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혈당에 맞춰 살기. 아니,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인슐린 펌프의 시작

by MJ

저녁식사를 하고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커피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카페에서 책이나 읽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알람이 울렸다. 저혈당 알람. 뛰어간 것도 아니고 그냥 걸었을 뿐인데 혈당이 급격히 떨어졌다. 남편이 급히 카페로 뛰어가 레모네이드를 사 와 마시게 하고는 숫자가 오르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나서야 우리는 천천히 카페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저녁 식사 후 날씨가 좋아서 카페에 가서 책이나 읽을까 했던 것이 이런 해프닝으로 돌아왔다.


혈당이 오르면 계단을 오르고, 저혈 알람이 울리면 자는 아이를 깨운다. 손끝을 찔러 다시 확인하고, 진짜 저혈이면 주스를 먹인다. 운동하고 싶을 때 운동하는 것, 자고 싶을 때 자는 것,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는 것. 이 단순한 일들이 열다섯밖에 안된 우리 아이에게는 더 이상 단순하지 않았다. 혈당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했다. 그래서 우리는 미뤄두었던 인슐린 펌프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고 생각했기에 또 다른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두려워 계속 미뤄왔던 선택이었다.


인슐린 펌프를 쓰면 매번 바늘을 찌르지 않아도 된다. 작은 핸드폰만 한 기계를 들고 몸에 달고, 튜브를 연결해 다녀야 한다. 활동량이 많은 아이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속혈당측정기와 연동되어 혈당을 읽고, 그에 맞춰 인슐린을 자동으로 조절해 준다고 했다. 많은 아이들이 이런 이유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기기라 일주일 체험프로그램을 신청해 먼저 사용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자다가 튜브가 빠졌다. 다시 연결하려면 두꺼운 삽입 바늘을 배에 또 찔러야 했다. 우리는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패치형 펌프를 시도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개발한 패치형 펌프는 초기 단계라 우리가 기대한 성능을 내지 못했다. 결국 또다시 몇 개월이 지나 해외에서 패치형 펌프를 구입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걸 붙이고 나서야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연속해서 몇 시간을 잘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번갈아 가면 새벽을 지켰는지 모른다. 경보음에 놀라 벌떡 일어나던 밤들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물론 펌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갑자기 펌프 판매가 중단되기도 하고, 주사 바늘이 빠져 인슐린이 들어가지 않기도 하고, 카트리지에 인슐린이 다 떨어진 걸 모르고 있다가 고혈당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계속 생긴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우리가 혈당을 쫓아다니던 삶에서 이제는 혈당이 우리를 크게 흔들지 않는 삶으로 조금 이동했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는 열여섯 아이에게는 생각보다 큰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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