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처럼 살아가기
바다는 모든 것을 품어 준다.
그 안에 무엇이 던져지든,
슬프고 아픈 마음도
어떤 소망이 깃들든
바다는 조용히 제 안으로 감싸 안으며
이내 고요를 되찾는다.
십 대의 불안함,
이십 대의 열망,
삼십 대의 간절함과
사십 대의 분주함 그리고
지금, 위로받고 싶은 갖가지의 사연을
그대로 머금어 주는 그 넉넉함이 좋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 거대한 공간 속에 내가 머물러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바다는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온 것처럼 익숙하게 나를 품는다.
억지로 나를 맞추려 하지 않아도,
처음부터 우리는 하나였던 듯
자연스럽게 나를 안아 주는 그 감각.
내게 바다는 언제나 너른 엄마의 품과 같았다.
부산스러운 소음도, 일상의 번잡함도
모두 썰물에 실어 보내고 나면
남는 고요한 상태.
내가 기억하고
사랑하는 바다는
늘 그렇게 푸근한 모습이었다.
평생을 내륙에서 자란 나에게
바다는 늘 정적인 위로였지만,
딱 한 번 전혀 다른 얼굴의 바다를 마주한 적이 있다.
이십 대 초반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서해 바다를 보러 갔었다.
졸업 이후 저마다 생활권이 달라져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우리는
몇 개월의 공백을 파도가 바닷가 모래를 적시듯이 서로의 이야기로 단숨에 채웠다.
청명한 바닷가를 기대했지만
그날의 여름 바다는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집어삼킬 듯한 큰 파도가 일렁였다.
해수욕장 안전본부에서는 해안가 접근을 금지하는 안내 방송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나는 차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친구들은 무섭다며 이동하자는데
나는 생경한 바다 모습에 넋이 나가 있었다.
내륙 사람인 나에게 그 광폭한 모습조차 마치 교향곡의 웅장한 클라이맥스처럼
멋지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바다를 터전 삼아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에게는 철없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둡고 커다란 파도와 그 파도에 맞닿을 듯 내려앉은 검은 구름 사이에서,
나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강인한 자연의 에너지를 느꼈다.
그간 보아왔던 부드럽게 나를 안아주던 바다와 모든 것을 꿀꺽 삼킬 듯 포효하는 바다.
그 두 모습은 결국 하나였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 강인한 힘에 온전히 압도되어,
나 역시 바다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거친 파도도 결국 고요로 돌아가듯,
나의 거친 감정들도 그 품에 닿으면 고요해질 수 있도록
바다처럼 살아보고겠다고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