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이삭이 포물선을 그리며 고개를 숙일 때
소녀는 아침 일찍 새를 보러 간다.
논 옆으로 나있는 널찍한 신작로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이
예쁜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
소녀는 친구를 피해
벼이삭 속으로 숨어든다.
참새가 몰려들어도 모른 채 하고
논바닥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작은 나무로 이름만 쓴다.
벼이삭도 소녀도
고개를 바싹 숙이며
논바닥만 바라본다.
벼이삭은 알찬 알곡이 가득인데
소녀는 텅 빈 마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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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련복을 입고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장난기 많은 남학생이 건들건들 거리며 여학생에게 다가간다.
“야~ 너 나랑 커피 한잔 할래?”
“나는 일이 좀 있어서... 내 짝꿍이랑 하면 어때?”
남학생은 옆에 있는 여학생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90도로 인사를 하고는 슬며시 돌아서 간다.
주위에 웃음소리가 가득 찬다.
그 웃음소리가 퍼지며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이 마음속에서 반짝인다.
우리는 1년에 두 번 정도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한다. 이번여행은 엄마의 생신과 상반기 여행을 퉁처서 하나로 하기로 한 여행이다. 네 자매와 엄마. 다섯 여자들끼리의 경쾌하고도 수다스러운 여행이었다.
여행계획을 세우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에 이른다. 엄마에게 잘 어우러지는 특별한 여행이고 싶어서이다. 엄마는 해마다 동네에서 가는 여행을 다녀서 백령도 빼고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말짱 거짓말이다. 우리나라는 좁은 땅덩어리라고는 하지만 방방곡곡 좋은 곳과 갈 곳이 참 많다.
엄마는 한글을 몇 개만 읽을 줄 아신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는 논과 밭이 많아서 일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풍족하셨다. 그런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를 보내지 않으셨다. 동네에 깐돌이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총명한 엄마를 보고 할아버지께 학교를 보내라고 조언하셨다. 할아버지는 학교 가면 무서운 선생님이 잘못할 때마다 매를 든다며 겁을 주었고, 엄마는 학교 가는 것이 두려워서 할아버지에게 더 이상 학교에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문맹이 되었고 평생 글을 읽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사셨다. 아버지는 고등학교까지 나왔으면서도 엄마에게 한글을 왜 가르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우리 자식들은 왜 엄마에게 글을 가르쳐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각자 삶이 바빠서 엄마의 답답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고 한글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했으리라 짐작한다.
엄마에게 학교체험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여행지를 생각한 곳이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이다. 1944년에 철도가 개설되면서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철도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며 마을이 형성되었다. 현재는 근대 추억을 자극하는 다양한 즐길 거리가 가득한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경암동 철길마을은 1944년에 신문 용지 재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최초로 준공하였다. 철길은 페이퍼 코리아 공장과 군산역까지 2.5km로 이루어졌다. 명칭은 마을이 위치한 행정 구역에 따라 철로 주변에 형성된 마을인 ‘경암동 철길 마을’이라 하였다. 197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50년대 중반까지는 “북선 제지 철도”로 불렸고 1970년대 초까지는 “고려 제지 철도”, 그 이후에는 “세대 제지선” 혹은 “세풍 철도”로 불리다 세풍 그룹이 부도나면서 새로 인수한 업체 이름을 따서 현재는 “페이퍼 코리아선”으로 불리고 있다.
언니와 동생에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물어보니 모두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한다.
여행지를 검색하고 여정을 짜다보면 그곳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다녀온 후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 여행이 즐거워진다. 언니들은 바쁠 텐데 고생한다고 하는데 나는 여행계획을 세우는 이 시간이 무척 행복하다.
군산은 생소한 곳이었다. 처음 가보는 그곳이 어떤 곳일지 설렌다. 특히 엄마랑 함께하는 학교체험은 특별하다. 교복 임대 시 사진 촬영과 액자를 함께 신청하면 사진작가가 철길에서 스냅사진을 여러 번 찍어 준다. 사진작가님은 가장 예쁜 곳을 찾아 가장 예쁜 표정을 짓게 하고 가장 예쁜 추억을 촬영해 준다. 이곳에서 나는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추억사진을 얻었다.
교복 입고 학교 가자는 말에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무슨 이 나이에 교복을 입느냐고 튕긴다. 작년에 도자기 공예 체험을 할 때도 엄마는 손사래를 쳤었다. 살살 달래며 하라고 시켜놓으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잘한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그냥 웃으며 엄마 팔짱을 단단히 끼고 걷는다.
까만 교복에 하얀 카라가 달려있는 옛날 교복을 선택하고 싶었지만 더울 것 같아서 흰색에 검정카라가 있는 교복을 골랐다. 이 또한 향수가 묻어나는 교복이고 엄마가 14살 때 입고 싶어서 마음 아팠을 그 교복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교복을 보며 엄마에게 입힐 교복 사이즈를 고른다. 우리는 정신없이 수선을 떨며 엄마를 교복 입은 여학생으로 변신시켰다.
“엄마 그냥 입어만 봐. 잘 어울리나 보자.”
얼떨결에 엄마는 교복을 입고 빨간 가방을 들고 학생구두까지 신었다. 빨간 빵모자까지 쓰니 완전 학생이다. 엄마와 딸들이 교복을 입는다 하니 고맙게도 주인은 호의적으로 친절히 대해 주신다. 80대의 엄마와 40대 50대의 딸들이 함께 교복을 입고 철길을 걷는다.
70년대 80년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이곳은 추억을 얘기하기 좋은 곳이다.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흥이 나고 추억을 얘기하게 된다. 엄마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학창 시절이지만 딸들의 학창 시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웃어준다.
교실에 들어갔다
우리 학교 교훈은 ‘여자 말을 잘 듣자.’
우리 반 급훈은 ‘차카게 살자.’
가운데에 태극기가 걸려있고 왼쪽엔 교훈이, 오른쪽엔 급훈이 걸려 있다. 우리는 낮은 교단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제각각 포즈를 취했다. 모두 만족하는 이 사진은 액자로 만들어져 집에 놓여 있다. 너무 좋아했던 엄마의 얼굴이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떠오른다.
좁은 철길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교복 대여점, 추억의 사진관, 뽑기 가게, 소품샆 등이 즐비하게 있다. 그 시절에 먹었던 불량식품과 용품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다. 교복도 옛날교복부터 세라복, 요즘 입는 신세대 교복까지 다양하다. 입을 삐죽이고 있는 못난이 인형이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있기도 하고 예쁜 뜨게 모자를 쓰고 있기도 하다. 난로 불에 구워 먹던 쫀드기와 각종 불량식품들이 보인다. 연탄불에 빙 둘러앉아 쫀드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하고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연탄불에 불을 지펴주셔서 우리는 삥 둘러앉아 쫀드기를 구웠다. 쪼그라드는 쫀드기를 보며 온몸을 비비 꼬아보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쫀드기가 이렇게 맛있었던가? 연탄불을 피워주셨던 분이 보기 좋다며 사진을 찍어주셨다.
철로를 따라가면 포토존이 있었는데 추억을 연상시키는 배경이라 사진을 찍으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엄마는 귀찮을 정도로 사진을 찍어대며 장난을 치는 딸들을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옛날 놀이 모형이 많이 있다. 말타기 모형, 철길에 귀를 대고 기차가 오는지 가늠해 보는 아이 모형 등. 문방구 종이인형스티커, 로봇, 물총, 못난이 인형, 피카추 인형 등 수많은 종류의 인형들. 엄마는 어릴 적 함께 놀던 친구들의 이름을 알려주셨다. 같이 말타기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고, 논의 새를 쫓으라는 할아버지 말을 어기고 친구들이랑 놀러 갔다가 혼난 이야기도 해주셨다.
철길을 따라 더 가니 한쪽 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옷을 홀랑 벗은 어린아이가 키를 뒤집어쓰고 손으로는 중요부위를 가리고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어릴 적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나면 앞집으로 키를 씌어 소금을 받아오라 했던 일을 떠올리며 기필코 가지 않고 반항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교련복을 입고 가방을 높이 쳐들고 벌을 받고 있는 남학생 벽화 옆에서 우리는 가방을 높이 쳐들고 벌 받는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무지개 색으로 칠해 놓은 철길을 따라 가는데 교련복을 입고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장난기 많은 남학생이 기타를 둘러매고 건들건들 거리며 여학생에게 다가간다.
“야~ 너 나랑 커피 한잔 할래?”
“나는 일이 좀 있어서... 내 짝꿍이랑 하면 어때?”
“어머나... 좀 오래되셨네요...”
남학생은 옆에 있는 내 짝꿍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90도로 인사를 하고는 슬며시 돌아서 간다.
“야!”
여학생이 슬며시 도망가는 남학생을 부른다.
“기타 좀 잠깐 줘봐.”
“너 기타 칠 줄 알아?” 남학생이 묻는다.
“따지지 말고 그냥 줘봐”
나는 기타를 받아 들고 잠깐 튕겨보다가 엄마에게 기타를 메어주고 나처럼 쳐보라고 한다.
엄마는 거부감 없이 기타를 치고 우리는 그냥 잘 친다며 환호한다. 그 남학생도 내 또래로 보인다. 착하게도 기타를 한곡 쳐주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조개껍질 묶고 그녀에 목에 걸고~~”
여행에서 만나지는 유쾌한 사람은 추억을 더 진하게 한다. 추억을 생각하며 그 시절의 학생인양 말을 건네고 그걸 유쾌하게 다시 말을 건낼 줄 아는 센스가 우리를 더 즐겁게 했다.
학교에 가본 적 없는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서글펐다. 군산에 옛날 환경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있어서 자매들과 엄마를 모시고 교복을 함께 입고 책가방을 들었다. 쫀디기도 구워 먹고 기타도 치고 사진도 찍으면서 보낸 시간이 귀하고 각별하다. 처음에 싫다고 손사래를 치던 엄마가 너무 기뻐하셨다. 나는 그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나는데... 엄마는 그 기억을 잊으셨다. 다만 사진을 보며 학교에 갔었다는 것을 인식하실 뿐이다.
엄마는 알츠하이머이다.
엄마가 평생 내 얼굴을 기억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