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이야기 #2-하]
<위키드>의 가장 따뜻한 지점은
마녀를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녀의 삶의 조건과 마음의 무게를 보려 한다는 점입니다.
초록 피부, 차별, 외로움, 오해, 그리고 권력의 교묘한 조작.
엘파바의 ‘초록’은 본래 색이 아니라
세상이 덧씌운 배제와 편견의 기호였습니다.
단순히 “그녀는 악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그런 이미지 뒤에 어떤 감정과 사유를 갖고 있었는지를 따라가게 합니다.
이것은 작가가 소외된 존재들에게 보내는 매우 따뜻한 시선입니다.
결론을 서두르지 않고,
판단보다 먼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 속에서 한 사람의 세계를 이해해 보려는 태도.
엘파바가 폭주하고, 분노하고, 때로는 파괴적인 선택을 할 때조차
관객은 어느 순간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느낍니다.
그건 <위키드>가 보여주는 엘파바의 삶이
늘 누구보다 소외되고, 사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지 못한 고통 속에서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또 다른 상처를 만들기도 하니까요.
작품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혹시 우리가 미워한 그 사람에게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질문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던지는 메시지와도 통합니다.
울프는 이 책을 통해 여성의 권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존재의 고통 속에 있고
누구나 말할 수 없는 분노를 안고 있으며
그 분노를 단번에 판단하기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울프가 말한 ‘따뜻한 이해의 시선’은
<위키드2> 속 엘파바에게 그대로 겹쳐집니다.
둘의 메시지는 하나의 질문으로 합쳐집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여전히 미워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작품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관계,
가르치는 아이들,
가족, 친구, 동료에게까지 확장됩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쉽게 오해했던 사람들,
마음이 멀어졌던 사람들,
이유 없이 불편했던 사람들.
그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초록의 상처가 있었을까?
그 상처가 그들의 선택을 뒤틀었을까?
나는 그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으려 했던가?
이 질문은 우리를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위키드>는 마녀를 영웅으로 만들려는 작품이 아니라,
어떤 존재든 “악”이라는 이름 이전에
그 존재만의 서사와 색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결국 우리를 향합니다.
“당신은 누군가의 색을 진짜로 본 적이 있나요?”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사람을 미워하기가 어렵다는 것.
그 따뜻한 진실을 이 작품은 조용히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