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아들셋을 키우는 싱글맘의 우여곡절 파란만장 엄마 성장기
둘째가 태어나고 우리는 홍제동 작은 골목의 주인집 뒷방에 세를 얻어 살았다.
시어머니 말로는 임대아파트에서 버티면 새로 청약 당첨 된 집에 곧 간다는데, 그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다.
아이들도 어렸고, 엄마 집이랑 가까운 곳으로 오고 싶었던 게 더 크기도 했다.
그날은 둘째가 80일쯤 되던 날이었고, 친정집을 가려고 막 차량 뒷자석에 첫째아들하고 탔는데,
동네에 누가 이사를 왔는지 이삿짐트럭이 가득했다. 골목도 좁은데 이삿짐 트럭까지 있으니 차가 골목을 빠져나가기가 좀 힘들었다. 남편은 이삿짐 직원하고 실랑이를 하기 시작했고, 곧 큰 싸움으로 번졌다.
작은 둘째아이를 아기띠에 안고 있었는데 바로 내려서 남편을 말렸으나, 흥분한 남편은 트렁크에서 웬 사시미 칼을 꺼내더니 이삿짐 회사 직원을 위협했다. 본인은 위협만 하려고 했다고 하던데 칼끝에 살짝 배가 찔린 이삿짐 직원은 놀라서 다른곳으로 뛰어 도망쳤고, 본인이 찔렀다는거에 또 놀랐는지 칼을 숨기고 남편도 도망가버렸다. 나와 어린 아이 둘만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놓고.
하도 실랑이를 크게 한 탓에 동네 주민들까지 나와서 이 상황을 모두 봤고, 나는 주민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들과 함께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해야했다. 대체 트렁크에는 왜 칼이 있었는지부터 해서, 사건의 시작이 어떻게 됐는지까지. 아이를 출산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가혹했다.
결국, 남편은 내 울부짖음에 경찰서로 왔고, 그대로 구속됐으며 이날의 일은 뉴스에 대문짝하게 났다.
구속된 이후가 더 가관이었다. 법원의 첫 형량이 살인미수에 5년형이었는데 시어머니라는 사람은 피해자의 탄원서를 받아서 형을 상해죄로 바꿔야 한다고 가서 사과해서 탄원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같이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자기는 돈 많아보이는 어머니 같아서 혼자 거지같이 애들 데리고 가라고 했다.
참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어렸다, 그걸 곧이곧대로 했으니. 얼마나 다루기 쉬운 어린애였던가.
화장도 안하고 집에서 제일 낡아빠진 옷을 입고 큰 아들 손을 잡고, 작은 아들 아기띠로 안아메고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 피해자에게 사과를 했다. 피해자 가족들 앞에서 얼마나 엉엉 울었는지 모르겠다. 미안하다는 감정보다 내가, 또 내 아이들이 이러고 있는게 더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내가 너무 울어서 되려 피해자 가족들이 고생이 많다고 위로해줬을 정도였다. 합의금을 제시하고 탄원서까지 받아왔다. 그는 판사 출신 변호사까지 쓰고 살인미수를 상해죄로 변경했고 3년형을 받았다. 나는 결혼 전 경찰하고 싸워서 4개월 영치된 이후로, 두번째 구치소 뒷바라지를 시작했다.
남편이 사업하는 부분에서 일정 돈관리를 하면서, 아이 키우면서 소액의 생활비는 있었어서 옥바라지라는 걸 참 열심히도 했다. 영치금도 넣어주고, 간식 및 필요한 물품도 넣어줘야하고 일주일마다 아이 얼굴 보여주려고 면접도 자주 갔다. 그때는 아이들이 아빠를 잃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더 열심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언젠가 내 정성을 알아줄 날이 오겠지 되뇌이면서.
내 나이 고작, 24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