, 자전거를 배우면서 그때의 나를 후회할 만큼 새로운 미디어 세계와 유용함에 감탄과 감사의 연속이었다.
한 겨울이 되어도 나는 눈을 뜨면 날씨부터 확인하였다 눈만 오지 않고 기온이 영하 1도 이하로 내려가지만 않으면 매일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몇 달 타다 말 거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새로운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정말로 자전거가 재미있었고 매일이 행복했다. 페달을 밟지 않고 내리막을 탈 때 얼굴에 스치는 그 바람이 너무나 시원하고 자유로웠다. 태어나서 제일 짜릿했던 순간. 그렇게 큰 성취감은 나이 오십 들어 처음이었다.
모든 게 위축되고 작아지던 나에게 신데렐라 같은 마법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다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슴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