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먹어도 혈당이 오르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혈당은 오르기는커녕 자꾸 떨어졌다.
주스를 네 통이나 마셨고, 꿀 스틱을 세 개나 짜 먹였고, 밥 한 공기를 먹고도 모자라 다시 밥을 먹었다.
그런데도 혈당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더 혼란스러운 건 수치였다. 연속혈당측정기마다 숫자가 달랐다.
센서 유효기간이 끝나면 새 수치가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기에,
아이는 덱스컴과 리브레 센서를 동시에 부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센서의 숫자는 서로 달랐고, 손끝을 찔러 직접 측정한 혈당마저 또 달랐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부터 우리는 두 시간 넘게 혈당과 싸우고 있었다.
결국 응급실로 가기로 했다. 병원까지는 30분이 넘게 걸린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인슐린 냉장고에서 주황색 글루카곤 주사를 꺼냈다.
병원에서 위급 상황에 대비해 처방해 준 약이었지만, 정작 우리는 사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가 말했다.
“나 주사 맞을 수 있어.”
남편이 매뉴얼을 급히 읽으며 아이의 허벅지에 주사를 놓았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신음을 냈다.
그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랴부랴 택시를 불렀다. 휴대폰 충전기, 오렌지 주스, 꿀 스틱을 한 움큼 챙겨 새벽 2시, 응급실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아이는 계속 졸리다고 했다. 힘이 빠진다고도 했다.
단순히 새벽이라 졸린 건지, 저혈당 때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잠들까 봐 계속 말을 걸며 아이를 깨웠다.
“엄마 말 들려?”
“조금만 참자. 금방 도착해.”
다행히도 그날 밤 응급실에는 소아청소년과 응급의가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혈당을 측정했는데 수치는 고혈과 저혈을 오락가락했다.
채혈 검사를 하려 했지만 피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 찐득해져 흐르지 않았다. 식염수를 먼저 투여한 뒤
다시 채혈을 시도해서야 검사가 가능했다. 칼륨 수치가 낮았다.
인슐린 처치로 인해 칼륨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칼륨이 섞인 0.5% 포도당 수액을 맞고 아이와 함께 입원실로 올라갔다.
다음 날 아침, 담당 주치의 선생님의 회진이 있었다.
“글루카곤 주사를 맞고 오신 건 정말 잘하신 겁니다.”
선생님은 응급 상황에서 실제로 글루카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환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했다.
“유효기간 지난 글루카곤으로 집에서 연습을 자주 해보세요. 어제는 정말 용감하게 잘 대처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비로소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혹시 초속형 인슐린과 기저 인슐린을 헷갈려 사용하신 건 아닌가요?”
인슐린 펜은 식사 전에는 초속형, 잠자기 전이나 공복 상태에는 지속형을 사용한다.
하지만 두 펜은 모양이 비슷하고 색깔만 다르다.
기저를 써야 할 때 초속형을 사용하면 탄수화물이 없는 상태에서 인슐린이 과다 투여되어 급격한 저혈당에 빠질 수 있다. 반대로 초속형을 써야 할 때 기저형을 쓰면 혈당은 제때 내려가지 않고 기저 인슐린이 중복되는 문제가 생긴다.
인슐린 펜의 발명은 당뇨 환자의 삶의 질을 분명히 높였지만,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위험한 선택의 연속이기도 했다.
회진 말미에 선생님은 이날 우리가 이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려주셨다.
“마침 오늘이 저희 병원이 소아청소년과 당직 근무일이었어요.”
만 15세 미만 소아·청소년은 응급 상황에서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있어야 제대로 된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있다. 주말에는 지역 종합병원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선다.
그 사실을 그날에서야 알았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얼마나 부족한지, 이 나라 의료 현실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응급 상황이 오면 다니던 병원으로 무작정 향하기보다 119에 먼저 전화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근무 중인 병원을 확인하고 이송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밤의 공포는 헛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위험한 순간에도 울지 않고 주사를 맞겠다고 말하던 그 아이가 얼마나 씩씩했는지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