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리스본에서는 계속 비가 내렸다. 포르투갈 국경을 지날 때만 해도 화창하던 날씨가 리스본에 가까워지자 심술을 부렸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쨍쨍하다가도 버스에서 내릴 때만 되면 먹장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렸다.
그래도 괜찮아. 우리를 환영하고 축복하는 비라고 생각하자. 세상 모든 일은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리스본 거리의 보도블록은 전부 대리석이다. 좁은 이면 도로는 옛날 대중목욕탕 타일처럼 작게 자른 것을, 대로에는 크고 넓적한 것을 깔았다.
로시우 광장에는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물결무늬로 만들어 놓았다. 멀쩡한 바닥이 움푹 들어가게 보여서 발을 어디다 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매끈한 대리석 위에다 빗물까지 보태니 엄청 미끄럽다. 맑은 날 동네에서 걷는 것보다 갑절은 더 힘들다. 우산을 들고 몸을 낮춘 채 발끝에 신경을 다 모으고 걷는다.
다들 앞 사람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다.
좁은 도로에 자동차와 오토바이, 전차가 함께 달린다.
포르투갈이 낳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기념관에 도착할 즈음에는 작심한 듯 세찬 장대비로 바뀌었다. 하필 그쪽으로 가는 도로가 공사 중이라 통제되어 버스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단체여행 패키지 일정에는 잘 포함되지 않는 ‘사라마구 기념관’이 우리 여정의 하이라이트다.
실제로 경력 20년 넘는 베테랑 현지 가이드도 이번에 처음 가 본다고 했다. 문인협회 작가님들 덕분에 자기도 견문을 넓히게 되었다며,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한참 동안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이곳으로 오는 내내 사라마구의 대표작인 <눈먼 자들의 도시>를 생각했다.
비록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완전히 짐승처럼 살지 않기 위해 힘껏 노력해야 한다고 했던가.
사라마구의 대표작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엔 마침표와 쉼표 외에는 문장부호가 없다. 고유명사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배경이 되는 도시가 어디인지, 등장인물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 바람에 소설에 나오는 사람과 지역 모두 익명성을 확보했다. 원초적인 이야기로서의 재미와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은유를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담아냈다.
재미있게 잘 읽히면서도 문학적으로 분석할 게 많은 은유로 가득 찬,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장편소설이다.
갑자기 눈이 안 보이는 원인 모를 전염병이 창궐하여, 안과의사의 아내 한 사람만 빼고 모든 사람이 다 실명한다. 눈먼 사람들을 한곳에 ‘격리’하면서 눈먼 자들의 도시가 형성된다.
앞 못 보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극도의 공포와 혼란과 인간의 어두운 본성은 가상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다.
현대 사회는 휘황찬란한 불빛과 볼거리로 넘쳐나지만 정작 진실은 보지 못하는 눈먼 사회, 눈 뜬 소경들의 사회라는 것이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을 끝낸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아와 전쟁, 착취 등 우리는 이미 지옥에 살고 있다.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집단적 파국과 함께 모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다 떠오르고 있다. 내 책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 세계를 그린 것이다.”
사라마구 기념관은 항구 근처에 있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흰색 건물이다.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건축 양식과 포르투갈의 마누엘 스타일로 지었다.
건물 외관에 운동화 스파이크같이 뾰족 튀어나온 장식들이 이어져 있어서 ‘스파이크의 집’이라고도 부른다.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기념사진은커녕 건물 외관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기념관은 그리 크지 않았다. 각국 언어로 번역한 그의 책들이 하얀 벽을 알록달록 장식하고 있다. 가지런히 붙여서 현대 미술관 분위기로 꾸며 놓았다.
전시관 한가운데에서 사라마구의 커다란 사진이 손님을 맞는다. 무표정하게 입을 꽉 다문 남자가 안경 너머로 눈을 부릅뜨고 있다.
“나는 우리 눈이 점점 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눈은 이미 멀었다고 생각한다. 앞은 보지만 눈이 멀었다.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하던 남자가 안경을 쓰고 있다니... 그의 사진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다가 피식 혼자 웃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하다.
2010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 지금도 기념관 앞 광장에 있는 100년 된 털가시나무 아래 머물고 있다. 그의 유해를 화장하여 수목장(樹木葬) 한 것이다.
나무 밑에 써 놓은 문장은 그의 출세작 <수녀원의 비망록>의 마지막 구절이다.
평생 내세니 천국이니 하는 종교적 언어를 혐오했던 사람, 무신론자 사라마구에게 딱 맞는 묘비명이다.
정말로 지구에 속해 있어서 별들 속으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월간문학 2024년 2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