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피자 한 판
아이 방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가 청소를 하고 또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끝에, 별수 없이 키도 닿지 않는 붙박이장 위 선반을 뒤졌다. 손끝에 뭔가 닿았다. 간신히 꺼내보니 피자 박스였다. 참고 또 참다가 먹고 싶어서 사 먹고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내 키도 닿지 않는 곳에 숨겨 둔 것이다.
피자 한 판을 혼자 다 먹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싶다가도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 앞에 빈 피자 박스를 내려놓았다. 피자 한 판이면 꽤 많은 양의 인슐린이 필요하다. 매 끼니마다 인슐린 양을 함께 확인하고 주입해 왔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알고 보니 엄마에게 들킬까 봐 펜주사를 따로 썼다는 것이다. 펜주사와 인슐린 펌프를 함께 사용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언제나 저혈당의 위험에 놓여 있는 아이가 그 위험의 심각성을 모른 채 행동했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식탐은 어른도 참기 힘든 욕구다. 이해하려 하면서도 화가 치밀었다. 결국은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왜 말을 안 했어.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말하라고 했잖아. 주말에는 맛있는 거 먹자고 했잖아.”
아이의 대답은 짧았다.
“엄마가 화낼 것 같아서.”
그 한마디에 나는 무너졌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열심히 관리했다. 기록하고, 계산하고, 조절하고, 통제했다.
혈당 그래프는 안정됐지만 아이의 마음 그래프는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피자 한 판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또래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싶었던 자유였을 것이다. 줄 서서 급식 먹기 전에 인슐린을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운동 후 저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당뇨인’이 아니라 그냥 ‘중2 남자아이’로 있고 싶은 마음.
그런데 우리는 매 끼니마다 물었다.
“몇 그램이야?”
“인슐린 몇 유닛이야?”
“펌프 볼루스 넣었어?”
우리는 협력자였지만 동시에 감시자이기도 했다.
더 무서웠던 건 펜주사와 펌프를 동시에 사용했다는 사실이었다. 인슐린이 겹쳐 들어가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알고 있었다. 저혈은 숫자가 아니라 의식을 잃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나는 아이를 혼내려다 멈췄다.
지금 필요한 건 꾸중이 아니라 다시 합의를 하는 일이었다.
“먹고 싶으면 같이 먹자. 숨기지 말고, 계산해서 먹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개 끄덕임은 반성이라기보다 안도에 가까웠다.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당뇨 관리에서 가장 위험한 건 고혈도 저혈도 아니라 숨김이라는 것을. 숨기면 계산할 수 없고, 계산할 수 없으면 대비할 수 없다. 그리고 아이가 숨기기 시작하면 더 이상은 해결할 수 없게 된다.
그날 이후 우리 집 냉장고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이 하나 붙었다.
"Don't lie"
거짓말하지 말자는 뜻이었지만 사실은 이런 약속이었다.
혼자 감당하지 말자
먹고 싶은 걸 참지 말자.
숨기지 말자.
두려워도 말하자.
화가 날 것 같아도 말하자.
같이 해결하자.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혈당을 관리하는 가족이기 전에 서로를 지켜야 하는 팀이었다. 피자 한 판은 반항이 아니었다.
아이의 방식대로 외친 신호였다.
“나도 그냥 중2야.”
그 신호를 그제야 알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