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길 좋아하는
요즘 나는 새로운 장래희망을 하나 갖게 되었다. 요리하길 좋아하는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웃으며 듣지만, 나는 꽤 진지하다. 여기서 말하는 예쁨은 단정한 외모나 밝은 인상이 아니다. 죽는 날까지 내 손으로 밥을 해 먹고, 내 발로 화장실에 가며, 하루를 스스로 꾸려 갈 수 있는 사람. 그 정도면 충분히 단정한 노년이라고 생각한다.
쉰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중년 고개 초입에 들어섰다고 여겼다. 앞으로는 무엇에도 설레지 않고, 시나브로 고목나무처럼 늙어 가리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꿈 한번 제대로 펼쳐 보지 못한 채 이대로 끝나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회의도 깊어졌다. 정신없이 달려오던 삶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느낌이었다. 빈둥지증후군도 그 무렵 가장 심했다.
그렇게 휘청거리던 시기에, 운명처럼 <봄날>이 다가왔다. 여고 동문이라는 인연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는 동질감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누가 만들자고 한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규칙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인연이 스무 해를 넘겼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건너며 의지가 되었고, 어느새 혈육보다 연인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인일여고 홈페이지에서 결성된 소모임 <봄날>은 내 삶에서 퇴색하지 않는 정체성이다. 애틋하고 절절한 추억이 쌓인 이름이고, 영원을 기약할 수 없는 세상에서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이름이 되었다.
<봄날>에는 감성 장인들이 골고루 모여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 영화에 심취한 사람, 책 읽기에 몰두한 사람, 음식에 진심인 사람, 사진을 잘 찍는 사람, 여행에 미친 사람까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우리는 비교적 오래 믿어 왔다. 적어도 감성만큼은 쉽게 시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부모님을 비교적 일찍 떠나보냈다. 장수하지 못하신 것이 늘 마음에 남아 있다. 한때는 오래 사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무조건 오래 사는 것보다, 스스로 일상을 꾸리며 사는 시간으로 얼마나 충만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더 또렷해진다. 요양병원에서 콧줄로 음식을 받아 드시며 이승과 저승 사이 어딘가에 계신 부모님 곁을 지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가만히 내려앉는다.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랑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어서다. 나는 그 시간을 곁에서 지켜보며 조용히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끝까지 내 일상을 내 손으로 건사하다가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그래서 지금부터 연습을 하기로 했다. 노년은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하루들이 데려오는 시간일 테니까. 나이는 분명 노년 쪽으로 기울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하루를 직접 살고 있다. 내가 선택한 연습은 요리다. 장을 보고, 칼을 쥐고, 냄비 앞에 서는 일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하루를 지키는 방식이다. 요리는 나를 현재에 붙들어 둔다.
이 생각을 <봄날> 식구들은 물론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전했다. ‘예쁜 할머니 클럽’을 만들자고 했다. 모처럼 만나서 남의 이야기나 옛날이야기, 신세한탄은 잠시 접어 두자고. 대신 음식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추억과 스토리가 담긴 음식 이야기를 들려주면, 내가 정성껏 글로 옮겨 카카오 브런치에 연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우리의 내일이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노년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늘 무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큰 결심보다 자주 돌아보는 마음이 더 오래간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하루를 건너는지 묻는 일. 그런 이야기들이 나중에는 의외로 힘이 된다.
요리하길 좋아하는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 그것은 오래 살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사는 날들 하나하나를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에 가깝다. 오늘도 부엌에서 밥을 짓는다. 내일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지만, 오늘의 일상만은 정성껏 차려 보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