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 당뇨 워크숍 이야기
병원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소아청소년 당뇨 가족 소풍’. 매년 1형 당뇨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놀이를 하며 유대를 쌓는 워크숍이라고 했다. 늘 바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시간을 내어 직접 마련하는 자리로 신청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포스터를 보자마자 당뇨교육실 간호사님께 여쭤봤다.
“저희도 참가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망설임 없이 신청서를 냈다. 며칠 뒤, 간호사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소풍날 장기자랑을 하나 준비해 오세요.”
순간 웃음이 났다. 학창 시절 소풍의 장기자랑이라면 늘 앞에서 박수만 치던 내가 아닌가. 노래 잘하는 친구, 춤 잘 추는 친구, 분위기 띄우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항상 뒷줄이었다. 남편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도 “준비해 보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기타 연주해 보는 건 어때?”
올해 학교 축제에서 기타를 치고 싶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할아버지에게 받은 기타는 있었지만, 노래 한 곡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한 달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날 이후 집 앞 기타 교습소를 등록했고, 주말마다 맹연습이 시작됐다. 손끝이 아프다며 투덜대던 아이가 어느새 두 곡을 간신히 완주할 수 있게 되었다.
소풍 장소는 야외가 아닌 병원 강당이었다. 의료진과 가족 소개, K-pop 댄스 배우기, 점심시간, 보물찾기, 부모 Q&A(아이들은 미술활동), 장기자랑, 단체사진까지. 일정은 생각보다 알찼다. 백여 명의 당뇨 가족이 모였다. 각 가족이 돌아가며 진단 시기와 사용하는 기기를 소개했다. 서먹서먹했지만, 모두 같은 이유로 이 자리에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혈과 저혈 사이에서 매일 줄타기를 하는 부모의 마음,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고 싶다는 마음.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K-pop 댄스를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간식을 나눠주는 대학생 형, 누나들도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1형 당뇨인이었다. 댄스 강사 역시 같은 병원에 다니는 1형 당뇨인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맡아 하나의 공동체처럼 움직였다. 영양사 선생님은 스크린에 간식의 탄수화물 양을 띄워주셨고, 아이들은 계산 후 인슐린을 맞았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아이가 펜 주사를 들어 배에 찌르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저릿했지만, 동시에 이렇게 체계적으로 준비해 준 의료진이 고마웠다.
그리고 마침내 장기자랑 시간. 아이가 준비한 곡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 그리고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무대에서 완벽하게 소화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말했다. “와, 대단해.” “목소리가 너무 좋아.” “진짜 잘하네.”
아이가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라 조율을 하고, 숨을 고른 뒤 노래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여기저기서 부모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합창이었다. 우리가 이 노래를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같이 가자’는 의미였다. 어렵지만 함께 가면 덜 힘들지 않을까. 서로에게 조금은 힘이 되지 않을까. 그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았다. 아이의 기타 소리는 묻혔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였다. 나는 울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재미있었지? 장기자랑할 때는 어땠어?”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무대에 오를 때는 너무 떨리고 가사도 생각이 안 났는데… 같이 불러주고 박수 쳐줘서 좋았어요. 장기자랑하길 잘한 것 같아요.”
며칠 뒤, 아이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께 감사 편지를 썼다. 그중 한 부분을 옮겨본다.
“그 순간 저는 한 가지 깨달았습니다.
제 공연의 진정한 목적은 그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그들과 함께 있으며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요.
이 깨달음은 제 안에 새로운 의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열린 마음으로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리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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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회를 주신 병원의 선생님들과 오늘 함께한 가족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