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이 아이의 검사 결과지를 들고 자랑하듯 말씀하셨다.
“모범 성적표예요. 제가 보관하고 환자들에게 얘기해 줘야겠어요.”
아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학교에서 상장을 들고 와 보여줬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이 성적표는 우리가 함께 노력해 온 날들을 기념하는 증표이니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었다.
1형 당뇨 진단을 받고 3개월 만에 당화혈색소 6.0의 결과를 받았다. 인슐린 펌프를 사용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진단 후 12개월 만에 5.1을 기록했다. 5.1이면 완전히 정상인의 수치이다.
우리 몸의 적혈구는 약 3개월 동안 살다가 새것으로 바뀐다. 그동안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면서 포도당과 만나게 된다. 혈당이 높을수록 포도당이 적혈구에 더 많이 달라붙는데, 이렇게 당이 붙은 헤모글로빈을 당화혈색소라고 하고, 이 비율을 퍼센트로 표시한 것이 당화혈색소 수치이다.
대략 5.7% 이하이면 정상, 6.5% 이상이면 당뇨로 진단하고 7% 이하이면 당뇨 관리가 잘 되고 있는 상태로 본다.
그럼 ‘당화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당화 된다는 의미는 쉽게 말하면 노랗게 굳어 가는 것을 말한다. 식빵을 토스터기에 구우면 겉이 갈색으로 바삭하게 익는다. 이것이 바로 당화 과정이다. 어린아이의 뼈는 새하얗지만 노인의 뼈는 노랗게 변해 있다.
늙어 간다는 것, 바로 당화 과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조금씩 그렇게 구워지고 있다.
* 당화 과정에 대한 내용은 제시 인차우스페의《글루코스 혁명》을 참고
그런데 아직 10대인 우리 아이가 이런 노화 과정을 이렇게 빨리 겪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가슴이 아파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정말, 정말 노력했다.
식사 때마다 지키려고 노력하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가능하면 매 식사 때마다 샐러드나 채소 반찬을 먼저 먹는다.
둘째, 식사 후에는 가능하면 몸을 움직인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이 습관이 우리 가족의 생활 방식이 되었다.
나는 내가 배운 것들을 주변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어졌다. 동료들과, 친구들과, 동생네 식구들과 식사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채소를 먼저 먹어 보자고 권하고, 식사가 끝나면 “조금만 걸을까?” 하며 산책을 제안하기도 한다. 당뇨 환자만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좋은 생활 습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당뇨교육실 간호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한 번은 위기가 와요.”
아이가 사춘기를 겪을 때, 대학생이 되었을 때. 위기의 순간은 언젠가 한 번쯤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때 또 한 번 넘기면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