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별장에서 글쓰기를 꿈꾸며
'앗! 벌써 6시네...'
금요일 저녁 6시. 하던 일을 급히 마감하고,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고민 끝에 등록한 KBS방송아카데미 글쓰기 취미반 첫 수업날이었다.
사무실에서 방송아카데미가 있는 상암동까지 차로 40분 거리니, 7시 수업 시각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금요일 퇴근 시간에 비까지 내리니, 내비게이션 도착 시각은 계속 늘어졌다. 첫 수업부터 지각을 하기 싫은 나의 조바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 가을 지독히도 내리는 비가 차창을 때리고 있었다.
매일 같이 내리니, 장맛비라고 험담해도, 가을비는 역시 냄새부터 여름비와 다르다. 비록 차창 밖은 어두워졌지만, 아직 자기 색을 잃지 않은 노란 은행 나뭇잎들과 기름기 빠져 파삭 말라버려 찌그러진 부채 같은 플라타너스 큰 잎들이 물기 맞아 뿜어내는 가을비 냄새는 시원하고 축축했다.
젖은 낙엽의 냄새를 간직한 한국 가을비가 영국 겨울비를 소환시켰다.
2018년 1월 1일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던 런던 히드로 공항. 50여 년의 내 우주 밖에 있었던 외계인들과 같이 수업을 듣기 위해 런던에 도착한 날.
지금 가을비를 맞으며 달려가고 있는 글쓰기 수업은 8년 전 그때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내 일상 밖의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항상 긴장되면서도 설렌다.
가까스로 7시 땡 할 때 도착하니, 교실 문을 막 닫으려고 하는 작가 선생님이 나를 환한 미소로 맞아 주셨다. 처음 만났지만 '당신이었군요' 하는 눈 빛이었다. 글쓰기 수업 신청 때 제출했던 내 프로필, 글 쓰려고 하는 동기 등으로 이미 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셨을 터이다.
예상과 달리 출석 학생들이 몇 명 되지 않아서 약간 맥이 풀렸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내가 이 공간에 있는 것이 민망할 만큼 나와 다른 출석자들 사이엔 몇 세대의 시공간이 달랐다.
나는 왜 항상 모든 일에 늦깎이일까? 늦깎이 인생...
그래도 작가 샘이 한줄기 위안이 되는 말씀을 하셨다. 글쓰기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3가지 부류로, '이직, 휴직, 퇴직자'인데, 나는 당연 퇴직자 분류에 속해서 나의 글쓰기 수업 참여가 그렇게 생뚱맞은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관종이라고 하는 말에 내 비밀을 들킨 것 같은 순간적인 민망함..
그날부터 10월, 11월 두 달 동안 매주 금요일 밤 7시부터 10시까지 수업이 진행되었다. 언젠가부터, 불타고 싶어도 1차를 하면 급 피곤해져서, 그냥 집에 가서 라면으로 2차를 하고 싶은 더 이상 불타지 않는 금요일이지만, 그래도 주말을 앞두고 아내와 삼겹살에 소주 한잔의 느긋한 행복감이 있는 금요일이었다. 그걸 저당 잡혔지만, 내 일상 밖의 나에겐 완벽한 외계인인 젊은이들을 만나는 것이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그들의 글동무가 되는 것이 이 나이의 아재에겐 훈장 같은 것이기도 했다. 아직은 살아 있다는 증표 같은...
젊은 글동무들의 글을 보며, 좋은 글은 발성을 내며 읽을 때 매끄럽게 읽히는 것이며, 일기 쓰기 같은 내 글과 달리 그들의 글에는 내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감성들이 녹아 있었다. 그들이 나누고 소개한 참으로 많은 문학소설과 에세이를 보며, 그중에 한 구절도 읽은 것이 없어서 내심 당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시긴이기도 했다.
인상적인 것은 젊은 친구들이 특히 일본 영화와 소설에 대해서 자주 얘기를 나눴다.
일본 영화라곤 사무라이 영화를 최고로 치는 나
책만 들면 졸리기 부터 하는 나,
그나마 역사 소설이나 다큐멘터리가 책이라고 믿는 나
신혼 때 아내가 친정에서 가져온 각종 문학 소설들은 여성스러운 것, 감상적인 것, 먹고사는 문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아니, 그 책들은 매일 삶의 전장에서 발휘해야 할 나의 전투력을 갉아먹는 감상적인 것들로서 멀리해야 할 것들이었다.
그랬던 내가 왜 지금 글을 쓰고 있는가?
처음에는 아들이 상상의 독자였다. 특별할 것 없는 위인이므로 누구도 내가 살아 내었던 시간에 관심이 없겠지만, 아들이 유일한 독자로서 리얼 타임은 아니라도, 내가 죽고 나서, 내가 살아왔던 역사를 우연이라도 읽어 주면 족하다는 느낌으로 시작한 글쓰기는 그 자체로 나의 일기였다.
이제는 생각 없이 말부터 하는 나의 성정에 비추어 글을 쓰면 어쩔 수 없이 생각해야 하므로 나의 글이 나의 말 보다 훨씬 전달력이 좋다는 효용을 느끼고 있다. 효용은 더 좋은 글을 써 보고 싶은 욕심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단어와 지루한 문장을 반복하는 내 한계를 느끼며 시작한, 2달 동안의 글쓰기 기초 수업 한 번이 내 글쓰기 수준을 달라지게 하진 못했다. 그래도 내 젊은 글동무들이 읽었던 책들을 보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해야 할 훈련을 알게 된 것이 소득이었다.
부랴 부랴 글동무 책들을 주문하려는 내 모습을 본 아내가 아들 방에서 책들을 한 아름 빼오더니 내 앞에서 책 탑을 쌓았다.
글 동무 책들이 다 있다
결혼 생활 25년 넘도록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아내의 책
그것들에게 이제야 눈길을 주는 나의 역설적인 모습은 나이 탓인가, 호르몬 탓인가. 아니면 길지 않게 남은 퇴직을 앞두고 이제 더 이상 전투력이 필요 없어져서 인가.
마치 몰래 감춰두고 까막히 잊고 지내다가 이사하면서 방바닥에 툭 떨어진 비상금을 발견한 것처럼 아내의 책 탑을 마치 횡재한 느낌 그대로 소중히 내 방으로 옮겼다.
아내의 책 탑에는 없지만 글쓰기 선생님이 소개한 수 많은 책들 중 이상하게 내 눈길을 잡아 끈 일본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주문했다.
무라이 슌스케 건축사무소의 아사마산 여름별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아직 본격적으로 읽지 않아 내용은 잘 모르지만, 작가가 묘사한 여름별장이 있는 아사마산의 풍경과 별장 주위의 마을 모습이 살아 본 적 없는 시골 마을의 향수와 언젠가 그런 곳에 머물고 있을 내 모습의 동경 같은 것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곳에 머물며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사무라이 영화 밖에 보지 않았지만 어릴 적부터 일본이 좋았다. 그들의 정갈함과 딱 떨어지는 깔끔함에 매료됐었다.
몇 페이지 읽지 않은 이 책의 묘사는 퇴직하면 일본에서 살아 보리라는 내 계획에 동력을 불어 넣고 있다. 일본에서 살아 보려면 일단 말과 글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번역이 아닌 일본어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젊은이들을 만나는 금요일 수업은 끝났지만, 일본어를 만나기 위한 주말반은 곧 시작될 것이다.
얼마 전 어느 가요 경연 프로그램에서 삶의 스토리가 있었던 한 젊은이가 불렀던 최백호 님의 '나를 떠나가는 모든 것들' 을 들으면서, 아직 떠나 보내는 것들의 쓸쓸함을 알 수 없을 젊은이가 노랫말을 참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떠나가는 것들'이 오늘 내 글의 모티브가 되었다.
나에겐 떠나 보내는 것보다 아직 도전하고픈 새로운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