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아들셋을 키우는 싱글맘의 우여곡절 파란만장 엄마 성장기
3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차라리 숨통이 트이게 했다.
같이 있을때는 늘 기분을 살펴야 했고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사람이 곁에 없으니, 힘들고 외롭다기보다 자유로웠다. 한번은 생각했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정상이 맞는건가.
그래도 구치소 안에서 면회 갈때마다 아이를 보며 울먹거리는 그를 보며, 또 사람은 참 착한데….라고 매번 되뇌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짧고도 긴 기다림이 시작됐고, 그때도 나는 그저 묵묵히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게 많아졌다. 남편의 사업은 회사직원인 팀장한테 일임해놓고, 나는 나의 일을 시작했다. 사실상 회사 관리비와 월세를 내고, 직원들 월급주면 남는 게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벅찼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가고 학원도 다니니 좀 살만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커피도 조금 여유롭게 먹고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했다.나는 가만히 집에서 육아하는 것보다 밖에서 일하는게 더 적성에 맞는것 같았다.
3년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아쉽게도 남편의 출소날은 빠르게 다가왔다. 남편이 출소한다는데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 사이 시어머니가 청약 당첨 된 새 아파트로 이사도 하고 큰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근처 엄마들하고도 교류를 했다. 나는 아이들 엄마들 사이에서도 늘 막내였고 어린 엄마였다. 그와중에 친해진 무리가 있는데 유독 한 언니가 나를 많이 챙겨줬다. 그 언니는 키도 크고 멋진 사람이었다. 늘 일하는 나를 위해주고 우리 아이들도 자기 아이처럼 챙겨주고, 내 얘기도 곧잘 들어주는 어른이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언제나 구설수가 함께 한다. 나랑 친했던 그 언니는 동네에서도 엄마들에게 인기가 꽤 많았다. 나는 퇴근하고 집에가면 꼭 우리 아이는 언니네 집에서 저녁먹고 있거나, 언니네 아들과 놀고 있었다. 서로 챙기는 사이었기 때문에 나는 질투의 대상이 됐다. 또 인기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 적들도 많기 때문에 언니는 구설수도 많았다. 왜 사람들은 누군가를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걸까.
나도 나의 지난 경험들이 내 얼굴의 침뱉기인지도 모르고 여기저기 떠들어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 그때의 나는 남편은 매번 잘못만 하고 나는 희생만 하는 불쌍하고 대단한 여자라는 소리를 듣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위해주는 척, 걱정하는 척 하고 들었던 내 얘기가 그들에게는 얼마나 재미있는 가십거리였는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