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친구들 사귀는 법

돈을 써?

by 카야

나이가 들어 오래 살던 곳을 떠나오며 많은 인간관계가 자의 반 타의 반 정리되고, 학창 시절 친구들도 인생 히스토리에 따라, 유쾌한 단막극 시간 동안은 십여 년 넘게 서로 연락을 하고 안부를 물었지만, 쓰디쓴 연속극 막이 오르자, 각자 자신의 배역에 몰두하여 버텨내느라 상대를 배려하고 기다려 주지는 못하였다. 서서히 아름다운 추억도 가물가물해지고, 급기야는 가까웠던 만큼 큰 괴리를 느끼며 어색한 우정이 지속되다 어느 세월에 서로를 잊고 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친구가 없어졌다.


나답게 살기로 작정하고 나니, 일단 가장 큰 걸림돌은 '체력'이었다. 나는 40대가 들어서면서부터 급격한 체력 저하로 모든 일에 지장을 받기 시작했다. 열정은 넘치고 모험심이 남달랐지만, 항상 마지막엔 저질 체력에 굴복하여 많은 걸 놓쳐야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저질 체력을 저주하며 패배감에 휩싸였다. 몸이 아프고 경고음이 울릴 때마다 나는 반복적인 무기력감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신이 나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자전거 타기도 갑자기 터진 디스크에 다시 곱게 세워두기만 한 지 일 년이 되어갈 즈음 나는 친구의 권유로 동네 상가에 있는 '줌바 댄스'에 등록을 했다.


운동이 젬병이니 사실 댄스도 잘할 리 만무한 나이기에 친구가 나와 아주 어울린다는 소리는 입에 발린 소리로만 들렸다. 몇 번을 망설이며 다시금 물어보고 또 물어보니 친구 왈, "진짜야, 너랑 어울려. 나는 좀 부끄러워서 잠깐만 해봤지만, 너는 진짜 어울릴 것 같아. 어렵지 않아. 절대로. 에어로빅보다 쉬워. 국민체조 생각해. 음악을 곁들여하는 좀 우아한 국민체조."


정말? 국민체조? ㅋㅋㅋ 그렇담 뭐 네 말 믿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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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첫날 앞 두줄은 근사한 줌바 옷을 입은 언니들이 즐비하다. 딱 봐도 오랜 경력자들 같아 보인다. 나는 눈치를 살피다가 맨 뒤 끝에서 두 번 째줄에 어색하게 자리를 잡았다. 음악이 시작되고, 여기저기 눈치 볼 여유 없이 동작을 따라 하기 바빠서 한 시간 20분이 훌쩍 끝났다. 신나는 라틴 음악은 먼 옛날 잘생긴 리키 마틴이 떠오르며, 몸과 맘이 들썩거린다. 오, 괜찮은데! 나는 그렇게 줌바에 빠져들었다. 한두 달이 지나고 집으로 향하는 같은 발걸음에 인사를 건네본다. 젊고 예쁜 친구는 짧은 단답형 예의 어린 미소로 대답할 뿐 더 이상 여지를 주지 않는다. 흠.. 그래, 뭐 나이 든 사람과 친구 하기 싫다는 거지.


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 나는 다시 시도해 본다. 차 한잔 하자고. 마지못해 응하는 친구와 수업이 끝난 후 상가 커피숍에 앉았다. '아,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얼굴만 빤히 보는 어린 친구 앞에서 나는 묻지도 않는 나의 셀프 호구 조사를 풀어놓는다. 상대의 반응을 살피면서, 적정선을 탐색하며, 근 20여 년간 젊은 학부모들을 상대해 온 나이기에 과외 선생으로 접근하는 공식은 실패 없는 작전이나, 이제 나는 더 이상 과외 선생이 아니었다. 그저 늦둥이 아들눔이 있는 나이 든 왕언니일 뿐. 경계와 예의의 범위를 절대 넘지 않는 단단한 벽이 느껴졌다. 우리는 그나마 초등학생 아들이 있다는 공통분모를 발견하여 내년 초등 학부모가 되는 그 친구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선배인 척 기대와 여지를 마구 날리며 조금씩 벽을 허물어 갔다.




어느 정도 친밀도가 생겼다고 느낄 즈음, 주말에 동네 식당에 대한 문의톡을 주고받은 말미에 만남의 여부를 살짝 물었다. 자신은 주말에는 만남을 하지 않는단다. 갑자기? 지금 만나자는 것도 아닌데.. 주말에 연락한 것이 불편했나 보다. 군더더기 설명 없이 깔끔하고 단호했으나, 거기에는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내심 품었던 기대감은 단칼에 베이듯이 이른 겨울 찬서리 같이 몸이 시렸다.


설마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은 거야?? 착각은 자유라잖아. 흥 칫 뿡이다!



다니던 줌바 교실의 선생님이 바뀌면서 나는 줌바에 흥미가 뚝 떨어졌다. 앞줄의 언니들이 왜 우르르 타 동네에서 우리 동네까지 선생님을 따라오는지 이해가 되었다. 가르치는 방식도 음악과 스타일도 너무 달라서,

거부감이 들었다. 그 흥겹고 멋진 라틴 음악이 어느 날 윤수일의 아파트로 바뀌는 순간, 나는 현타가 오며, 한 달이 안돼 그만두었다.

그즈음 함께 다니던 친구도 복직을 하여 이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어느 날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줌바 수업을 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아싸! 수업료도 착하고 동네 친구도 사귈 겸 바로 등록을 했다. 수업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앞서 6개월가량 해본 이로서, 나름 잘 따라 하는 모양새에 신이 나서 맨 앞줄에 당당히 섰다. ㅎㅎㅎ 장족의 발전이다. 거의 끝줄에서 맨 앞줄이라니!



하지만 입은 열지 않기로 했다. 내 또래처럼 보이는 이가 없었다. 모두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앞선 거절의 경험으로 나는 다시 선택적 내향인으로 운동만 열심히 하기로 맘을 먹었다. 먼저 말을 걸거나 마주치는 이들에게 호감 어린 미소를 장착하지도 않았다.

코로나가 시작되며, 수업은 중단되다 재개되기를 반복하다 마스크를 벗는 날이 왔다. 그동안 서로 마스크 너머 눈빛만 주고받고 지냈기에 갑자기 베일이 벗겨져 신분이 들통난 스파이처럼 갑작스럽고 어색한 시간들이 잠시 흘렀다. 그렇게 줌바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중 30여 명이던 수강생은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 6명만 남게 되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공지를 하신다. 회원들이 6명 이하가 되면 폐강된다고 주위에 홍보를 부탁하셨다.



안돼!!! 이제 겨우 정착한 운동인데... 없어진다고? 위기다! 태어나 첨으로 정 붙여 친구 하나 없어도 꿋꿋이 버티고 하던 운동인데.. 뭔가 해야 한다!



' 나 이제 입을 열어야겠어.' 비장하게 남편과 딸에게 선언하듯 내뱉었다.

다음 수업날 나는 5명을 불러 모았다. 이 수업을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우리끼리라도 힘을 모아서 열심히 홍보하자고 결사 단결하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회장직까지 맡기셨다. 회장은 성적순이 아니고 나이 순? ㅎㅎㅎㅎ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숨겨왔던 파워 ENFP의 모습을 마구 뿜어내며 회식까지 밀어붙여 멤버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명분과 목표가 생기니 주저할 것도 없고 마치 무슨 선거전인양 이벤트를 남발하여 나의 관종끼를 마구 발휘하기 시작했다. 예전 친구의 말이 스쳐갔다. 나이 들어 어린 엄마들이랑 만나려면 입 다물고 지갑만 열라고 했었지.. 하지만.. 진짜로?



에잇, 그냥 커밍아웃해 버려. 나이만 들었지 난 개털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우리 줌바 팀을 위해 애써보겠다. 여타 운동 모임처럼 텃새도 없고 그 누가 와도 서럽지 않게 분위기를 만들 것이며, 가는 사람 막지 않겠지만 오는 사람도 절대 막지 않겠다고!

큰 회식비를 쏘지는 못해도 가진 걸 나눌 수는 있지. 그동안 쌓여있던 세월 묻은 아동용 영어 원서들과 비싸게 구입했던 영어 디비디를 멤버들에게 나눔을 하였다. 내친김에 어여쁜 친구가 회화 수업을 부탁해서 까짓 거 재능기부 수업도 진행을 하며 나는 어느새 멋진 기버 회장님으로 회자되며, 많은 사랑과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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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비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예의 어린 말들이 오갈 때마다 나는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의 대사를 인용하여. 추앙하라. 나를 추앙해 줘. 그거면 된다. 입에 발린 아첨도 나는 마다하지 않는다. 괜찮다. 가식적인 추앙도 나는 기꺼이 감사히 받아들이겠다. ㅋㅋㅋ


나는 그렇게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돈을 쓰지 않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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