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오래 남는 맛
배추적은 경상도 지방 음식이다. 우리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기도 하다. 날배추를 다듬어 밀가루를 아주 엷게 묻혀 팬에 굽는다. 전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허전하고, 적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수수하다. 어릴 적 나는 그 배추적이 싫었다. 아무 맛도 없고, 심심하기만 했다. 고기 냄새도 없고, 양념 맛도 없어서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았다. 기름에 지진 배춧잎은 입안에서 금세 사라졌고, 배는 여전히 허전했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느라 집을 떠난 뒤, 집은 그대로였지만 공기가 달라졌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생각해 보니, 그 무렵부터 배추적이 좋아진 것 같다. 생각이 달라진 건지, 입맛이 변한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예전처럼 뭔가를 더 얹지 않아도 괜찮아졌고, 심심한 맛을 애써 밀어내지 않게 되었다. 배추가 배추로 남아 있어서 좋았다.
친구에게서 김서령 작가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추천받았을 때, 나는 제목보다 그 안에 들어 있던 배추적이라는 단어를 오래 붙들고 있었다. 그 단어가 나를 이끌었다. 나는 책을 주문해 단숨에 읽었고, 깊이 공감했다. 작품 속 풍경은 마치 내가 상상으로만 그려보던 우리 어머니의 유년기를 엿보는 것 같았다. 쇠락한 양반 가문의 기구한 팔자를 지닌 여자들의 이야기도 낯설지 않았다. 경상도 여자들이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 그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꼭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친구에게 수소문해 보니, 그녀는 투병 중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내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는 행사도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모든 물건이 새 주인을 찾았다. 행사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성공적으로 마쳤다. 바자회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부고가 전해졌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이었는데, 소식을 듣는 순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년 전 겨울, 거제도 산림휴양림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여고 동문 선후배 몇 명이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거제도에 사는 후배가 자기 집 텃밭에서 직접 키운 배추를 들고 휴양림으로 찾아왔다. 전을 부칠 모든 채비도 다 해왔다. 그날 밤 우리는 온돌방에 신문지를 깔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배추적을 구워 먹었다. 머리를 맞대고 팬을 번갈아 잡으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부쳤다.
처음 먹어본다는 선배도 있었고, 솔직히 별로 맛이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너도나도 부쳐보겠다고 하더니 금세 손을 들었다. 거제도 후배와 나만 끝까지 불 앞에 남았다. 방 안에는 기름 냄새가 가득 찼고, 팬 위에서 배추는 숨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노릇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부친 것은 배추가 아니었다. 선뜻 내놓기 힘들었던 유년의 부끄러움과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 상처였다. 배추적을 죽죽 찢어 먹으면서 깊이 감추어 두었던 보따리를 풀었다. 꺼내기 힘들었던 심각한 이야기들도, 그냥 툭 던지면 그만이었다. 누구 하나 꼬투리 잡는 사람도 없고, 꼬치꼬치 묻지도 않았다. 그냥 눈빛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읽혔다. 배추적은 둘러앉아 같이 먹은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맛으로 남았다.
며칠 전, 후배가 거제도 텃밭에서 겨울을 난 배추 한 포기를 또 보내왔다. 추위를 이겨내느라 애쓴 배추는 얇았지만 아삭했다. 씹을수록 달큰한 것이 마트에서 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이 귀한 배추로 물김치를 담을까, 겉절이를 할까 잠시 망설였다. 쌈으로 먹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배추적을 구웠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방식대로, 그날 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혼자 불 앞에 서서 배추를 뒤집다 보니, 기름 냄새 속에서 여러 얼굴들이 피어올랐다.
배추적은 여전히 심심한 맛이다.
그 맛에 이끌려 나는 지금도 그걸 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