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골짜기는 결코 고요하지 않았다.
오래전 여행길, 어느 대통령 별장의 고즈넉한 부부침실 벽면에서 네 글자를 마주했다.
공곡유향(空谷幽香)
빈 골짜기에서 나는 그윽한 향기.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그 문구 앞에서 생각했다.
'오, 멋지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은데?' 누군가의 아내로 살게 되더라도, 저렇게 조용하지만 고결하게, 은은하지만 향기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땐 몰랐다. 그게 얼마나 고난이도 기술인지를.
세월이 흐르고 보니 알겠다.
공곡유향은 오롯이 혼자만의 의지로 피워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치열한 '2인 3각'이자, 고도의 '팀플레이'였다.
혼자 아무리 은은하게 향기를 뿜어봤자, 옆 사람이 "뭔 냄새야?" 하면 그걸로 끝이다.
서로를 향한 존중과 배려, 이해가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었다.
관계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서, 그 거울이 뿌옇게 흐려지면 아무리 예쁜 얼굴도 흐릿하게 보이는 법이다.
문제는 익숙함이다. 익숙함이 당연함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배려 센서가 고장 난다.
"원래 그런 거지 뭐" 하는 말투, "당연히 해야지" 하는 표정. 그럴 때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다.
'아, 내가 이 사람한테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그런데 말이다. 나라고 완벽한가?
나한테도 한계치가 있다.
어떤 날은 예민해지고 뾰족해져서,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옆 사람을 푹 찌를 때가 있다.
그럴 때의 나는 향기를 품은 골짜기가 아니라, 상대를 찌를 준비가 된 날 선 선인장이 되고 만다.
상처 주고받는 건 어느 한쪽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날을 세우며, 또 각자의 방식으로 무뎌지며 산다.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모양의 모서리를 가진 채 부딪히고 깎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체념이 아니라 수용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뿐이다.
체념은 "됐어, 이제 기대 안 해" 하고 마음의 문을 닫는 거다. 하지만 수용은 "그래, 이게 현실이네. 그럼 이 안에서 내 방식을 찾아볼까?" 하고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역할에 익숙해진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나'를 잃는 것 같아서 불안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 역할 안에서도 나만의 색깔을 입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20대의 내가 꿈꿨던 공곡유향은 일종의 '판타지'였다. 진공 상태처럼 고요한 평화 속에서만 피어나는 향기. 하지만 지금 내가 정의하는 향기는 조금 다르다.
진짜 빈 골짜기가 어디 늘 평화롭기만 하던가. 바람도 세게 불고, 비도 엄청 쏟아지고, 때로는 산사태도 나는 곳이다.
불완전한 일상 속에서도 나를 지켜내는 향기.
가끔 서운한 순간이 있어도,
그걸 견디면서 내 본질만큼은 완전히 놓지 않는 것.
고요한 곳에서만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 태풍이 불어도 '어, 나 여기 있는데요?' 하고 남아있는 향기.
그게 진짜 공곡유향 아닐까.
나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싶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향기는 난다.
빈 골짜기는 결코 이상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꽃은 핀다.
그것도 제법 향기롭고 끈질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