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가 아니라, 내면이 단단해지는 신호였습니다
보통 슬럼프라고 하면 "내가 왜 이럴까, 능력이 없나?"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 나의 슬럼프는 결이 조금 다르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내일 같은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 있다.
가족을 만나도 "밥은 먹었니?", "컨디션은 어때?"
친구를 만나도 "좋겠다", "몸은 어때?"
지인을 만나도 "맞아, 나도 그래!"
일상의 대화가 몹시 간절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10년 된 껌을 씹는 기분이다.
단물은 진즉에 빠졌는데 뱉지는 못하고 턱만 아픈 상황. 예측 가능한 관계가 주는 피로감이 밀려온다.
나의 몸과 마음이 방전된 걸까.
편안함이라는 함정.
"그냥 만나면 되지" 했던 안일함.
익숙함에서 오는 지루함.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도 없지만, 대신 재미도 사라졌다.
결국 어느 노랫말처럼 '의무감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작은 변화나 새로운 자극이 곁에 있어도 나는 목석처럼 굳어 있다가, 뒤늦게 밀려오는 공허함을 그저 받아들인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 행복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울려야 산다."
지금의 나에게는 이 말들이 전혀 와닿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쓴 채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게 정말 행복일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의 진짜 에너지는 어디에서 충전되는가?
혼자 걷는 산책길에서 마음의 먼지를 탈탈 털어낼 때.
영화 속 주인공과 내면의 수다를 떨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널브러져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할 때.
책 속의 인물과 상황을 천천히 따라갈 때.
지금의 나에게는 이 시간이야말로 진짜 '소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나간 자리에서 지루함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보다 백 배는 더 건강한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상태를 더 이상 '슬럼프'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관계를 숙제처럼 여기지 않기로 했다.
이건 내가 '내적 성장'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라고 믿기로 했다.
'나 살아있어' 하는 신호를 가볍게 보내기.
가끔 "생각나서 연락했어" 한마디 건네는 느슨하지만 소중한 관계.
그리고 당분간은 혼자 있는 시간을 마일리지처럼 차곡차곡 쌓아두기로 했다.
혼자가 편하다는 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나와 잘 지낼 만큼 내면이 단단해졌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좋았던 관계가 따분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을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자.
마음의 그릇을 비우고 다시 채워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는 더 깊고 본질적인 것을 원하게 된 나를 인정하자.
그러니 억지로 상황에 나를 맞추지 말자.
지금의 이 고요함을 마음껏 누리자.
오늘 저녁엔 나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차리고, 조용히 영화 한 편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