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억하는 음식
내게는 인생죽이 하나 있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마음은 나중에 따라오는 음식이다.
어릴 적 나는 입이 짧았다. 소화 기능은 그보다 더 약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금세 체했다. 배가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흰 죽에 간장을 찍어 먹어도 속은 늘 더부룩했다. 미음은 보기만 해도 고개가 돌아갔다. 어른들은 “아프니까 먹어야지”라고 했지만, 내 몸은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런 내 입맛에 처음으로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 새우젓죽이었다. 아버지가 어느 날 부엌에 들어가 손수 끓여 주셨다. 어디서 배워 오셨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죽은, 아픈 아이를 억지로 먹이지 않으면서도 끝내 먹이게 하는 맛이었다. 열 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뽀얀 죽물에 스며든 고소함,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그 중심. 삼키는 데 힘을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넘어갔고, 먹고 나서도 속이 조용했다. 죽이 내 몸과 싸우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뒤로 속이 안 좋을 때면 엄마가 새우젓죽을 끓여 주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해주던 그 맛은 아니었다. 재료는 같아 보였고, 방법도 비슷했는데 어딘가 달랐다. 그래서 나는 계속 궁리하게 되었다. 왜 어떤 죽은 잘 넘어가고, 어떤 죽은 그렇지 않은지.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 차이는 재료가 아니라, 불과 시간, 그리고 냄비 앞에 서 있는 사람의 태도라는 걸.
아이들을 키우면서 새우젓 죽은 더 요긴해졌다. 아이들이 열이 나거나 배탈이 나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냄비를 올렸다. 주변에 아픈 사람이 생겨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먹여야 할지 몰라 말이 많아질 때, 나는 오히려 말을 줄이고 죽을 끓였다. 그럴 때마다 새우젓 죽은 조용히 제 몫을 해냈다.
요즘 이 죽은 또 다른 이유로 자주 끓인다. 남편이 대장내시경을 여러 번 해봤기 때문이다. 검사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냉장고에 붙는 식단표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잡곡 금지, 깨 금지, 키위 포도·딸기 금지, 김·미역·다시마 금지, 고춧가루 금지, 시래기·콩나물 금지. 하나씩 읽다 보면 먹으라는 건 없는 것 같고, 하지 말라는 말만 잔뜩이다. 남편은 그 종이를 보며 늘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럼 뭘 먹으라는 거야?”
그럴 때마다 나는 짧게 대답한다.
“죽.”
하지만 흰 죽은 싫다고 한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미음은 아예 음식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결국 내가 나선다. 설명은 하지 않는다. 말로 하면 늘 어긋나기 때문이다. 대신 냄비를 올린다.
쌀은 불리지 않는다. 반 컵, 약 100ml. 물은 그 일곱 배, 700ml. 새우젓 반 작은 술, 참기름 반 작은 술. 이 단출한 재료를 넣고 불에 올린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낮춘다. 낮추되 겁먹지는 않는다. 뚜껑은 꼭 살짝 열어 둔다. 불이 너무 세면 물이 넘쳐서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되고, 너무 약하면 쌀알이 제대로 익지 못하고 다 퍼져 풀떼죽이 된다. 새우젓 죽은 묘하게도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다. 조급해도 실패하고, 지나치게 조심해도 실패한다.
중간중간 수저로 바닥을 긁어 준다. 그때 나는 남편을 떠올린다. 검사 전날 비워야 하는 몸, 검사 후에 다시 조심스럽게 채워야 하는 몸. 냄비 속 죽도 그렇다. 비워지고, 풀어지고, 다시 정돈된다.
완성된 죽은 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맛있게 뽀얗다. 새우젓도 참기름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라진 게 아니라, 이미 다 스며들어 있다. 쌀과 물이 따로 있던 흔적이 없어지고, 저어 보면 촉촉한 저항이 느껴진다. 이 색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흰색이 아니라, 오래 끓이며 얻어진 색이다. 눈으로 먼저 안다. 이건 속을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걸.
검사 전에도, 검사 후에도 남편은 같은 말을 한다. “이건 괜찮다.” 흰 죽 앞에서는 숟가락을 내려놓던 사람이, 이 죽은 끝까지 먹는다. 장을 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면서, 다시 먹기 시작하기 위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이 죽은 늘 내 삶의 경계에 있었다. 아플 때와 회복할 때, 비워야 할 때와 다시 채워야 할 때. 어린 시절의 나, 아이를 키우던 나, 누군가를 돌보는 지금의 나까지.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레시피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죽이 나를 어떻게 여기까지 데려왔는지를 기록하고 싶어서다.
이제는 안다. 이 죽이 나의 인생죽이 된 이유는 언제나 몸보다 앞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다시 냄비를 올린다. 처음처럼 조심스럽게, 그러나 망설이지 않고 새우젓죽을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