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year life, 잭, 지미, 제인 이야기
학교 입학 후 한 달쯤 되니 거시경제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대학 때 전공과목이었고 자격시험 1차 과목이었으니 나름 기본은 되어 있다고 자부했고 첫 수업이니 수요와 공급 곡선 정도 가르칠 것으로 예상했다. 근데, 교수님이 수업 시작하자마자 꺼내신 첫 단어부터 반전이었다.
'Longevity, 장기 수명'
작금의 거시경제학의 가장 큰 화두는 '인간이 너무 오래 살고 인공지능 및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서 야기하는 개인과 국가의 경제 사회적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였다.
장기수명의 저주
교수님의 저서 'The 100-year life'는 영국 한 가정의 3대에 걸친 수명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개인과 국가가 직면한 난제를 잘 설명하고 있다.
영국의 한 가정이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 일을 위한 준비 기간, 일하는 기간, 은퇴 기간의 3 stages life를 가정한다면,
할아버지 Jack: 1945 년생, 20살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42년을 일하다, 62세에 은퇴해서, 슬프게도 70세 사망, 은퇴기간 8년
아빠 Jimmy: 1971년생, 21살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44년을 일하다, 65세에 은퇴해서, 85세에 사망 예정, 은퇴기간 20년
딸 Jane: 1998 년생, 21살에 대학교를 졸업할 예정이고, 44년을 일하다, 65세에 은퇴해서, 100세에 사망 예정, 은퇴기간 35년
단번에 아빠 지미의 20년간의 은퇴 생활이 유지되기가 만만하지 않고, 딸 제인의 장장 35년간의 은퇴생활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기에 어렵지 않다. 교수님의 책이 이를 통계적으로 설명한다.
은퇴 직전의 마지막 월수입의 50% 가 은퇴기간 동안 매달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할아버지 잭의 경우, 은퇴자금을 42년 근로 기간 동안 매년 4.3%만 저축하면 되었다. 아래 그림으로 보면,
할아버지 잭의 경우 은퇴기간이 8년밖에 되지 않고, 과거 영국에서 회사가 연금을 책임졌으므로 본인이 마련해야 할 저축액이 은퇴기간 필요한 총연금의 40% 정도면 되므로, 이 금액은 42년 근로 기간 동안 매년 4.3%만 저축하면 마련할 수 있었다.
아버지 지미의 경우, 더 어려운 상황인데, 은퇴기간 20년을 견디려면, 근로기간 44년 동안 매달 월급의 평균 17.2%를 저축해야 한다.
아빠 지미의 세대는 우리나라처럼 회사가 연금을 책임져 주지 않으므로, 국가연금을 제외한 나머지 연금을 본인 저축으로 마련해야 하니, 지미는 44년 근로 기간 동안 수입의 평균 17.2%를 저축해야 한다.
당연히, 딸 제인의 경우, 은퇴기간 35년에 대한 준비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단순 계산을 해 보면, 제인의 월급의 25%를 44년 동안 저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아빠 지미와 딸 제인이 할아버지 잭 정도의 은퇴자금을 마련하려면, 아빠 지미는 평균 75세, 딸 제인은 85세까지 일을 해야만 약 10년에서 15년 정도의 은퇴기간을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산술적인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시사점은 아빠 지미와 특히 딸 제인이 같은 직업으로 중단 없이 75세와 85세까지 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스럽지도 않다는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3 stage 삶이 아니라, 4 혹은 5 stage 삶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나의 대책 없는 50대 유학 결정은 내 세대의 대략적인 수명이 90대 정도라고 보면 아직도 살아야 할 날이 40년 (거의 반 평생)이 더 남아 있기 때문에 어떤 결정이든 늦지 않다는 막연한 직관의 결과였다.
그러나, 막상 현시대 경제학 (40년 전과는 너무나 다르게)의 핫 테마인 '장기수명'이 제공하는 사회 경제적 함의는 나의 미친 의사결정이 미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위안을 제공했다.
그리고 일의 준비기간, 일하는 기간, 은퇴기간의 전통적인 3단계 인생항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장기수명을 버티려면 일하는 기간이 더 이상 1단계로 끝날 수 없으며 2단계, 3단계로 연장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한 직장, 한 가지 직업으로 2단계, 3단계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는 말인가?
지미와 같은 세대인 내 또래는 정년 60세는커녕 훨씬 이전부터 은퇴를 강요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
누구나 은퇴 후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것도 가능한 오랫동안.
그러나,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
장기수명 수업은 내가 모르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한 것이 아니었다. 장기수명이 가져올 문제가 바로 나의 문제이며 그것도 먼발치에 있는 것이 아닌, 바로 내 문 앞에 닥친 것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고 당장 뭔가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임을 자각시키는 'Wake up' call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전히 내가 서 있는 길 위에 짙고 깊은 연무만 가득할 뿐이다.
나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 내비게이션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