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헛헛하고 외로울 때 생각나는
매운 닭발은 둘째 아들을 임신했을 때, 뜬금없이 먹고 싶어 졌던 음식이다.
한 번도 내 손으로 해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었고, 집에서 만들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유 없이 매운 것이 필요해졌다. 맛이 아니라 자극이 먼저였다.
그때 나는 죽변에 있었다. 해안부대에 갓 부임한 남편을 따라 내려간 동해안의 작은 동네였다. 고향 인천과는 풍경도, 말씨도 달랐다. 바다는 늘 가까웠지만 물어볼 사람은 없었다. 장에 가서 닭발을 사면서도 어떻게 해 먹어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묻는 대신 그냥 사 왔다.
노란 양은냄비를 꺼내 연탄불 위에 올렸다. 닭발을 씻어 넣고 고추장과 간장, 집에 있던 고춧가루를 대충 퍼 넣었다. 비율도, 순서도 없었다.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냥 빨갛게, 더 빨갛게. 연탄불이 세게 붙어 냄비 바닥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났다. 비린내와 매운 냄새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그날의 닭발이 맛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질겼을 것이고, 간도 들쑥날쑥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걸 먹었다. 땀이 나고, 입술이 얼얼해질 때까지. 그때의 닭발은 요리가 아니라 몸의 요구에 가까웠다. 그저 하루를 넘기기 위한 매운 것이었다.
지금은 국물 닭발을 만든다.
닭발을 깨끗이 손질해 씻은 뒤, 끓이기 전에 양념장을 먼저 만들어 둔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간장에 마늘을 넣고 단맛은 설탕 대신 쌀조청으로 낸다. 급하게 치고 올라오는 단맛이 아니라, 천천히 따라오는 맛이 좋다. 양념장은 잠시라도 두어야 맛이 가라앉는다.
닭발은 15분쯤 끓여 불순물을 걷어내며 익히고, 물에 깨끗이 씻어 양념장과 함께 다시 끓인다. 처음엔 불을 세게 두었다가 끓기 시작하면 줄인다. 뽀얀 색깔이 우러나면 국물에 힘이 생긴다. 콜라겐이 풀리면서 국물이 자작해지고, 숟가락으로 떠보면 묘하게 끈기가 느껴진다.
나는 국물 닭발이 좋다.
자작한 국물에 밥을 비비거나,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 먹는 맛은 따로 있다. 꾸덕하고 진득해진 밥을 한 숟갈 떠먹다 보면, 문득 스페인에서 먹었던 빠에야가 떠오르기도 한다. 전혀 다른 음식인데도, 밥에 스며든 국물의 밀도는 비슷하다.
어릴 때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닭은 발로 모이를 버르집는 습관이 있어서 모든 기운이 발에 모인다고. 그래서 닭발은 기름기도 없고 몸에 좋다고 했다. 소는 꼬리에 힘이 모인다고도 하셨다. 엉덩이에 붙은 쇠파리를 쫓으려고 늘 단련해서 그렇다며, 허리가 아플 때는 꼬리곰탕을 약처럼 먹으라고 했다.
그땐 그 말을 그냥 흘려들었다.
지금은 그 말들이 음식보다 먼저 떠오른다. 몸을 어떻게 쓰며 살아왔는지가, 결국 무엇을 먹고 버텨왔는지로 남는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그때의 나는 매운맛으로 하루를 넘겼고,
지금의 나는 국물이 걸쭉해질 때까지 기다릴 줄 안다.
닭발은 그대로인데, 손과 마음이 달라졌다.
매운 닭발은 단순히 기력이 달릴 때 떠오르는 음식은 아니다.
왠지 마음이 헛헛하고, 말로 풀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삼키고 싶을 때
혼자 먹어도 괜찮은 얼굴로 곁에 와준다.
불 앞에 서서 국물이 졸아드는 걸 바라보고,
자작해진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혼자인 시간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된다.
매운 닭발은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끝까지 버티게 해주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