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 리뷰 (하편)
요즘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대화는 기승전'투자'로 흐르곤 합니다.
"빨리 경제적 자유를 얻어서 여길 떠나야지"라는 말은
이제 가장 보편적인 진리가 되었습니다.
직업은 자본을 쌓기 위한 차가운 수단이 되었고,
우리는 모두 '탈출'을 꿈꾸는 수용소의 수감자처럼 오늘을 견뎌냅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 탈출의 끝에서 우리는 정말 자유로울까요?
2021년 저 역시 그 뜨거웠던 열풍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부동산 상승기, 주변의 성공담은 '나만 뒤처졌다'는 공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야"라는 선의 가득한 조언들에 등 떠밀려,
제가 왜 그 길을 가는지도 모른 채 숫자의 미로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급박한 선택은 실패로 이어졌고, 그 여파는 가장 소중했던 관계들까지 흔들어 놓았습니다.
모든 게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보였습니다.
주변에 마음을 나눌 사람 하나 남지 않는다면,
통장의 숫자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우리는 혹시 '경제적 자유'라는 이름의 가장 고독한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역사학자 최태성 선생님이 전한 이완용의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서늘한 경고를 던집니다.
나라를 팔아 현재 가치로 600억 원이 넘는 부를 축적한 그.
그는 당대 누구보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어서는 후손들이 부끄러움에 파묘를 하고,
관 뚜껑에 적힌 일본 작위를 불태워야 했던 그 삶을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돈이라는 수단이 목적의 자리를 찬탈할 때,
인간의 존엄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어디로 밀려나는 걸까요?
다시 <런닝맨>으로 돌아와 봅니다.
멤버들이 수행하던 '칭찬하기', '전화 먼저 받기' 같은 사소한 행동들은
돈 한 푼 되지 않는 비효율의 극치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멤버들의 얼굴에 감돌던 생기는 우리가 잊고 지낸 직업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타인과 연결되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즐거움.
성공회대 고병헌 교수님은 자유(自由)를 '자기(自)로부터 비롯된 이유(由)'라고 풀이합니다.
남이 정해준 '경제적 자유'라는 가짜 목표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행동하는 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 아닐까 하고 정의해봅니다.
자아실현이라는 단어가 박물관의 유물이 된 시대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일터에서 누군가를 돕고,
무언가를 배우며(Learn), 그 안에서 즐거움(Fun)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경제적 자유라는 달콤한 선의가 당신의 오늘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나요?
내일 아침, 당신이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에 '남의 이유'가 아닌
'당신만의 이유' 하나를 담아보면 어떨까요?
그것이 우리가 각자도생의 고독에서 벗어나
다시 '사람'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길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