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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재 Oct 05. 2023

혼자 영화 보기

내 맘대로 자유롭고 편안하게

      



괜히 마음이 울적하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면 나는 차를 몰고 훌쩍 영화관으로 간다.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대기실 철제로 된 의자에 앉아 카푸치노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상영 중인 것과 예고 프로 포스터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으니까.




다 그렇고 그런 비슷한 문구의 광고 문안이지만 대충 그림과 글귀를 맞추어 보면 영화의 스토리를 유추해 낼 수 있다.   

   

혼자 가서 보기에 제일 좋은 영화는 스토리를 다 아는 옛날 영화 리메이크 한 것이나 따뜻한 기운이 화면 전체를 덮는 해피앤딩 스토리다.


거기에다 배경 음악까지 좋으면 보너스를 타는 기분이다. 화면의 전체적인 색감은 어둡고 차가운 것보다는 밝고 따뜻한 것이 좋다.


억지로 공포를 유발하느라 애쓰는 영화가 제일 싫고, 마음이 흘러가는 길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영화가 가장 좋다.


억지웃음을 자아내려는 영화는 지루하고 졸리다.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영화. 욕설을 접두사와 접미사로 사용하는 영화는 정말 싫다. 복수와 살인으로 점철되는 스토리가 예상되는 것은 아예 표를 사지 않는다.     


 



나는 혼자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 표를 살 때는 언제나 뒤에서 두 번째 줄 가운 데로 달라고 한다.


이왕이면 흥행에 실패해서 거의 텅 비어 있으면 더욱 좋다. 마치 나 혼자서 만찬 테이블을 다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호젓한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텅 빈 객석의 의자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여백의 여유로움이라고나 할까. 집에서 혼자 비디오를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포만감은 보너스다.

      

사람들 속에서 바삐 휘돌다 보면 문득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 아예 도시를 떠날 형편은 못 되는데 사람을 벗어나고 싶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혼자 영화관으로 간다. 누구에게 온다 간다 말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그냥 간다.


극장에서는 공식적으로 휴대폰을 꺼 놓아야 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늘 차고 다니던 족쇄를 풀어버리는 것 같아서 홀가분하다.     


사실 내가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까닭은 딱히 어떤 영화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대낮에도 완벽하게 깜깜한 공간의 은밀함이 내 마음을 안정되게 한다. 굳이 누구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되니 신경을 쓸 일이 없다.


아, 그것 말고도 또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화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아무 때나 눈을 감고 있어도 된다. 아예 잠이 들어도 괜찮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혼자 영화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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