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아들셋을 키우는 싱글맘의 우여곡절 파란만장 엄마 성장기
수시로 전문대학교를 진학하고, 1년은 꾸역꾸역 학교를 다녔다. 집안의 사정을 외면하면서도 또 벗어나고 싶었던게 분명했다. 지방에서 자취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고 학생회도 하고 축제도 즐기면서 나름 대학생활을 즐겼다. 아니, 도피했다. 1년하고도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을 때 휴학을 하고 집에와보니 나아진 사정이란 건 없었다.
편의점, 호프집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안정적인 월급을 받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취업사이트를 뒤져서 내 조건으로 갈 수 있는 사무보조 직장에 취업을 했다. 그곳은 영등포에 위치하고 있었고 경호,보안 회사였다. 처음에는 일하는게 재밌었고 아르바이트가 아닌, 회사라는 곳에서 일하고 월급을 받는게 신기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남편 될 사람을 만났다.
그는 젊은 나이에 전도유망한 사장이었고, 호탕하고 유쾌했다. 10살차이가 났지만 내 눈에는 멋있었고 어른이었다. 여러모로 지친 나는 의지할 곳이 필요했고, 또 아픈엄마와 넉넉하지 못한 집안형편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불타는 연애를 하고 덜컥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무슨 용기였는지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이를 가지자마자 물 흐르듯이 결혼준비를 끝냈고 스물한살에 결혼을 하게 됐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내 결혼식에서 그렇게 눈물이 났다던 아빠 마음이 어땠을지. 아직 솜털이 사라지지 않은 스무살 딸을 보내는 엄마 마음이 어땠을지.
결혼식 준비할때부터 순탄치만은 않았다. 신부는 나인데 시댁이 될 홀어머니의 간섭이 심했고, 남편 될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독립하지 못해서 꼭 셋이 결혼하는 것 같았다. 집도 있고 차도 있다던 그는, 방화동 끝자락 공무원이었던 돌아가신 아버지 혜택으로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차는 늘 리스였다. 회사는 수입이 없진 않았지만 세금을 제때 내지 않아 압류투성이었다. 거짓말인 걸 알고 난 뒤에는, 이미 책임질 일이 너무 많아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고 책임져야 했다. 선택은 내 몫이었으니까.
좁디 좁은 10평 남짓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임신기간을 보냈는데, 출산을 앞두고 남편이 불법유턴을 해서 경찰하고 싸웠다. 공무집행방해 뿐만 아니라 무면허 운전이었다고 한다. 밥먹듯 범법행위를 하고 심지어 욱하기 까지 했다. 그 덕분에 나는 법에 대해 제대로 알기 시작했다. 임신 후반기에는 구치소에 있었고, 다행히 아이는 아빠를 기다렸는지 출소하자마자 태어났다. 어리기도 했고, 선택한 삶의 책임이라는 것의 무게를 알기에 헤어진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조리원도 가지않고, 부모님이 친정집에서 몸조리를 해주셨다.
집에 돌아와서는 한참 우울증에 시달렸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늘 혼자였다. 남편은 일한답시고 잘 들어오지 않았고, 생활비도 꼬박꼬박 주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들었던 5만원짜리 태아보험도 자기허락없이 들었다고 노발대발했다. 더러웠다. 내 아이한테 이만한것도 못해주나 싶어 서러웠고 서러웠다. 그래서 일을 해야겠다고 하니, 여자가 집에서 가만히 육아나 하고 주는 생활비 받으면서 내조를 해야된다고 했다. 생활비를 줘야 내조를 하지. 열받아서 더 일을 한다고 했고, 결국은 생활비를 안받는 조건으로 일을 하도록 허락해줬다.
아이는 친정엄마가 봐주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1년만에 달라져버렸다.
난 모든 걸 책임져야했다.
겨우 스물 두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