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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우 Oct 12. 2022

문을 열면 펼쳐지는 새로운 공간, 경리단길 비욘드문

빵순이의 달다구리 공간 탐방기 1. 

 


자본의 냄새에 압도되는 대형 카페나 인스타 감성 따라 우후죽순 생겨나는 '힙한 곳'들을 가면 왠지 모를 피로감이 쌓이는 편이다


한두 시간 앉아있다 보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소음과 촘촘한 인구 밀도로 인해 어서 자리를 옮기고 싶어진다

나이가 들고 취향이 뾰족해지면서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고, 

약속이 있는 날은 거의 카페를 방앗간처럼 가다 보니 카페를 고르는 기준과 취향도 까다로워졌다. 


카페 유목민 생활을 하던 중 발견한 

공간에서 묻어 나오는 고유한 취향 때문에 사장님이 어떤 분일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 

비욘드문을 소개한다 




'사장님이 문 씨일까요? 왜 비욘드문이지?' 지인과 함께 카페로 가는 길

별게 다 궁금한 지인이 귀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해서 검색창을 켠다

플레이스 설명글에 적혀있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이야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비욘드문의 이야기 그리고 고객분들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언젠가 비욘드문만의 문화가 탄생하기를 희망합니다


플레이스 설명글에 메뉴를 제외하고 '공간'에 대한 의도를 적어놓은 가게를 본 적이 있던가?

없던 것 같다.


사장님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해하며 경리단길 골목 끄트머리로 향했다



궁금증을 안고 도착한 비욘드문


빨간색 벽돌집이었을 것 같은 가정집을 흰색으로 색칠해놓았다 

외관은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듯한 모습으로 처음엔 별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특이했던 점은 큰 대문을 자개문양의 벽돌로 촘촘히 쌓아 막아놨다는 점 하나였다 

단단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내부 풍경

문을 열면 펼쳐지는 공간은 낡은 느낌이 나는 외관과 달리 아늑하면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작은 협탁 위에는 정갈하게 놓인 펜 한 자루와 메모지가 놓여 있었는데, 비욘드문에서 경험한 이야기, 느낌을 작은 통에 넣을 수 있는 '소통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다


옆으로는 'Moonsay 문 세이'라는 카페에서 직접 발행한 듯한 잡지와 책 두 권이 놓여 있었고, 사장님이 손으로 직접 빚으신 듯한 컵들이 놓여 있었다


잡지까지 직접 만들어 소통하고자 한다니?
점점 사장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 사람의 공간만 봐도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파악이 가능하다고 하던데 난 아직 그런 고급 기술은 없나보다 

하지만 확실한 건 '공간'이 주는 공기와 분위기는 그날의 약속과 만남을 추억할 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유명한 명언 중 하나인 "공기, 온도, 습도.. 분위기.."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따라 그날의 대화 주제가 달라지기도 하고, 대화 사이의 공백이 어색해지기도 하며 반대로 부드럽게 흘러가는 쉼으로 바뀌기도 한다 



입구에서 몇 발자국 걸어 들어가면 나오는 주방 맞은편 공간은 정갈하면서 아늑한 느낌을 준다


연한 개나리 색깔의 벽면과 밤색 나무 탁자의 부드러운 조화가 은은한 따뜻함을 풍겨내고 

통창 유리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몽글하고 풋풋한 봄날의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소품 하나 허투루 쓴 것이 없어 보이는 공간에는 사장님의 독서 취향이 반영된 고전과 도서, 잡지들이 협탁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누군가에게 책을 소개해 준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얼마나 고심하면서 골라 배치하셨을까?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좌우로 둘러본 구석구석에는 각도와 소품 하나하나 사장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연보라 빛의 안개꽃과 들꽃 향의 디퓨저에서 나는 향기가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이 공간에 점점 더 나를 스며들게 했다


공간에 대한 취향이 밋밋한 나는 이 공간을 그대로 내 방으로 옮기고 싶을 만큼 반해버렸다..!



아늑한 공간에서 빙- 뒤돌면 보이는 넓은 주방 


일반 가정집 주방의 큰 골조는 그대로 두고 편한 동선을 고려해 리모델링한 듯한 사장님만의 작업 공간을 보며 다시 한번 눈이 휘둥그레졌다


냉장고 색까지 베이지톤으로 맞춘 모습을 보며 얼마나 섬세하시고 일관된 취향을 가지셨는지 짐작 가능했다


이쯤 되니 사장님이 어떤 '의도와 이야기'로 공간을 꾸미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지만 바쁜 등에 대고 다짜고짜 개인적인 질문을 던질 용기는 나지 않아 망설이다 질문을 삼켜버렸다 


아직까지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지만 재방문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생겼으니 그걸로 좋다




메뉴 개발에도 진심인 비욘드문 사장님은 차 블랜딩도 직접 하신다고 한다 



I'm free of stress, Clean a brain, My energy body 

각각의 차들은 읽기 어려운 고유명사 대신 상황에 맞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빠짐없이 나의 경우에 해당되는 것 같아 전부 마셔보고 싶었다 



하지만 빵순이인 나와 달다구리를 포기 못하는 지인은 여기까지 왔는데 커피와 디저트를 포기할 수 없어! 라는 결론을 내렸고 차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차를 포기하자 선택지가 많아졌다

보통 카페에 가면 마음에 드는 메뉴가 몇 종류 안되는데 비욘드문은 사장님은 메뉴 개발에도 엄청난 정성을 쏟으신다


여러 공간을 다녀보니 메뉴판 하단에 설명이 많은 곳들은 대부분 메뉴에 자신이 있는 곳들이었고, 소비자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하려는 태도가 엿보이기 때문에 좋아하는데 촘촘이 설명이 적인 메뉴판을 보며 '어떤걸 골라도 평균 이상은 하겠구나' 확신이 생겼다


비욘드 문의 시그니처인 쫀쫀한 크림이 올라간 '문 슈페너'와 일본 호시노 무라 말차를 사용한 '말차라떼'

말차 아이스크림크로플,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얹어진 프랜치 토스트를 두고 우리는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메뉴를 추려내기 시작했다

카운터 앞에서 구경을 하며 한참을 고민하던 중 사장님께 용기 내어 메뉴를 추천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사장님의 픽은 '문슈페너'라고 하셨고 흥분한 우리는 문슈페너와 말차라떼 프랜치 토스트를 주문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앉아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색달랐다 


주방으로 시선이 모아지는 벽을 따라 이어지듯 만들어놓은 의자는 불편한 듯 보였지만 쿠션 덕분인지 

나름 편안했고 좌석 구분을 화병으로 해놓아서 기분이 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완성된 메뉴들을 사장님이 직접 테이블로 가져다주셨다 



커피를 건네주시며, 문슈페너는 섞지 말고 첫 입을 먼저 마시고 말차라떼는 빨대로 잘 섞어 먹으라고 친절히 안내를 해주셨다 


'이건 꼭 남겨야 해!'라며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눈길이 간 그릇의 가장자리.


티코스터와 그릇, 유리컵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티코스터는 손으로 직접 빚으신 듯한 오목조목한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릇은 물레로 만드셨는지 약간 찌그러진 듯한 귀여운 원형태를 하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먹어본 문슈페너

쫀쫀하면서 부드럽기도 한 크림의 단맛이 먼저 느껴지고 쌉쌀한 커피의 향과 맛이 다음으로 넘어오는데 크림의 단맛을 커피의 쓴맛이 잘 잡아준다 

크림을 먹으면 단맛이 예상보다 강한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 바로 자 여기 쓴맛!이라고 외치며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들어와 단맛을 중화시켜준다

이런 식의 단맛과 씁쓸한 맛이 서로 자기주장을 하지만 조화로운 맛을 이룬다 


일본 호시노 무라 말차를 사용한 말차 라떼는 녹차 덕후인 내 입맛에는 조금 달았다

녹차가 첨가된 메뉴에 일반 설탕 시럽 넣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데 시럽이 조금 첨가된 느낌이어서 

약간 아쉬움이 남았던 메뉴


프랜치 토스트는 7cm 정도 되는 도톰한 두께의 식빵에 계란물을 촉촉하게 적셔 겉바속촉으로 구워주신다

빵 중간 부분이 살짝 내려가 있고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올려져 있으며 화룡점정으로 슈가 파우더가 톡톡 뿌려져 있다 스트레스받아 단 맛을 찾게 될 때 먹으면 기분이 풀리는 맛이다 




'이야기와 소통'이라는 의도를 '공간'을 통해 풀어냈다는 점이 재밌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던 경리단길 비욘드문 


재방문하고 싶은 카페는 동네 카페 말고는 찾지 못했는데 사장님께 못다 한 질문을 용기내어 던져보고, 따뜻한 공간을 다시 느끼고 싶어 겨울이 되기 전에 다시 들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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