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재 Dec 16. 2023

배워볼 용기

알파세대가 사는 세상에서도 살아가려면

 “할머니, 못해?”

2018년생, 다섯 살 재경이가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텔레비전에서 무슨 만화를 찾아 달라고 하는데, 리모컨에서 뭘 눌러야 할지 모르겠다. 평소에 우리 집은 전원과 채널, 음량 버튼만 사용하는 터였다. 


내가 쩔쩔매는 것을 보고, 82년생 아들이 슬그머니 리모컨을 받아 들고 어디를 누르니 원하는 프로그램이 좌르르 나온다. 순간, 나는 머쓱하고 부끄러워 헛웃음이 난다. 어떻게 조작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대답이 너무 쉽다. 

그냥 여기를 이렇게 누르면 돼요. 


하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영 못 알아듣겠다. 리모컨에 버튼이 너무 많다.



2020년생 채경이에게 아이패드는 장난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용케 잘 찾아낸다. 이번에 텍사스 오스틴에서 우리 집으로 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보챌까 봐 세 녀석에게 하나씩 다 사줬단다.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한 세 살 배기가 그 작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착착 쓸어 넘기며 잘 가지고 논다.      




자식이 부모보다 똑똑하고, 후배가 선배보다 사원이 임원보다 병사가 간부보다 더 똑똑한 초역전 시대가 되었다. 이는 젊은 사람의 지능이 높아져서 생긴 현상이 아니다. 신문명의 주기가 단축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MZ세대는 198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저서 ‘제3의 물결’이 나온 것이 1980년이었다. 정보화 사회로 전환된 시점이기도 하다.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을 지나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이 휩쓰는 시기까지도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으면 무조건 능력자라고 인정받았다. 내가 어렸을 적엔 무엇이든 나이 많은 어른에게 물어보면 쉽게 답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는 정보혁명을 겪었다. 지금 겪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은 20여 년 걸릴 것이라 예상되고, 뒤이어 나타날 제5차 산업혁명은 15년 정도로 단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고 신문명 주기는 짧아지니 평생 네다섯 번은 변신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아직도 컴퓨터를 만지는 것이 겁난다. 잘못 누르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주로 원고 쓰고 메일을 보내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하지만 80년대생인 내 아이들에게는 컴퓨터가 모든 일상을 해결하는 생필품이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즐기며 쌓은 실력으로 온라인 세상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닌다. 어디서든 시공을 초월하여 전 세계와 소통하며 거침없이 일하고 있다. 


나이, 직업, 경력, 관록, 위계질서 등을 앞세우는 우리 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들의 새로운 도구와 기술, 방법이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사회단체든 MZ 세대의 주장을 받아들여 문화를 바꾸면 발전했고, 철 지난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시나브로 쇠퇴하였다.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이란 말은 경영의 신이라는 소리를 듣던 GE 잭 웰치 회장이 1999년에 처음 주창한 낯선 개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조직에서 자연스럽게 적용하고 있다. 모르는 것은 가장 어린 막내에게 물어보는 시대가 되었다.


56년생인 나는 아직도 메타버스(Metaverse)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2013년생 나경이는 가상현실 세계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논다. 알파 세대답다. 


카톡과 통화, 인터넷 검색, 카메라로만 겨우 쓰이던 내 스마트폰도 나경이 손에 들어가면 확 달라진다. 전화기 화면에 우리 집 거실이 영상으로 보인다. 


웬 모르는 강아지가 식구들을 따라다니며 재롱을 부린다. 현실에는 없는 웰시코기가 전화기 속 우리 집에는 존재하고 있다. 내겐 무척 신기한 일이 나경이에게는 평범하고 흔한 놀이 중 하나다. 도대체 이런 건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대답이 아주 쉽고 간단하다. 

그냥 하는 거예요.



‘초역전의 시대’니 ‘리버스 멘토링’이니 하는, 개념조차 막연했던 어휘가 어느새 내 삶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암만해도 나는 절대적인 권위로 손주들을 훈육하시던 옛날 할머니처럼 위엄 있게 살기는 다 틀렸다. 


어른 노릇은커녕 손주들에게 ‘나는 그거 잘 몰라’ 소리를 입에 달고 살게 생겼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영 씁쓸하다. 



 예전엔 ‘노인 한 분은 도서관 한 개’라는 덕담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앉은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도서관 수백 개를 검색하는 세상이니 안 통하는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도태되지 않고 잘 늙을 수 있을까. 우물쭈물하다가 무섭도록 빨리 진화하는 세상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될까 봐 두렵다. 


점점 더 빨라지고 광활해지는 온라인 세상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고 아예 포기할 수도 없다. 


누가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단 한 번뿐인 삶이다. 거대한 물결의 맨 끝에 끼어서라도 끝까지 가야 한다. 


그러자면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 민망함은 다 던져버려야 한다. 누구에게든 공손히 묻고 진지하게 배워볼 용기가 필요하다. 


해마다 저절로 먹는 내 나이는 잊고 사는 게 좋겠다.      


      (에세이 21. 2023 겨울호에 발표)

작가의 이전글 바닥짐(Ballas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