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아들셋을 키우는 싱글맘의 우여곡절 파란만장 엄마 성장기
매번 고난이었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재미가 있었다. 남편은 구치소에 가기전에도 늘 바빴고, 출소 이후에도 일한답시고 전혀 육아에 도움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늦거나 집에 안들어오면 더 편했다.
나는 엄마를 닮아 오지랖도 넓고 사람도 좋아해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게 재밌었다. 엄마들과 같이 도와가며 육아하는것도 재밌고, 아이들 데리고 키즈카페를 가거나 여행을 가는 일도 그저 즐거웠다.
남편이 의지가 안되니,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속내를 털어놓게 되고 내가 스스로 나를 판단하게 하는 덫을 참 곳곳에 많이도 놓고 다녔다.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위한답시고 가볍게 말을 하거나, 관계의 갈등이 생기면 해결한답시고 또 말을 옮겼다. 악의는 없었지만 멍청했다. 우린 친한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사이였는데 그때는 그걸 알지 못했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각자 성격에 맞는 무리가 지어진다. 꼭 어렸을 때, 여자애들끼리 무리가 생기는 것처럼.
나는 모두와 다 잘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이었고 나름 평화주의자였다. 언니들이 기분 나쁜 말을 해도 허허실실 웃어넘겼고, 더 어른이라고 생각해서 잘 따지지 못했다. 모임이 다른 언니들이 부르면 곧잘 나갔고 거절도 잘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박쥐같이 보였나보다. 한번 금이 간 관계의 선은 순식간에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내가 한 말들이 살이 붙어서 와전되고, 한순간에 가벼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우리의 이 관계가 아이들로 시작됐지만 평생 갈거라고 자신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고 우리 인연은 우리 인연이니까, 모두 잘 지내고 싶었던 건 내 욕심이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엄마들이 모여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말이 퍼져나갔다. 억울한 사람도 생기고, 해명하려는 사람도 생기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때부터는 점점 거리를 뒀다. 내가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사과를 하거나 오해랍시고 변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엄마들은 별로라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꼭 탈이난다 생각하며, 나를 질투하는거라고 합리화했다. 그렇게 내가 고이 품던 마음속 항아리가 깨졌다. 항아리 속에 담겨있던 물은 겉잡을 수 없이 흘러 사라졌고, 깨진 항아리 조각들을 맞춰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깨뜨린거라고 생각했다.
큰아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적응하는 1학년 시기가 지나니 관계라는 건 정말 피곤하다고 혼자 벽을 쌓았다. 쓸데없이 엄마들이랑 친해져서 좋을게 하나 없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 노력도 하지 않았다.
정작, 필요에 의해서 관계를 유지해 나갔던 건 내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