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과 마음 사이에서
나는 유형과 무형의 모든 종류의 비움을 잘 못한다.
살림살이의 정리, 정돈 또한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코로나 이전,
집안 살림을 바르게 가꾸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정리 수납 전문가 과정’을 수강료를 내며 수료하기도 했다.
이불장, 신발장, 냉장고, 옷장, 싱크대.
매 수업의 과제는 정리 전과 후의 사진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수업에서 익힌 방법을 집에서 즉각 실행하니 눈에 보이는 변화가 달콤했다.
그
러
나
.
.
3개월의 과정이 끝나고 한두 계절을 보내고 나니, 우리 집 살림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수업 전의 혼돈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나 혼자 전용으로 사용하는 싱크대 수납장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배달 음식 쿠폰,
일회용 수저,
고무밴드,
각종 쇼핑백들.
그리고 ‘할인 폭이 크니까 지금 사야 해’, ‘요리는 장비빨이지’라며 합리화하며 사 모은 생활용품들이 비워낸 자리를 다시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살림이라는 게 참 묘하다.
치우는 손보다 어지럽히는 손이 더 많다.
바쁘다고 툭,
깜빡했다고 툭.
자주 사용하는 건 눈에 보이는 게 좋다 툭,
힘껏 정리해 둔 물건을 굳이 꺼내놓는 손길 앞에서 내 노력은 무력해진다.
“우리 집은 원래 어수선한데 그냥 살자,
갑자기 왜 이래?”라는 가족들의 말은 내 임계점을 건드린다.
갑자기가 아니다.
이제야 참아왔던 임계점에 도달한 것뿐이다.
비워내지 못하는 건 물건뿐만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는 덩어리째 삼킨 쓰라린 감정들이 가득하다.
몸 컨디션이 바닥을 치던 지난 1년,
남편은 묵묵히 내 곁을 지켰다.
출근 전후로 내 전신을 마사지해 주고, 새벽녘 통증에 신음하면 어둠 속에서 몇 번이고 일어나 내 몸의 마디마디를 주물러주었다.
결혼 후 지금까지, 내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점심은 먹었는지 묻는 남편의 전화가 매일같이 걸려 왔다.
아프고 나서는 오후 세 시면 어김없이 귀가해 나와 함께 산책길에 나서주었다.
한 번은 집 앞 공원을 걷고 싶어 나갔다가 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적이 있다.
전신이 떨리고 어지러워 한참을 그렇게 앉아 남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공원을 걷고 싶은데 아직 아닌가 봐 했더니 그는 곧장 달려와 내 손을 잡고 집으로 이끌어주었다.
남편의 행동은 언제나 이토록 다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의 고통이 가라앉은 자리에, 종종 마음의 허기가 찾아온다.
몸이 아프니 우울감도 오고 나름의 극복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쯤 시작한 글쓰기 수업은 나를 살피고 위로하는 과정이며 상황을 새롭게 환기하는 시간이 되었다.
십 분 알람을 설정해 놓고 스트레칭과 쓰기를 반복하며 써 내려간 에세이가 함께한 동기들의 글과 묶여 작년에 책 두 권이 나왔을 때, 남편은 그 책의 첫 장조차 넘겨보지 않았다.
"당신이 퇴고한다고 읽을 때마다 들었잖아."라고 남편의 말이 돌아왔다.
올 1월에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긴 하지만
내게도 자릴 내어준 거다.
첫 도전 만에 승인 소식을 들었고, 함께
한 동기들의 축하를 받으니 그날은 매우 기뻤다.
반가운 마음으로 신랑에게 소식을 전했으나 돌아온 건 “요즘은 누구나 다 글을 쓰는 시대 아니냐”며 툭 던진 무심한 말 한마디였다.
여전히 청소와 분리배출,
무거운 짐을 드는 일은 남편의 몫이다.
온전히 살림을 소화하지 못하는 내 컨디션으로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는 게 그에겐 탐탁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나를 살리려 애쓰는 그의 육체적 헌신과, 내 마음을 토닥이는 글쓰기를 외면하는 그의 무심함 사이에서 나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가족들과 분명 함께 있는데도 문득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 점점 흐려져 가는 나의 시간들.
그런 감정들이 버리지 못한 쇼핑백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막내의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나도 ‘초등맘’을 졸업했다.
이제는 집 분위기도, 내 마음도 단정하고 가볍게 유지하고 싶다.
우선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주방부터, 아니 내 화장대부터.
내 물건부터 하나씩 버리다 보면
조금은 나아질까.
살림도, 마음속에 맺힌 쓰라린 감정들도 이 기회에 싹 다 비워내고 싶다.
남편의 헌신에 대한 미안함은 남기고, 서운한 말들은 혼자 있을 때 시원하게 욕 한 바가지 해주고 깔끔히 비워내고 싶다.
나를 일으켜 세워준 그의 따뜻한 손을 잡고 걷는 그 산책길처럼,
내 삶도 이제는 조금 더 가볍고 단순해졌으면 좋겠다.
복잡한 건 이제 숨이 차다.
비워도 다시 채워지겠지만,
그럼에도 비우기를 멈추지 않겠다.
어차피 채워질 삶이라면,
조금 더 맑고 가벼운 것들로
채우고 싶기에.
이제는 보다 가볍게, 단순하게 살고 싶다.