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데르센 동화
글쓰기 학교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수필 쓰기 숙제를 받았다. 몇 번을 생각해도 심쿵했거나 환희에 들뜰 만큼 행복했던 순간이 떠 오르지 않았다. 그냥, 대학교 입학과 졸업, 시험 합격, 취업, 결혼, 출산과 같은 인생의 큰 이정표를 지날 때마다 기쁘고 행복했으리라..
'행복했으리라'는 표현이 말하듯,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은 흐릿해지고, 감정은 메말라버려 행복했어야 할 순간에도 행복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무미 건조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답답해서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당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가 기억나? 언제야?”
“그럼! 기억나지... 당신은 기억이 안 나?”
“응... 난 딱히...”
“아니~~ 작년 여름, 아들 학교에 놀러 갔을 때 말이야. 아들이 학교 앞 강에서 뱃놀이시켜 준 거 기억 안 나? 우리는 근처 마트에서 산 싸구려 샴페인을 마시며 우리 배를 따라오는 오리들과 장난쳤고, 아들은 배 꼬리에 서서 노 저으며 마치 베네치아의 곤돌라 뱃사공처럼 재잘거리던 그 평화로웠던 시간 말이야…”
“또, 당신 대학원 졸업식 날, 아들이 학교에서 탄 우수 논문 시상금으로, 당신 졸업 축하 겸, 템즈 강가 근사한 식당에서 점심을 산 날”
“이번 여름 세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이태리 토스카나 와이너리를 신나게 돌아다녔던 날도 있잖아. 얼마나 재미있었고, 좋았던 시간이 많았었는데…”
“그냥, 햇살과 바람이 좋은 날, 가족과 뭘 해도 그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야"
신기했다. 아내야 말로 마치 내 숙제를 하듯,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막힘없이 풀어놓는다. 가끔, 인생의 목표를 묻는 내 질문에 한 번도 따짐 없이 '행복하기'라고 대답하는 아내답다. 그런 아내를 나는 늘 약간씩 빈정거렸다. 행복은 감정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고..
그게 T를 가진 남편과 F를 가진 아내의 건널 수 없는 차이다. 그러나,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T 도 결국 가족이 모여 뭔 가를 할 때가 젤 행복했던 것은 마찬가지다.
아내에게 영감을 받아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 올리려고 집중했다. 마치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어른이 된 토토가 돌아가신 알베르또 아저씨가 남긴, 검열 때문에 잘라낸 키스 장면들이 한 칸씩 지나가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 필름이 한 칸씩 지나가다가 한 장면에 딱 멈춰 섰다.
크리스마스다
나에게 딸이 있다면 절대 시집보내지 않을 살가움이라곤 일도 없는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경상도 집안. 그중에서도 아들만 3형제인 집안. '작고, 예쁘고, 부드럽고, 편안하고, 세련된'이란 형용사가 어울리지 않는 집안에서 자란 내가 유치하고 간지럽게도 어느샌가 일 년 중 가장 기다리고 있는 날이 크리스마스가 돼 버렸다.
나와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아내는 예쁜 것을 좋아하는 서울 여자다. 결혼 후 맞이한 첫 크리스마스. 11월에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러 양재동에 가잔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내 일상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었고, 그걸 파는 곳이 양재동인 것도 생소했다.
아내 성화 덕분에 내 생애 첫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되어 거실에 세워졌고 오색 전등이 반짝거렸던 장면이 어색하고 신기했다. 모든 것이 잠든 한 밤중 가만히 귀 기울이면 트리를 휘감고 있는 라이트가 색깔을 바꿀 때마다 들릴 듯 말듯한 소리를 내는 것도 처음 알았다.
"타르륵 타르륵"
아내는 크리스마스트리 바닥에 초록 빨강 스커트를 깔았다. 그 위에 예쁘게 포장한 선물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너무 외롭다며 트리 밑에 선물 박스를 하나둘씩 갖다 놓기 시작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는 그냥 지켜봤다. 크리스마스 아침 댓바람부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가져다준 선물을 보자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트리 앞에 앉았다. 비록 소소한 것들이긴 하지만 대부분 내 것이었다. 나는 겸연쩍게 회사에서 받은 연말 상품권을 내놓았다.
이듬해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커 갈수록 아내의 크리스마스 이벤트는 더 성대해졌다. 아이의 눈동자에 반짝반짝, 알록달록 비치는 오나먼트를 도대체 어디서 구해 오는지 해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더 풍성해지고, 트리 밑의 선물 상자 개수는 더 많아졌다. 몇 년을 회사 상품권으로 때우다가 나도 아내와 아들의 선물을 가족에게 들킬까 봐 몰래 포장해서 트리 밑에 놓아두는 낯 간지러운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행사는 영국에서 살았던 시절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되었다. 내 영국 친구, 로저 가족의 크리스마스는 우리 부부에게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는 거였고, 그대로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전통이 돼버렸다.
우선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 선물 모으기에 집중한다. 심지어 생일 선물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둔갑한다. 값비싼 선물일 필요가 없고 사소한 필수품들을 선물로 포장하여 일 년 내내 자기 비밀 공간에 숨겨 놓았다가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면 트리 밑에 하나씩 갖다 놓는다.
마치 일개미가 열심히 겨울나기 먹이를 둥지에 쌓아 놓은 것처럼, 일 년 내내 모은 선물들이 트리 밑의 공간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2층, 3층으로 쌓인다. 형형색색의 불빛과 알록달록 포장지로 옷을 입은 선물들이 트리를 더 화려하게 만들어, 마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고향 마을 어느 집의 그것처럼 환상적이다.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 날, 온 가족과 친구들이 한 가지씩 음식과 마실 것들을 들고 와서 집에 모인다. 해마다 다르게 정하는 크리스마스 코스튬에 맞게 치장을 한다. 빨간색이 지정되면, 몸에 붙어 있는 것들 중 반드시 하나 이상은 빨간색이어야 한다. 빨간 모자, 빨간 리본, 빨간 스웨터, 심지어 빨간 양말까지 어떤 것도 상관없다. 단, 빨강 속옷은 안된다. 보이지 않으므로...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맥주며, 와인이며, 각자 취향대로 드링크를 하나씩 들고 삼삼오오 모여 돌아가며 수다를 떤다. 한 모금의 알코올과 수다로 엔도르핀이 듬뿍 나오며, 크리스마스 정찬에 대한 기대가 샘솟는다.
8시, 저녁 만찬시각.
모두 알록달록 색동 왕관을 머리에 쓰고, 최대한 붙어서 원을 그리며 앉는다. 양팔을 엇갈려 양 옆에 앉은 사람의 크래커를 맞잡고, one two three 구호에 맞춰 양쪽 막대기를 힘껏 잡아당기면 "빵" 소리를 내며 크래커 끝이 터진다. 초콜릿과 사탕이 쏟아져 나온다.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파티를 알리는 신호다.
양껏 채운 와인 글라스를 모두 높이 쳐들며 큰 소리로 외친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뉴이어!!!!"
때 마침, 창 밖에 내리는 하얀 눈. 완벽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겨울의 정점을 알리지만, 창 안쪽의 크리스마스를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의 축제는 이브 끝말이 떨어진 시간까지 이어진다.
다음날, 진짜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제일 게으른 날이 된다. 전날밤늦게 끝난 모임으로 느지막하게 일어난다. 파티는 끝났고, 모든 친지 친구들은 떠났다. 오늘은 가족끼리 하루 종일 잠 옷 바람으로 뒹굴 거리는 날이다.
이제야말로 몇 달을, 아니 일 년 내내 준비하고 기다린 크리스마스 선물 개봉 시간
첫 번째 일은 큰맘 먹고, 제법 좋은 샴페인을 따서 잔을 채운다
각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모자나, 안경이나, 루돌프 뿔 장식품을 몸에 채우고 샴페인 잔을 들고 트리 앞에 모인다. 성대한 의식에 앞서 건배를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어게인"
마음 내키는 대로 탐나는 선물들을 앞 다투어 개봉한다. 작고 소소하지만 필요한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개인 취향 저격 여부에 따라 찬양과 비난이 엇갈린다. 그래도 선물은 좋다. 트리 밑에 쌓아둔 선물 박스들 개봉이 거의 끝날 때쯤, 세 사람은 각자 준비한 비장의 선물들을 공개한다.
올해는 내 방 한쪽 켠에 몰래 감추어 둔 가늘고 긴 박스를 가져왔다. 아내의 눈 길이 사냥감을 발견한 사자처럼 내 박스를 따라다녔다. 골프에 막 재미를 붙이고 있는 아내를 위한 웨지 클럽 하나. 올해 내가 준비한 아내의 선물이었다. 아내와 같이 골프 숍에서 쳐 보고 결제해 주면 간단한 것을, 굳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변신시키기 위해 클럽보다 훨씬 큰 박스에 담아 포장까지 해서 쟁여 놓았던 나.
세상의 모든 이데올로기 중에서 귀차니즘을 가장 신봉하는 나의 배신이자 변신이다.
영국 주재원 발령으로 영국 초등학교로 이동한 아들은 영국에서 생활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현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니 아들은 점점 영국인이 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학창 시절엔 여름, 겨울 방학 때면 꽤 길게 한국 부모 곁에 와 있었는데, 이제 직장인이 되고 여자 친구까지 생겼으니, 휴가를 내서 자주 한국에 올 형편이 못 된다.
그래서 약속을 했다. 진짜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크리스마스는 온 가족이 같이 보내자고.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야 말로 일 년에 한 번, 온 가족이 모여서 맛난 음식 먹고 선물 주고받으며 즐겁게 보내는 우리 가족의 명절이다. 누군가의 수고와 희생 없이, 그날 하루만이라도, 그냥 먹고 마시며 잠 옷 바람으로 편하게 있기. 그게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보내기 방식이자 전통이다.
함박눈이 내리던 밤, 안데르센 동화의 성냥팔이 소녀처럼, 어느 집 창 밖에서 꽁꽁 언 손을 호호 거리며 창 문 너머 따듯하고, 화사한 크리스마스의 온기를 부럽게 바라봤던 소년에게 크리스마스는 동화고, 동경이며 축복이었다.
소년이 이제 초로의 나이가 되어 가족과 만들고 있는 크리스마스는 서로를 따뜻이 보듬으며 온기를 나누는 자리이자, 서로의 안전과 평화를 공유하는 시간이다.
창 밖의 소년에게 크리스마스는 그래서 특별하다. 그게 나의 크리스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