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1] 『페인트』리뷰(이희영 저)

존재를 다시 칠하는 일

by 비해브


책은 나를 깨우는 도끼다


광고인 박웅현은 『책은 도끼다』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인용한다.


"책은 나의 기존 세계를 깨뜨리고 확장시키는 도끼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이 말에 전율이 돋았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나의 언어로 나누려 한다.


[책은 도끼다]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생각했다.
“이건 단순히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는 제누 301이라는 입양 시설의 아이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실은 ‘관계’와 ‘존재’의 본질을 묻는 이야기다.
그리고 작가가 만든 두 개의 단어 — 프리포스터(pre-foster) 와 페인트(paint) — 는
그 질문의 방향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언어였다.


1부. 프리포스터와 페인트, 단어로 던지는 질문


작가는 가족이 더 이상 ‘당연한 전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보여준다.
아이를 낳고도 키우지 않으려는 부모,
그리고 그 아이들을 관리하는 국가의 시스템.
‘예비부모’나 ‘입양자’ 대신 ‘프리포스터’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그저 새로움을 위한 명명에 있지 않다.

나는 그 단어가 던지는 거리감 속에서
‘양육’과 ‘돌봄’이라는 행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돌봄이 사랑이 아니라 서비스가 된 사회,
육아가 관계가 아닌 의무가 되어버린 현실.
'프리포스터'는 그런 세태에 대한 작가의 질문이자 비판이었다.


그렇다고 작가는 부모에게 “더 큰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왜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게 됐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당위성, 비교가 만들어낸 불안,
그리고 사랑을 ‘효율’로 계산하는 시대의 슬픔.

작가는 그 질문의 끝에서 ‘페인트’라는 단어를 꺼내든다.
그는 말한다.

“각기 다른 색이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과정이 바로 부모 면접이었다.”


아이와 어른이 서로를 물들이는 장면.
그건 단순히 입양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었다.
‘페인트’는 나와 너의 색이 섞이는 과정이며,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일이다.
그 문장에서 나는, 나 스스로의 색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어떤 색으로 나를 칠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2부. 페인트가 다층적으로 읽히는 이유


『페인트』는 이상할 만큼 누구에게나 닿는 소설이다.
소개팅을 앞둔 사람, 예비 부모, 이미 부모가 된 사람, 그리고 교사인 나에게까지.
모두에게 다른 의미로 읽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소통’이 있다.

이 작품은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 서로의 삶을 통해 어떻게 연결되고 이해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제도나 윤리의 틀 안에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 설 때 가능한 이해의 방식을 보여준다.

그래서 『페인트』는 성장 소설이자 사회 소설이며, 동시에 철학서처럼 느껴진다.
읽는 이의 자리마다 다른 울림을 남기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물들고, 또 누군가를 물들이며 살아간다.”


그 문장은 교육, 사랑, 부모됨, 관계, 사회를 동시에 포괄한다.
그렇기에 『페인트』는 어느 한 위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남는다.


3부. 소통의 결핍에서 배운 것


책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작품 속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말하지 못해서, 혹은 너무 많이 말해서.

나는 그 안에서 내 삶을 떠올렸다.
진심이 있었지만 닿지 못했던 순간들,
내 방식대로만 이해하려 했던 관계들.
결국 사랑이란 감정보다 중요한 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였다.


‘페인트’는 표현의 은유다.
색이 닿아야 그림이 완성되듯,
사랑도 표현을 통해만 실체를 가진다.
진심이 있다면, 말하고, 손 내밀고, 물들어야 한다.


결론. 나의 색으로, 다시 칠하기


이희영 작가는 ‘보호’의 의미를 새로 썼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어렴풋이 느낀다.
살아간다는 것은 완성된 색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번지고, 지워지고, 다시 칠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 우리는 더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페인트』의 아이들이 서로의 색으로 물들어 갔듯,
나 또한 누군가에게 닿으며, 또 누군가에게 물들며
조금씩 나만의 색을 찾아가고 싶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내 안의 색은 지금, 어떤 빛으로 물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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