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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우 Nov 28. 2022

11월의 학교, 이별준비

전보내신, 싱숭생숭한 날씨와 분위기 그 속에 머무른다는 것

학교에서의 2학기는 정말 빠르고 분주하게 지나간다.

특히, 내년에 학교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더 분주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지역은 11월이면 전보 내신을 작성한다.

전보 내신이란 지금 근무 중인 학교에서 다른 학교,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종류가 다양한데, 부적응 내신(현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워 만기를 채우기 전에 쓰는 것 / 급간 이동이 가능함), 만기 내신(한 학교에 머무를  수 있는 최대 년수를 채워 쓰는 것), 일반 내신(최대 년수인 5년을 채우기 전에 이동 의사를 밝히고 쓰는 것) 등이 있다.


한 학교에서 한 해에 이동할 수 있는 교사의 숫자는 총 교사 수의 30%를 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순위에 따라 눈치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1순위는 만기 내신 자이다. 5년을 채웠으니 당연히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예라는 제도가 있어서 1년 정도 그 학교에 더 머무를 수 있기도 하지만 유예를 하는 경우는 잘 없는 듯하다. 


이 학교에 신규 발령을 받아 5년을 채우고 벌써 이동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친했던 음악 선생님도 유머감각이 좋으셨던 과학 부장님도, 따뜻하게 챙겨주셨던 사회 샘도 다들 하나 둘 떠나는

모습을 보며 점점 친구를 잃어가는 느낌에 외롭고 쓸쓸하기도 했는데 이제 나도 떠나야 하는구나.. 란 생각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이런저런 일들로 학교와 이별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어제 내신서 작성을 위한 연수를 받으러 다녀왔다.

학교는 나이스(neis)라는 업무관리시스템을 이용해 다양한 인사처리를 하는데, 전보 내신도 나이스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기 위한 연수를 실시하는 것이다.


연수 장소에 가보니, 예상치 못한 선생님들도 몇몇 분이 보였다.

'정말 힘드셨나 보다..'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서로의 눈빛에서 씁쓸한 동질감을 느낀 건 나의 투사일까?


이것저것 연수를 받고 돌아와 앉은 내 자리를 쓱 둘러본다. 

아침마다 쓸고 닦았던 서랍과 책상, 컴퓨터, 아이들이 여기저기 붙여놓은 포스트잇과 자료들.. 

힘들어서 어서 떠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었지만 나도 모르게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이래서 미운 정이 더 무섭다고 하는 걸까?


둘러보다 캐비닛을 열었더니 정리할 서류가 한가득이다.

'이걸 다 언제 정리하지?'란 혼잣말과 함께 내 쉰 짧은 한숨과 함께 

5년 동안의 내 모습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처음으로 만났던 첫 출근날과 정신없이 지나갔던

신규 교사로서의 일 년 

아이들과 점심시간에 함께 보드게임을 하며 친해졌던 순간, 

운동회를 하며 신발을 던지고 함께 응원했던 날들, 

힘들어하는 아이와 함께 울면서 그래도 버텨보자고 눈물을 닦아줬던 기억, 

무기력하게 엎드려 있는 아이를 앞에 두고 레크리에이션 강사처럼 텐션을 높여 보드게임이라도 해보자고

애쓰다가 좌절했던 기억,

아이들에게 상처받은 선생님들을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화내고 웃기도 했던 순간,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을 통제하고 싶어 발버둥 치다가 번아웃이 오고 휴직 욕구가 굴뚝같이 솟아났던 순간


무채색 같을 줄 알았던 5년간 나의 학교생활은 참 다채롭고 행복한 기억도 많았구나

아이들에게 준 것이 더 많은 줄 알았는데 나를 교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가장 많이 성장시켜 준 것도

아이들과 학교구나 

흔히 말하는 퇴사 욕구가 솟구치는 3,5년 차를 지나면서 전문상담교사라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의미를 가지는지, 앞으로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지난 5년을 안 좋게 추억하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신 신청서를 두고 돌아본 지난 5년은 힘들었던 기억만큼 아름답고 즐거웠던 기억들도 꽤나 많았음을 깨닫게 되면서 "인생의 의미"라는 큰 주제로 생각의 초점이 옮겨졌다. 


어쩌면 인생이 원래 그런 게 아닐까?

마냥 좋을 수도 한없이 나쁠 수도 없는 것

그렇기에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찾고 충실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을 꾸려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얼마 전 읽은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나온 선생님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나만의 머리로 사고하고 나만의 이 이야기로 세상에 존재하기"

지난 5년 속에 나는 얼마나 나만의 이야기로 존재했고, 존재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혹시나 해서 간직한 3년 치 교무수첩들. 다채로운 추억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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