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당화혈색소 6.0의 기적

2023년 7월

by MJ

혈당 관리를 위해 3개월마다 당화혈색소 검사를 한다. 인슐린 처치를 시작한 지 정확히 3개월, 다시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긴장된다. 당화혈색소 12 이상이라는 숫자로 입원했던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잘 버텨왔는지를 단번에 보여주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걸까.’

결과를 듣기 전까지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 3개월은 말 그대로 생활 전체를 혈당에 맞춰 재조립한 시간이었다. 규칙적인 식사를 위해 주말이든 평일이든 항상 같은 시간에 밥을 먹었다.

병원에서 받은 식단표와 인슐린 계산법을 최대한 정확히 지키려 애썼다. 혈당이 오르면 한여름 땡볕에도 밖으로 나가 배드민턴을 쳤고, 이동 중에도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줄넘기를 늘 가방에 넣고 다녔다. 먹는 양을 정확히 재기 위해 숟가락 저울을 샀고,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저울도 샀다. 집에는 어느새 저울만 몇 개가 늘어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되었다.


**양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을 먹느냐는 ‘식사의 질’**이라는 사실을.


가장 어려운 구간은 학교였다. 학교 급식은 당뇨 아이에게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식사였다. 집에서는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했지만, 학교에서는 아이가 모든 선택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채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급식판 위는 늘 탄수화물이 중심이었다. 밥, 빵, 면이 자리를 차지했고 혈당을 완만하게 잡아줄 채소는 늘 모자랐다. 식이섬유가 빠진 자리는 고스란히 혈당의 급상승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수요일 분식데이가 더해지면 그날 하루는 통째로 변수가 되었다. 떡볶이, 튀김, 어묵, 달콤한 소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였지만 우리 아이는 긴장부터 시작해야 하는 식단이었다. 그중 가장 어려운 음식은 떡볶이와 짜장면이다. 두 음식 모두 정제된 탄수화물이라 먹자마자 혈당이 오르지 않는다. 처음엔 괜찮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혈당은 예고 없이 계속해서 오른다. 이미 인슐린의 작용 시간이 지나버린 뒤 알람이 울린다. 떡볶이는 빠르게 오르는 음식이 아니라 늦게, 그리고 크게 오르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더 계산이 어려웠고 그래서 더 많은 실패를 남겼다. “먹지 말자.” 그렇게 말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머리로는 맞는 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마음은 힘들었다. 급식판 앞에서 망설일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고, 친구들 사이에서 괜히 더 조심스러워질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먹지 않는 것이 아이를 지키는 선택이면서도 아이에게서 또 하나의 일상을 빼앗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분식데이는 아이보다 부모의 마음이 먼저 흔들리는 날이었다. 집에서는 조금씩 방향을 바꿨다. 탄수화물의 양을 맞추는 데서 끝내지 않고, 혈당을 덜 흔드는 식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같은 밥 한 공기라도 어떤 반찬과 함께 먹느냐에 따라 혈당 곡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숫자를 맞추는 데만 매달리던 시기를 지나 아이 스스로도 “이건 먹고 나면 혈당이 편해” “이건 항상 튀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말 한마디가 저울 몇 개보다 훨씬 값지게 느껴졌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혈당을 내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움직였다.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렸고, 집 근처 공원에 나가 배드민턴을 쳤다. 혈당이 애매하게 오르는 날에는 해가 진 뒤에도 다시 밖으로 나갔다. 저녁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도 라켓을 들고 몸을 움직였다. 그날의 혈당 수치가 그날의 운동량을 결정했다. 하루를 정리해야 할 시간에도 우리는 다시 운동화를 신었다.

우리가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베란다에 사다 둔 로잉머신도 그때부터는 식사 후마다 탔다. 밥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베란다로 향했다. 그날 혈당에 따라 조금 더 세게, 조금 더 오래 노를 저었다. 겨울이 되자 날씨가 또 변수가 됐다. 추워진 베란다 대신 집 안에 스피드 자전거를 들였다. 자전거는 곧 식사 후의 일상이 되었고, 혈당이 오를 때마다 가장 먼저 찾는 도구가 되었다. 운동은 더 이상 ‘특별히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식사와 혈당 사이에 끼어든 하나의 과정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알게 됐다. 운동은 혈당을 떨어뜨리는 도구가 아니라 혈당을 안정시키는 리듬이라는 것을.


검사 결과를 들은 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당화혈색소 6.0입니다.”

그 숫자를 듣는 순간 기쁘다기보다 먼저 숨이 풀렸다. 잘 해냈다는 안도, 그리고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동시에 밀려왔다. 기적이라 부르기엔 너무 많은 노력과 불안이 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그날만큼은 분명히 기적 같은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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