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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재 Jul 29. 2023

걸생(生)눕사(死)

코로나19 상황에서 꿋꿋하게 살아낸 비결

                                           

요즘도 매일 혼자서 탄천을 걷고 있다.

벌써 2년 반이 넘었다.


하필 내가 26년 넘게 살던 정든 도시를 떠나, 낯선 동네로 이사 온 지 몇 달 안 되어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외출할 땐 무조건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코로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사회생활은 거의 없었다. 마음 편히 찾아갈 곳도,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교회를 비롯하여 문단 활동과 동호회 등 내가 속해 있는 모든 사회가 일순간에 다 멈추었다. 여럿이 모여서 웃고 떠들며 같이 밥 먹고 노는 일은 금기사항이 되었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나이인 데다가 갓 첫돌이 지난 손녀를 가끔 만나는 터라, 나는 자발적으로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킬 수밖에 없었다. 꼼짝없이 집안에 고립되고 말았다.     




너나없이 외롭고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이 난국을 어찌 보낼꼬 궁리하던 끝에 여고 동창생들과 함께 ‘따로 또 같이’ 걷기로 했다. 바이러스가 무서워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 소통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하루에 만 보 정도 걷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각자 사는 동네를 걸으며 보이는 풍경을 사진 찍어서 단톡방에 올리기로 했다. 걸음 수를 기록해 주는 앱을 사용하여 매일 얼마나 걸었는지도 보고하기로 했다.      


100명 넘는 사람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 10여 명이 의기투합하였다. 날마다 자기가 본 풍경과 걸음 수를 공개했다.


꽃구경 갈 수 없는 봄과 유난히 비가 많이 온 여름, 스치듯 짧게 지나간 가을과 스산한 겨울 풍광 등을 친구들과 공유했다. 그것이 코로나 정국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처음엔 하루에 오천 보 걷기도 힘들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걷는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단한 결심과 끈기가 필요했다.


혼자였으면 작심삼일도 힘들었을 텐데 친구들과 함께여서 가능했다. 덕분에 아무도 만나지는 못해도 외롭지 않았다.     




나는 집 근처부터 샅샅이 훑으며 걸었다.


차를 타고 다니던 앞 동네 옆 동네를 찬찬히 걸으면서 눈에 익히자 낯설던 풍경이 차츰 익숙해졌다. 내친김에 집 앞에 있는 실개천을 따라 탄천으로 나갔다.


걷는 길과 자전거길이 구별된 탄천은 예상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내 발로 직접 밟으면서 본 새로운 경치가 차곡차곡 쌓이니, 두고 온 곳에 대한 그리움도 시나브로 잦아들었다.     


혼자 걷다가 사람을 만나면 얼른 외면하고 되도록 멀찍이 피했다. 마스크와 모자로 단단히 무장하고, 여름철엔 검은색 긴 우산을 항상 들고 다녔다. 해가 뜨거울 땐 양산, 비 오는 날엔 우산으로 쓰기에 요긴했다.


더운 계절엔 해가 없는 시간에 그늘진 곳을 골라서 걷고, 동지가 지난 후엔 해가 쨍한 시간에 햇볕을 따라서 걸었다. 내 생존 본능이 그리 시켰다.     





걷는 것은 다리 운동일뿐만 아니라 뇌 운동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꾸준히 걸으면 치매도 예방된다고 했다.


날마다 걸으니까 잡다한 근심과 스트레스, 우울감, 걱정, 고립감, 불안감 등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변화는 몸에서도 나타났다. 군살이 좀 빠졌고, 피곤해서 드러눕는 일이 줄어들었다. 밤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몸이 거뜬하고, 온 동네를 걸어 다니느라 지루할 새 없이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실제로 건강 검진 결과도 조금씩 두루 좋아졌다.


나이는 더 먹었는데 수치가 좋아진 건 매일 꾸준히 걸은 효과가 분명했다. 한동안 유행하던 ‘걸생눕사’(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라는 말이 딱 맞았다.




탄천에서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어폰을 끼고 걸었다

멀쩡한 사람들이 걸으면서 혼자 웃고 떠들었다.

처음엔 그런 사람들을 미친 사람 보듯 하던 내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무선이어폰을 끼고 걷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두 손 자유롭게 통화하며 걸을 수 있어서 편했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성경낭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보이지 않는 세상과 연결된 덕분에 혼자 걸어도 지루하지 않고, 외롭지도 않았다.


나는 평소 청력에 해롭다고 이어폰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가장 요긴한 산책 준비물로 챙기고 있다.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멈춰 세우자,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꾸려나갔다. 집에서 컴퓨터로 일하고, 사적 모임과 콘서트는 물론 국제회의까지 다 비대면으로 하며 버텼다.


세상은 지금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화하며 가 본 적 없는 길을 개척하고 있다. 아날로그 세대인 나는 지금 낯선 세계로 가는 대열 끝에 간신히 합류했다.


이제껏 살아온 방식만을 고집하며 타성에 젖어 머뭇거리다가는 자칫 새로운 세상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렵다. 그래서 앞장선 디지털 세대의 뒤꽁무니를 따라 허겁지겁 정신없이 쫓아가고 있다.   

   

아직도 종식(終熄)되지 않은 코로나 전장(戰場)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목표한 걸음을 걸으러 또 집을 나선다.


보폭을 조금 넓게 하면 허리가 쭉 펴지고 걸음 속도는 빨라져 운동 효과가 높아진다니,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힘차게 걷고 와야겠다.


탄천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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