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이야기 #2-중]
1편이 색을 통해 본 개인의 성장이었다면,
이번 2편은 <위키드2>가 보여주는 사회적 진실과 대중 심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아주 담담한 방식으로
진실이 왜 종종 패배하는지,
왜 사람들은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편안한 믿음’에 기대어 사는지를 보여줍니다.
오즈의 시민들은 말합니다.
“서쪽 마녀는 사악하다.”
“남쪽 마법사 글린다는 선하다.”
하지만 관객은 압니다.
그 모든 것이 정치적 프레임일 뿐이라는 것을.
‘선한 마법사’ 글린다는 실제로 마법의 힘을 갖지 못했고,
‘사악한(?) 마녀’ 엘파바는 누구보다 진실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이 역설적인 설정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믿는 선과 악은 종종 진실과 무관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민하게 됩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일까요?
오즈의 마법사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고백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바라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야.”
"이제와서 내가 거짓을 말했다고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아."
이 말은 슬프도록 현실적입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객관적 진실보다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드는 즉각적 믿음일 때가 많습니다.
엘파바의 동물학대 폭로가 아무리 옳아도,
그것은 오즈 시민들에게 너무 무겁고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프롬은 말합니다.
자유는 인간을 성장시키지만, 동시에 불안과 책임이라는 큰 짐을 준다고.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기존의 질서와 사고방식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변화는 너무 아프고, 너무 낯설고, 너무 외롭습니다.
그래서 극 중 오즈의 시민들은 ‘진실’이 아닌 심리적 안정을 선택합니다.
편안한 거짓은 불편한 진실을 이기기도 합니다.
영화가 끝난 뒤, 이런 질문이 남았습니다.
“나는 정말 진실을 원하는가?
아니면 나를 편하게 해주는 믿음을 원하는가?”
‘선한 이미지’를 좇아가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누군가의 색을 그들의 본질과 무관하게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위키드2>는 관객에게 어떤 사상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이 믿는 세계는 진실인가,
아니면 믿고 싶은 이야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